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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대항해 벌인 국채보상운동,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중앙일보 2017.10.31 15:50
국채보상운동 장면을 재현한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내 전시물. [사진 한국관광공사]

국채보상운동 장면을 재현한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내 전시물. [사진 한국관광공사]

 
대구 중심가인 중구 동인동2가에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 있다. 2·28 기념공원, 경상감영공원과 함께 대구 중심에 위치한 3대 공원 중 하나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지역 대표 휴식처다. 이 공원은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1907년 대구에서 처음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대구서 처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에 진 빚을 국민들이 대신 갚기 위해 벌인 범국민적 모금 운동이다.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 각지로 파급됐다. 이 운동이 시작될 무렵 일본에서 들여온 나라 빚은 무려 1300만원에 달했다. 대한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돈이었다.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전경. [사진 대구시]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전경. [사진 대구시]

 
국채보상운동의 궁극적 목적이 국권 회복에 있다고 간주한 일제의 집요한 방해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지만 한국 최초의 기부문화운동이자 여성·학생운동, 언론 캠페인 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높다. 이와 함께 국채보상운동 이후 중국(1909년)·멕시코(1938년)·베트남(1945년) 등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외채 상환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역사와 의미를 지닌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최종 등재됐다. 1907년부터 1910년까지 나라 빚을 갚기 위해 남성들은 술과 담배를 끊고 여성들은 반지를 팔아 돈을 모으는 과정을 쓴 수기와 언론 보도 등 일제 항거의 역사가 남아 있는 문건 2472건으로 구성됐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당시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 [사진 대구시]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당시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 [사진 대구시]

 
31일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24~27일 열린 제13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국채보상운동은 큰 주목을 받았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에 대응해 가장 앞선 시기에 범국민 기부운동을 바탕으로 나라 빚을 갚고자 한 국권수호운동이라는 점에서다.
 
국채보상운동은 오늘날까지 그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경제 위기에 직면한 국가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 국채보상운동 정신은 97년 IMF 경제위기 당시 전 국민이 참여한 '나라살리기 금 모으기 운동'으로 승화돼 경제난 조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국채보상단연회 의연금 모금장부. [사진 대구시]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국채보상단연회 의연금 모금장부. [사진 대구시]

 
앞으로 대구시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기 위해 11월 대시민 보고회와 비전발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과 연계해 정부와 국채보상운동 정신의 세계화를 위한 밑그림도 본격적으로 마련해나갈 방침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시민들이 대구시민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높아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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