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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받이·페이퍼 사무실…날로 교묘해지는 불법 대부업

중앙일보 2017.10.31 13:40
지난 3월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 붙잡힌 불법 대부업자 이모씨가 만든 전단지. 전단지 왼쪽 상단엔 정식 등록 번호가 적혀 있으나, 실제 대출은 등록된 곳이 아닌 그의 집에서 이뤄졌다. [사진 서울시]

지난 3월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 붙잡힌 불법 대부업자 이모씨가 만든 전단지. 전단지 왼쪽 상단엔 정식 등록 번호가 적혀 있으나, 실제 대출은 등록된 곳이 아닌 그의 집에서 이뤄졌다. [사진 서울시]

자영업자 A씨(53·서울 강동구)는 급히 500만원이 필요했다. 그의 눈에 대부업체 전단지가 들어왔다. 거기엔 정식 업체 등록 번호가 적혀 있었다. 2014년 12월 그 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이자를 포함해 600만원을 하루 8만원씩 75일 갚는 게 조건이었다. 선이자·수수료 명목으로 대출금 500만원 중 36만원이 그 자리에서 공제됐다. A씨는 약속된 기간 내에 돈을 갚지 못했다. 업체 측은 ‘꺽기’(밀린 이자를 갚기 위해 재대출)를 제안했다. 2년여 동안 12번 꺽기를 했다.
 

500만원 빌렸는데 2년여 만에 1억
불법 업체 33곳 적발, 피해액 91억
등록업체처럼 속이는 등 지능화
민사경 “이자율 적지 말란 곳 의심”

올 3월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이하 민사경)이 이 업체를 적발했을 때 이씨의 빚은 1억5400만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서울시는 이런 식으로 263명에게 77억원을 불법 대출한 이모(36)씨 등 9명을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고 31일 밝혔다. 서울시가 올해 지금까지 적발한 불법 대부업체는 총 33곳이다. 시가 산출한 피해액은 91억원가량이다. 불법 대출은 연 이자가 27.9%가 넘는 경우를 뜻한다.
 
서민을 대상으로 한 불법 대부 업체의 행태는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이번에 잡힌 이씨는 2013년에 종업원·지인을 이용해 구청에 대부업체 5곳을 등록했다. 정식 등록 업체는 한 곳당 전화번호를 3개까지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중 4곳은 간판도 없는 ‘페이퍼 사무실’이었다. 나머지 한 곳은 책상만 놓여진 빈 사무실로 뒀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일명 ‘총알받이’ 사무실이었다. 실제 영업은 이씨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피해자들은 번호가 다른 5곳에 전화를 하지만 결국은 모두 이씨의 불법 대부업체로 연결됐다.
 
육언조 민사경 대부업수사팀장은 “이씨 일당이 굳이 대부업체를 등록한 이유는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였다”며 “이렇게 치밀하게 운영해 4년간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불법대부업자 이씨의 업체에서 만든 입금 통장. [사진 서울시]

불법대부업자 이씨의 업체에서 만든 입금 통장. [사진 서울시]

이들은 불법 대부업자들이 주로 쓰는 꺽기로 이자를 살인적으로 늘렸다. 법정이자율의 100배가 넘는 연 3256%까지 이자율을 올리기도 했다. 심지어 빌린 돈을 받는 데 편하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체크카드를 뺏기도 했다.
 
최근 2년 동안 불법 대부업체를 단속한 민사경에 따르면 휴대전화를 이용한 불법 대부도 흔히 이뤄지고 있다. ‘휴대폰 내구제 대출(나를 구제하는 대출)’이라는 방식이 자주 쓰인다. 100여 만원짜리 휴대전화 2~4대를 개통해 불법 대부업체에게 넘기면 한 대당 50만~60만원을 받는 식이다. ‘휴대폰 소액결제’ 방식도 있다. 불법 대부업체가 만든 온라인 가상점포에서 소액 결제를 하면 일정한 액수의 돈을 업체가 가져가고 나머지를 대출해 준다.
 
서울시는 지난해 7월에 ‘불법대부업 피해상담센터’를 열었다. 이 곳에선 구제 방법과 소장 작성 등 피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강필영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장은 “대부 거래 계약서를 쓸 때 대부금액과 이자율은 대출자가 자필로 써야 한다”며 “만약 공란으로 두라는 곳은 불법 대부업체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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