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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유명을 달리하다

중앙일보 2017.11.02 01:00 경제 9면 지면보기
배우 김주혁의 죽음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교통사고로 인한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방송·연예계는 물론 대중도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계 행사 도중 한 배우는 “아끼는 후배가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며 그를 추모했다. 뉴스 기사 댓글엔 “차량이 전복돼 그가 운명을 달리했다는 보도가 오보이기를 바란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이도 많았다.
 
누가 죽었다고 할 때 “운명을 달리했다”고 표현할 경우가 있다. 이전과 다른 길을 가게 될 경우 “운명이 달라졌다”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어떤 이의 죽음을 전할 때 “운명을 달리했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운명(運命)’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이른다. 사망했다는 의미로 사용하려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해야 된다.
 
‘유명(幽明)’은 어둠과 밝음, 즉 저승과 이승을 뜻한다. “유명을 달리하다”는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갔다는 것으로 ‘죽다’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운명(殞命)’도 있다. “유언도 없이 운명하셨다” “그는 아버지의 운명을 보지 못했다”와 같이 사용한다. 이때도 ‘운명하다’고 하지 “운명을 달리하다”고는 쓰지 않는다. "운명을 달리하다”가 아닌 “유명을 달리하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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