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황은 넘치는데 스모킹건이 없다…입 닫은 윤송이 父 살해범

중앙일보 2017.10.31 11:10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의 부친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 허모씨 [연합뉴스]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의 부친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 허모씨 [연합뉴스]

엔씨소프트 윤송이(42·여) 사장의 부친(68) 피살사건 피의자 허모(41·구속)씨가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허씨가 경찰 조사에 묵비권으로 일관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 검거 닷새가 지났지만 결정적인 ‘스모킹 건’이 될 흉기는 못 찾았다. 
 

경찰, 살인 혐의 구속된 허씨 상대로 계속 조사
수사 초반 입을 열던 허씨 현재 묵비권 행사 중
검거당시 무일푼...'빚 8000만원 있다' 진술
경찰, 현 정황상 강도 등 노린 계획범행 무게
범행 후 하남 미사리 방문, 흉기유기 가능성

31일 경기 양평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된 허씨의 금융 거래 및 휴대전화 통화 내용 등을 분석하는 한편 이날 오전부터 허씨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범행현장 인근 폐쇄회로 TV(CCTV)에 찍힌 허씨의 행적과 허씨의 차 안에서 나온 숨진 윤씨의 혈흔 등을 토대로 허씨를 추궁하고 있다.
 
하지만 허씨는 검거 직후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흉기는 인근 횟집에서 훔친 회칼을 사용했다”고 진술한 뒤로 경찰의 추궁에 일절 답변하지 않고 있다. 이에 경찰은 프로파일러와 수사팀을 교대로 투입해 면담과 수사를 번갈아 가며 진술을 유도 중이다. 하지만 허씨는 구속 이후 심경변화를 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엔씨소프트 윤송이 부친 피살사건 범행현장 모습. 최모란 기자

엔씨소프트 윤송이 부친 피살사건 범행현장 모습. 최모란 기자

 
경찰은 정황증거를 근거로 우발적 범행이라는 허씨의 주장과 달리 계획 범행으로 보고 있다. 전날(30일) 경찰이 허씨의 휴대전화와 차량 블랙박스를 디지털 포렌식 수사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허씨는 이달 21일부터 25일 범행 직전까지 자신의 휴대전화로 ‘고급빌라’ ‘가스총’ ‘수갑’ ‘핸드폰 위치추적’ 등의 단어를 포털에서 검색했다. 범행 직후에는 ‘살인’ ‘사건사고’ 등의 단어를 찾아봤다. 실제 가스총·수갑은 구매하지 않았다.

피의자 허씨가 범행당일(지난 25일) 양평시내 설치된 폐쇄회로TV에 찍힌 모습. [사진 경기 양평경찰서]

피의자 허씨가 범행당일(지난 25일) 양평시내 설치된 폐쇄회로TV에 찍힌 모습. [사진 경기 양평경찰서]

 
허씨의 차량 블랙박스에선 범행 일주일 전인 지난 18일 용인지역 고급 주택가를 둘러보는 등 범행대상을 물색한 듯한 행적도 확인됐다. 허씨가 부유층을 상대로 강도나 납치 등 범죄를 계획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숨진 양씨의 자택이 있는 곳은 유명 배우도 거주하고 있는 등 고급 전원주택가다. 특히 윤씨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윗쪽, 외진 곳에 있다. 윤씨가 살해되던 날 그의 휴대전화와 지갑도 함께 사라졌다. 윤씨는 당시 색소폰 동호회 모임이 끝난 뒤 자신의 신용카드로 막걸리 2병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체포했을 당시 허씨의 지갑은 텅 빈 상태였다고 한다. 바지와 신발에선 혈흔이 발견됐다. 혈흔에서는 윤씨의 DNA가 나왔다. 허씨 소지품에서 숨진 윤씨의 지갑·휴대전화는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흉기와 함께 유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피의자 허씨가 도주에 사용한 차량. 김민욱 기자

피의자 허씨가 도주에 사용한 차량. 김민욱 기자

 
경찰 관계자는 “초기 조사에서만 협조하고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다”며 “CCTV영상, 피해자의 혈흔 등 증거를 들이대도 대답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허씨가 대부업체로부터 상환 독촉 압박을 받은 내용도 계획범죄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경찰에서 허씨는 “내 명의로는 3000만원 정도의 채무가 있고 어머니 명의로 5000만원 정도의 빚을 졌다”며 “매월 200만~300만원의 이자를 갚고 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허씨의 진술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금융 거래 내역 등을 살펴보고 있다. 또 과거 통화내역까지 훑어 보고 있다. 최근 일주일 치 통화내용에서는 지인·업무 관계인 등과의 통상적인 통화 외에 특이 사항은 드러나지 않았다. 
 
앞서 허씨의 가족들은 허씨가 가출하자 지난 22일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 한 시간 뒤 경찰이 허씨의 소재를 확인하면서 실종 신고도 곧 해제됐지만 이후에도 허씨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차 안에서 지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현재 허씨의 가족과 연락이 닿질 않는다”고 전했다. 
 
엔씨소프트 사장 부친 살해 피해자 허씨가 탄 피해자 차량 [연합뉴스]

엔씨소프트 사장 부친 살해 피해자 허씨가 탄 피해자 차량 [연합뉴스]

 

경찰은 직접적 증거가 될 흉기를 찾는데도 집중하고 있다. 앞서 숨진 윤씨의 자택 주변과 차가 유기된 양평군내 모텔 근처, 허씨가 붙잡힌 전북 임실군 일대 야산 등에 경찰관 30여 명을 파견해 수색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허씨가 범행 후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하남시 미사리 방면을 지난 뒤 다시 양평으로 되돌아온 사실이 담긴 CCTV 영상이 추가로 확인돼 수색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허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는 데다 수사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현재 상황만 보면 ‘횟집에서 훔친 흉기로 윤씨를 찔렀다’는 진술도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며 “흉기를 찾기 위해 경찰관 등을 동원해 수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허씨가 범행 전 ‘가스총’ ‘수갑’ 등을 검색한 것을 놓고 ‘살인을 계획한 것이 아니다’라는 분석도 나온다. 살인을 계획했다기엔 혈흔을 치우지도 않는 등 현장 수습이 허술해서다. 허씨는 전북 임실에서 경찰에 붙잡힌 뒤 “자살하러 선산에 왔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산 위치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허씨가 강도 등 범행을 계획하고 양평을 찾았다가 윤씨와 마주치자 몸싸움을 벌이던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살인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허씨가 윤씨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다가 허씨가 윤 사장의 회사 엔씨소프트의 게임 아이템을 거래한 내용도 지난해 9월 이후 발견되지 않아 이와 관련된 범죄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허씨를 설득해 범행동기 등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허씨는 지난 25일 오후 7시 30분에서 오후 8시10분 사이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윤씨의 자택 주차장에서 윤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평=최모란·김민욱 기자 mora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