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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적폐라는 말의 ‘적폐성’

중앙일보 2017.11.01 01:54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정치적 레토릭에 인기 순위를 매기는 일이 가능하다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최근 차트의 선두에 올라선 말은 아마도 ‘적폐(積弊)’라는 말일 것이다. 비교적 사용되지 않던 고루한 느낌을 주기까지 하는 이 단어가 갑자기 우리 정치생활의 전면에 나타난 것은 2014년 세월호 사건 직후 박근혜 정부가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아마도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즉 이전 정부들에서부터 누적된 문제들의 총합이라는 점과 당시 정부는 상대적으로 그 적폐를 물려받았을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평가는 역사의 몫이겠지만 ‘적폐’라는 정치적 언어는 고스란히 남았다.
 

‘적폐’라는 말은 몰역사적이며
문제의 원인과 책임 가려버리고
정치적 토론을 중단시키는 언어
지난 정부의 과오에서 배우려면
보다 냉철한 분석과 토론이 필요

적폐라는 말은 그 이후 탄핵 국면에서 그리고 특히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여야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되었으며, 지금은 다양한 정치세력이 상대방을 공격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박상훈이 지적하는 것처럼 ‘적폐’라는 말은 정치적 상대를 인격화해 지목하는 새로운 관형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나는 이 ‘적폐’라는 말만큼 사안의 핵심을 가리고 정치적 토론을 중단시키는 언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이 이토록 많이 쓰이게 된 이유는 그것이 우리 정치현실과 정치토론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이겠지만, 동시에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해 그 언어를 넘어서야 할 과제도 정치인과 언론인과 이를 소비하는 시민들에게 주어져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서는 ‘적폐’란 말의 ‘적폐성’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첫째, 적폐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몰역사적이다.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왔던’이란 의미를 가지기는 하나, 편리하게도 그 과거가 어떤 과거인지를 지칭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몰역사적이다. 모든 현재적 문제들과 불만과 고통의 기원을 과거에서 찾도록 만든다는 의미에서 매우 게으른 언어며, 과거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청산하면 새살이 돋아나듯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 믿게 한다는 의미에서 허투른 희망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 정치는 단순한 과거의 부정이 아니라 어떤 과거에서 배우고 어떤 과거를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 위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적폐라는 말은 개인과 구조를 뭉뚱그려 정작 문제의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가리는 효과를 지닌다. 예컨대 ‘적폐 세력’이라 하면 그것은 마치 문제적 개인들의 총합인 것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적폐’ 자체는 이러한 개인들의 일탈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적 힘을 지칭하는 듯할 때도 있다. 새로운 정치의 수사는, 그리고 우리가 가꾸어 갈 정치적 변화는 적어도 개인적 일탈과 구조적 문제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 범법은 처벌하고, 범법은 아니라도 정치적 책임성을 묻는 것이 한 축이라면, 허물어진 우리 정치 세계의 구조적 결함들을 짚어내고 수리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폐라는 말의 모호성 속에 우리는 개인적 처벌도, 제도 개혁의 과제도 놓치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셋째, 적폐라는 말은 토론과 타협의 공간을 없앤다. 왜냐하면 적폐라는 말 뒤에 오는 말은 예외 없이 ‘척결’이나 ‘청산’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적폐라 부르는 시간이 피아(彼我)를 식별하는 단계라면, 자연스럽게 그 이후는 나의 절멸을 피하기 위해 상대방을 ‘청산’하자는 구호가 나오는 단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명료한 선악의 경계가 아닌 생존의 진흙펄 위를 함께, 천천히 걸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적폐청산이라는 말은 사실 우리 정치가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유포했던 허위의식, 즉 정치가 ‘리셋’될 수 있고 모든 것이 일거에 새롭고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의 새로운 변주이기도 하다. 정당이 당명을 바꾸고 비상대책위를 꾸리며 스스로의 이름에 ‘새’와 ‘신(新)’을 남발해 붙일 때, 정작 바뀐 것은 무엇이었던가.
 
이곳에서 지난 정부의 과오들을 덮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과오들이 무엇이며 어떤 범법과 무능이 있었고, 이것이 가능했던 어떤 구조적 문제들이 있었는지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토론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 정치가 한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적폐’라는 말이 너무나 무딘 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 무딘 칼을 사용한 대가는 지난 정부의 과오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제한된 법적 공방의 가능성만 우리 앞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과거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은 아쉽게 흘러가고만 있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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