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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성화봉, 짝퉁 모형 들고 첫 공개 … 그땐 물에 넣어도 꺼지지 않는 화약 썼죠

중앙일보 2017.11.02 01:00 종합 27면 지면보기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성화봉(오른쪽) 제작자인 민병만 전 한화기념관 관장. [사진 한화]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성화봉(오른쪽) 제작자인 민병만 전 한화기념관 관장. [사진 한화]

1987년 3월 19일 서울 방이동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성화봉 공개 기자회견을 앞두고 한국화약(현 한화) 직원들이 신문지로 싸맨 성화봉을 들고 뛰어들어왔다. 성화봉엔 24회 올림픽을 뜻하는 24개의 불구멍과 두 마리의 황룡이 장식돼 있었다. 고(故) 이우성 숙명여대 미대 교수의 아름다운 디자인에 전 세계 언론이 감탄했다.
 

민병만 전 한화기념관 관장
재질·제작방법 두고 갑론을박
기술 없고 열정만 넘쳐 해프닝

그러나 사실 당시 공개된 성화봉은 가짜였다. 기자회견을 위해 급조한 모형. 진짜처럼 빛나도록 매니큐어를 발랐고, 손잡이와 화로 사이는 사포로 긁어 무광 처리했다. 올림픽 엠블럼은 물감으로 칠했다. 성화봉의 재질과 제작 방법을 두고 갑론을박 논쟁이 길어지면서 기자회견 당일까지도 시제품을 제작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실무책임을 졌던 민병만 전 한화기념관 관장은 “대학과 기업에서 참가한 제작자들이 기술·경험은 없으면서 열정만 불타다 보니 생긴 에피소드”라고 털어놨다. 1일 평창동계올림픽 성화의 국내 입성을 맞아 국내 첫 성화봉 제작자인 민 전 관장을 만났다. 민 전 관장은 한화가 84년 만든 불꽃놀이 개발팀에서 근무하며 86년 아시안게임 성화봉 제작에도 참여했다.
 
민 전 관장은 88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로 점화 방식을 꼽았다. 당시 성화봉은 적린(赤燐·인의 동위원소)과 이산화망간·마그네슘통 등 주로 화약 성분을 사용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꺼지지 않는 성화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해 인화성 높은 물질을 사용했다. 물에 담갔다가 빼도 불이 다시 붙을 정도였다. 이들 성분이 배합돼 연소하면 주황빛 불꽃과 하얀 연기를 내뿜어 시각적 효과가 뛰어났다. 불이 쉽게 꺼지지 않아 한화 직원들이 성화봉송 코스를 따라다니며 일일이 불꽃을 껐을 정도다.
 
민 전 관장은 “성화봉의 무게와 길이·디자인·연료·재질은 물론 최악의 상황에서도 성화대로 불꽃을 옮겨 붙일 수 있도록 제작해야 했다”며 “IOC 관계자들이 역대 올림픽 성화 불꽃 중 가장 환상적이라고 말해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올해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화약 대신 가스버너 방식을 사용한다. 화력은 떨어지지만, 올림픽 성화봉송 연기가 공기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올림픽성화봉 역시 한화가 제작했다. 88년에는 이런 성화봉을 3300개를 만들었고, 평창동계올림픽은 9600개를 생산했다. 프로젝트 기한은 1년6개월에 불과하다.
 
민 전 관장은 “성화는 많은 사람의 헌신과 노력을 바탕으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폐막까지 함께한다”며 “꺼지지 않는 불꽃이 선수는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열정을 가져다준다”고 강조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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