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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박원순·나영석에 서둘러 '느림상' 준 전주가 슬로시티?

중앙일보 2017.11.01 15:24
1일 오전 전북 전주시 교동 전주향교에서 열린 '제1회 세계슬로포럼 및 슬로어워드'에서 김승수 전주시장(가운데)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1일 오전 전북 전주시 교동 전주향교에서 열린 '제1회 세계슬로포럼 및 슬로어워드'에서 김승수 전주시장(가운데)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북 전주시가 올해 세계 최초로 '슬로 어워드(slow award)'라는 상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공모는 생략한 채 한국슬로시티본부가 단수 추천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나영석 PD 같은 유명인사를 속전속결식으로 수상자로 선정해 '슬로시티' 취지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전주향교서 '세계슬로포럼 및 슬로어워드' 개최
'슬로시티 수도' 되기 위해 준비한 야심찬 행사
슬로운동 성과 격려하는 차원서 세계 최초 기획
박원순 시장, 장석주 시인, 나영석 PD팀 등 수상
슬로시티본부가 단수 추천한 후보 그대로 선정
'느린 삶' 지향하는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지적
전주시 "시간 촉박하고 좋은 분 모시려" 해명

후보 면면에 대한 수상 자격 여부를 떠나 대외적으로 비치는 상의 격(格)과 파급 효과에 지나치게 신경 쓴 나머지 전주시가 '슬로시티'의 주체인 지역 주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나 상이 주는 의미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9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9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에 관광객들이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주시는 1일 "오는 3일까지 사흘간 전주향교에서 국내외 인사와 시민들이 모여 슬로운동의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제1회 세계슬로포럼 및 슬로어워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인구 60만명 이상 대도시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주시가 "'슬로시티의 수도'가 되겠다"며 야심 차게 준비한 행사다.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앞서 2010년 11월 전주 한옥마을에 한정해 지정했던 슬로시티 권역을 지난해 4월 시 전체로 확대·재지정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이날 "전주시는 슬로시티를 상징하는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분명한 걸음으로 착실히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슬로시티는 '유유자적한 도시, 풍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치따슬로(Citta Slow)의 영어식 표현이다. 지역 문화를 공유하며 느린 삶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지난 8월 현재 30개국 235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한국에서는 전주를 비롯해 전남 완도·신안·담양, 경남 하동, 충남 예산, 경기 남양주, 경북 상주·청송, 충북 제천, 강원 영월 등 11곳이 있다.  
 
추석 연휴 막바지인 지난달 8일 헬기에서 내려다본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 모습. [사진 전북사진취재단]

추석 연휴 막바지인 지난달 8일 헬기에서 내려다본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 모습. [사진 전북사진취재단]

전주시는 '세계가 묻고 전주가 답하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를 통해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 세계 도시들과 교류를 넓힐 계획이다. 또 그동안 슬로운동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느림의 가치를 실천한 국내외 개인과 단체에게 상을 주는 '슬로어워드'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상금은 국내 부문은 단체 200만원, 개인 100만원이다. 국제 부문은 항공료와 숙박료 등을 내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1회 슬로어워드' 수상자는 국제·국내 부문 합쳐 모두 6명이다. 전주시에 따르면 국제 부문 단체상은 각각 '차 없는 도시'와 '물 절약 도시'로 유명한 스페인 폰테베드라와 이탈리아 아솔로 등 두 도시가 선정됐다. 개인상은 슬로시티인 호주 카툼바에서 시민운동을 하는 생태건축가 나이젤 벨(Nigel Bell)이 받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5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25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부문에서는 인기 TV 프로그램인 '삼시세끼'와 '꽃보다' 시리즈 등을 통해 여유 있고 느린 삶의 가치를 보여준 나영석 PD 팀이 단체상을 탄다. 개인상에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정책을 추진해 온 박원순 서울시장과 '느림과 비움의 미학' '그 많은 느림은 어디로 갔을까' 등 느림을 소재로 한 책을 집필해 온 장석주 시인 등 2명이 수상한다.  
 
전주시는 당초 "수상자는 한국슬로시티본부가 추천하고 국제슬로시티연맹 및 관계 전문가로 구성된 슬로어워드 심사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주시에서 받은 '전주 슬로어워드 수상자 심사위원회 심의의결서'를 확인해 보니 한국슬로시티본부가 추천한 국내 부문 수상자는 박 시장과 나 PD, 장 시인으로 처음부터 '단수 후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슬로시티연맹 간부 2명과 김용택 시인,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 김영걸 카이스트 교수 등 5명으로 구성된 슬로어워드 심사위는 '적정' '재검토' 부적정'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이들 후보가 수상자로서 적합한지 여부만 따지는 역할만 했다. 국제 부문 수상자는 아예 후보 추천부터 검증·선정까지 전주시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국제슬로시티연맹에 맡겼다고 한다.
 
나영석 PD가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tvN '알쓸신잡2'(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영석 PD가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tvN '알쓸신잡2'(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이번 '슬로어워드' 시상식에는 국내 부문 수상자 3명 가운데 장 시인을 제외한 2명은 시상식에 불참한다. 전주시에 따르면 2일 오전 9시20분 전주향교에서 열리는 시상식에는 박 시장과 나 PD는 다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 박 시장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대리 수상'을 하고, 나 PD는 수상 소감을 담은 동영상을 보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전북 지역 시민단체와 학계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전주시가 정작 이런 철학을 표방하는 '슬로어워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김남규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깜짝 이벤트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지역 주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부족했다"며 "수상자들이 전주시가 추구하는 슬로시티 방향과 맞는지, 이런 시상을 통해 누리고자 하는 효과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석주 시인. [중앙포토]

장석주 시인. [중앙포토]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슬로시티라는 것은 작은 도시나 촌락에서 지역에서 나는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고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곳인데 전주 한옥마을은 꼬치구이 같은 패스트푸드와 길거리 음식이 넘치고 수용하기에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려 '슬로시티라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공모도 없이 수상자들을 선정한 것은 부적절하다. 슬로시티 원칙과 지역의 정체성에 맞는 수상자들을 뽑았는지도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근본적으로 슬로시티가 갖는 콘셉트와 전주시가 맞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경우 이미 담을 수 있는 그릇보다 넘치게 관광객이 오는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과잉 관광)'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서다. 
최영기 전주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전주가 세계에 없는 '도심형 슬로시티'로 지정받긴 했지만 한 해 1000만명이라는 대량 관광객이 찾는 한옥마을을 슬로시티라고 하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상이라고 하는 것은 '일단 주고 보자'가 아니라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받을 만하다'는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며 "수상자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도심형 슬로시티'로서 방향성이 반영 안 된 상이 주는 임팩트는 약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주시 관계자는 "보통은 복수의 후보를 심사해 선정하는 게 맞고 '슬로어워드'도 원래 공모를 추진했다"며 "하지만 올해가 첫 행사라 준비 기간이 촉박한 데다 상의 권위를 높이고 훌륭한 분들을 모시기 위해 한국슬로시티본부의 추천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일찌감치 공모를 준비해 더 엄격히 수상자를 뽑겠다"고 덧붙였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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