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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세계유산 등재 무산, 돈 많이 내는 일본 방해 탓

중앙일보 2017.11.01 01:08 종합 16면 지면보기
지난달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기록물’ 중 1783년 변박이 초량왜관을 그린 ‘왜관도’.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통신사기록물’ 중 1783년 변박이 초량왜관을 그린 ‘왜관도’.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결국 무산됐다. 지난달 31일 유네스코는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기록물에 ‘대화를 위한 등재 보류 권고’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유산 등재를 막기위한 일본 정부의 총력전이 먹혔고, 한국이 외교전에서 사실상 완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대 분담금 무기로 유네스코 압박
“정치적 긴장 피해야” 결의안 유도
조선통신사?어보 등 3건 새로 등재
한국 세계기록유산 총 16건으로

실제로 일본은 2015년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뒤 아베 신조 총리를 중심으로 정부 전체가 “두 번 실패는 없다”며 등재 저지 활동에 매달려왔다. 일본은 유네스코에 제도개선 요구와 금전적 압박이란 ‘투 트랙’ 전략을 썼다.
 
먼저 위안부 기록물을 ‘이견의 여지가 있는 등재신청(questioned Nomination)’이라고 주장하며 “당사자간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꾸준히 폈다.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회의’의 운영규정이나 집행이사회의 결의문 에 ‘대화 의무화’ 조항을 넣으려 했다. 그 결과 지난달 18일 만장일치로 통과한 집행이사회 결의문에 일본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됐다. 세계기록유산 지정과 관련, “정치적 긴장을 회피하고 대화, 상호이해 및 존중의 원칙을 준수하도록 촉구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결의문은 강제성은 없지만 유네스코가 보류 판정을 낼 수 있는 구실로 작용했다. 지난달 26일 유네스코 전문가위원회가 위안부 자료에 대한 입장 결정을 보류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31일 “대화의 원칙을 강조하고, 정치적 긴장을 회피하도록 요구한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된 건 큰 의미가 있다”(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고 평가했다.
 
유네스코 분담금도 일본에겐 큰 무기였다. 최근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 뒤 최대 분담국으로 떠오른 일본은 총리관저 핵심 관계자가 “(분담금 납부) 타이밍은 모든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드러내놓고 유네스코를 압박했다. “위안부 자료가 등재되면 일본은 유네스코를 탈퇴할 것”이라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가 유네스코 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해온 국제연대위원회는 “당사자 간의 대화 조항은 식민지 피해, 전쟁 피해, 국가폭력 피해와 관련된 기록물들의 등재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이 규정이 있었다면 현재 등재돼있는 노예관련 기록물,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은 등재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왕실 어보. [사진 문화재청]

조선왕실 어보. [사진 문화재청]

한편 이번 유네스코 회의에서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조선통신사기록물’ 3건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새로 등재됐다. ‘조선왕실 어보와 어책’은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의례용 도장과 제왕·후비 등에게 존호를 올릴 때에 그 덕을 기리는 글을 옥이나 대나무에 새긴 것을 말한다.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은 1907년부터 1910년까지 일본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전 과정을,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 년 간 조선에서 일본에 12차례 파견한 외교사절의 활동상을 보여준다. 이번 등재로 한국은 총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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