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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생 전설’ 박진솔, 팀 5위가 상대팀 에이스 연파

중앙일보 2017.11.02 01:00 종합 23면 지면보기
박진솔 8단은 정관장황진단 선수 5명 중 마지막에 뽑힌 선수지만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박 8단은 ’나이가 들며 바둑에 대한 태도가 진지해진 게 승률이 높아진 원인 같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박진솔 8단은 정관장황진단 선수 5명 중 마지막에 뽑힌 선수지만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박 8단은 ’나이가 들며 바둑에 대한 태도가 진지해진 게 승률이 높아진 원인 같다“고 말했다. [사진 한국기원]

2017 KB국민은행 바둑리그 정규 시즌이 지난달 29일 막을 내렸다. 올해는 정관장황진단의 독무대였다. 정관장황진단은 14승2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에 올랐다.
 

KB리그 정관장황진단 1위의 주역
16세 입단 전 매달 실력 1계단 뛰어
이후 잊혀졌다 20대 후반부터 부활
끈기 기르며 랭킹 7년 새 82 → 21위

정관장황진단이 승승장구한 데는 KB리그 사상 ‘최대 이변의 사나이’로 꼽히는 박진솔(31) 8단의 숨은 공이 컸다. 박 8단은 ‘5차 지명(KB리그는 팀당 다섯 명을 뽑는데 선발 순위에 따라 1~5차 지명으로 분류된다)’ 선수였지만 정규시즌에서 11승5패로 개인 성적 5위에 올랐다. 개인 성적 10위 안에 든 5차 지명 선수는 박 8단뿐이다. 박 8단의 성적은 자신보다 앞선 차수에서 지명된 선수를 상대로 거둔 것이어서 더욱 의미 있다. 김지석·원성진·이동훈 9단과 신민준 6단 등 쟁쟁한 기사들이 박 8단 승리의 제물이 됐다.
 
정관장황진단의 김영삼 감독은 “박진솔은 팀의 보배 같은 존재다. 진솔이가 다른 팀 1, 2차 지명 선수를 완파해 줘서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 팀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8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KB리그까지, 자주 출전하면서 경기가 몸에 익숙해졌다. 컨디션도 지난해보다 좋아 올해 성적이 괜찮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17 KB리그 개인 순위

2017 KB리그 개인 순위

사실 박진솔 8단의 그간 경력을 보면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눈에 띄는 점이 많다. 2002년 당시 16세의 나이로 입단한 박 8단은 다른 프로기사들까지 인정하는 천재 기사였다. 연구생 시절 박 8단의 일화는 바둑계에 전설처럼 회자된다. 김지명 바둑캐스터는 “박 8단의 입단 당시 한국기원 연구생은 10조부터 1조까지 있었다. 대개는 아무리 빨라도 10조에서 1조까지 올라가는 데 2~3년이 걸렸다. 그런데 진솔이는 10개월 만에 10조에서 1조로 올라갔다”며 “거의 한 달마다 조가 올라가서 최단 기록을 세웠던 거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천재 소년은 주변의 기대에 바로 부응하지 못했다. 입단 후 거의 10년간 박진솔 8단의 한국 랭킹은 100위권 안팎이었다. 더는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20대 후반부터 서서히 살아난 것이다. 다른 프로기사들이 20대 후반부터 기세가 꺾이는 것과 정반대 양상이었다. 랭킹도 역주행하면서 2010년에 80위권이었던 게 현재는 21위까지 치솟았다(그래프 참조).
 
박진솔 한국 랭킹 추이

박진솔 한국 랭킹 추이

박진솔 8단은 “어릴 때는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 바둑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바둑에 대한 태도도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며 “나이가 들면서 바둑을 대하는 태도도 진지해졌고, 한 판을 둬도 끈질기게 두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영삼 감독도 “진솔이가 과거에는 대국에 소극적일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웬만하면 경기에 빠지지 않고 나가려고 한다. 자세가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평가했다.
 
뒤늦게 전성기를 맞은 박진솔 8단의 목표는 오랫동안 KB리거로 활약하는 것이다. 박 8단은 “나는 장고 대국보단 속기 바둑에 강하다. KB리그는 속기 바둑이 많기 때문에 내 강점을 살릴 수 있다”며 “선수로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게 해 준 KB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오랫동안 뛰고 싶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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