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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두 사람, 둥근 틀에 세상을 담다

중앙일보 2017.11.02 01:00 종합 25면 지면보기
서울 삼청동 누크갤러리에서 드로잉 2인전을 열고 있는 화가 김태헌(왼쪽)과 케니. [이후남 기자]

서울 삼청동 누크갤러리에서 드로잉 2인전을 열고 있는 화가 김태헌(왼쪽)과 케니. [이후남 기자]

화가 김태헌(53)은 여행길에 드로잉북을 챙기곤 한다. 몇 해 전 아내와 떠난 동남아 여행도 그랬다. 힘들어하던 아내에게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게 하고 그야말로 ‘놀자’는 작정으로 떠난 참이었다. 근데 이번에 챙겨간 드로잉북 중 하나가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를 낳았다. 서울 삼청동 누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드로잉전 ‘The New World’가 그것이다. 그와 태국 화가 케니(44, 위타야 스리무앙)가 함께하는 2인전이다.
 

김태헌과 태국 화가 케니 2인전
우연히 만나 드로잉 북 선물 인연
서울 삼청동 누크갤러리서 전시

각자 여행중이던 두 사람은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버스에서, 다시 베트남에서 우연히 거듭 만났다. 서로 그림 그리는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됐다. 안내를 자처한 케니의 청으로 그가 사는 태국 중부도 다녀왔다. “헤어질 때 그림 안 그린 드로잉북을 선물했어요. 1년 뒤 다시 만났는데 그 새 330점을 그렸더라구요.” 김태헌의 말이다. 한국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는 케니의 바람을 듣고 그는 궁리 끝에 2인전을 여는 길을 찾았다.
 
김태헌 ‘밤의 정원- 우주인’, 30×32㎝, 종이에 혼합재료, 2017. [사진 누크갤러리]

김태헌 ‘밤의 정원- 우주인’, 30×32㎝, 종이에 혼합재료, 2017. [사진 누크갤러리]

이번 전시는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작품을 모두 각각 둥근 프레임 안에 담아 선보인다. 마치 만화경처럼, 각자의 눈으로 본 세상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김태헌의 그림은 특히 ‘밤의 정원-우주인’시리즈가 재미있다. 꽃과 나무, 새를 비롯한 전통적인 민화의 소재에 우주인을 곁들인 이색 풍경화다. 민화는 낡아 못 쓰게 된 병풍의 인쇄 그림에서 쓸만한 부분을 골라낸 것. 여기에 가는 붓으로 바탕을 까맣게 칠해 우주를 표현하고 우주복 입은 사람을 그려 넣었다. 때로는 손을 흔드는 모습이, 작가 스스로 그림이란 우주 속에 들어가 관람객을 향해, 그림 속 사물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듯 보인다.
 
Kenny ‘333 coffee time’, 15×15㎝, 종이에 커피, 2015. [사진 누크갤러리]

Kenny ‘333 coffee time’, 15×15㎝, 종이에 커피, 2015. [사진 누크갤러리]

케니의 그림은 내면의 풍경화 같다. 관념적 기호나 상징적 표현이 두드러진다. 모두 커피로 그린 것도 특징이다. 화가로 사는 건 어디서나 만만찮다. 케니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태국에서 여러 번 전시를 열기도 했지만 전업화가가 아니다. 국수 같은 끼니와 차를 파는 카페를 운영하는 한편 지역 문화해설사로도 활동한다. 그림은 새벽 2~3시쯤 일어나 다른 일과에 앞서 매일 한두 시간씩 그린단다. 그는 “깨어나는 것, 힘을 주는 것”이라고 커피의 의미를 전했다. 커피로 그림을 그린 건 5년 전부터. 짙은 색을 낼 때는 인스턴트 커피를 섞는 등의 기법도 쓴다. 물론 수채화나 유화도 그려왔다.
 
“작업세계가 달라요. 저는 낮에 싸돌아 다니며 몸으로 부딪히는 편이데 이 친구는 밤에 그리죠. 근데 그게 다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더라구요.” 김태헌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의미나 동기를 구구절절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 “스타일이 없다”고 뭉뚱그리는 그의 유연한 시각, 세상을 대하는 품 넓은 관점이 여행길 친구와 함께하는 전시 자체에도 드러난다. 11월 17일까지.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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