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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빠' 대입 설명서④] "'수시 납치'에서 딸을 지키려면"

중앙일보 2017.10.31 10:00
그간 교육에 무관심했던 아버지(무빠'인 김모 부장은 직장동료에게 '수시 납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수험생 납치 사건'을 떠올렸다. '수시 납치'란 수시 전형에 합격한 학생은 정시전형에 응시할 수 없다는 입시 규칙을 일컬어 수험생들이 주로 쓰는 은어다. 일러스트 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그간 교육에 무관심했던 아버지(무빠'인 김모 부장은 직장동료에게 '수시 납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수험생 납치 사건'을 떠올렸다. '수시 납치'란 수시 전형에 합격한 학생은 정시전형에 응시할 수 없다는 입시 규칙을 일컬어 수험생들이 주로 쓰는 은어다. 일러스트 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버지이자 한 중소 제조업체 부장인 김모(51)씨.
 

교육에 무관심한 아빠 위한 대입 가이드
수시에서 붙으면 정시 지원 원칙적 금지
수능 만점자라도 수시 합격한 대학 가야
면접·논술 응시 전에 '수시 납치' 고민해야

딸이 고3이 된 올 초부터 어째서인지 김 부장이 딸 대신 고3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괜스레 우울해지고 가끔은 자신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져 괴로운데요.  
 
김 부장이 보기에 아내는 딸과 수시로 소통하고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 부장이 모녀의 대화에 끼어들면 영락없이 ‘맥 커터('대화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사람')’가 되고 말아 민망할 따름입니다.
 
딸의 대입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접어들수록, 김 부장의 고3병 증상도 하릴없이 깊어집니다. 부쩍 울적하고 무기력해진 김 부장에게 회사 후배들이 다가와 “어디 편찮으신 것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입니다.
 
'과부 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요. 다른 사람들은 짐작도 못 하는 김 부장의 고3병을 한눈에 알아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오 차장입니다. 오 차장은요. 재수생 아들을 둔 아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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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해도 안다는 듯 그저 고개를 주억이며 다가와 김 부장에게 차가운 콜라 한 캔을 건네는 오 차장. 안 그래도 속이 갑갑하던 김 부장은 오 차장이 건넨 콜라를 받아들고 반갑게 한 모금 들이킵니다. 오 차장이 옆에 있으니 동병상련(同病相憐·같은 병을 앓는 환자끼리 서로 가엽게 여김) 덕분에 마음이 편해집니다. 

 
“부장님! 힘드시죠?”
“아이고. 말도 마.”
한마디씩 주고받았을 뿐인데,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이때 문득 오 차장에게 궁금했던 게 떠오른 김 부장.
“아들이 공부 상당히 잘했잖아. 작년에 수능도 잘 봤었다며. 애 고생하게 왜 재수까지 시키고 그래?”

“아이고 말도 마세요.”
 
이번엔 오 차장이 콜라를 쭉 들이킵니다. “작년에 수능이 오죽 어려웠습니까. 근데 아들이 탐구영역 한 과목 빼고는 다 1등급을 받았어요. 아마 애 학교에서도 1등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잠깐 뜸들이던 오 차장은 무시무시한 말을 합니다. “'수시 납치'를 당한 거죠.”
 
‘수시 납치?’ 김 부장의 머릿속은 또다시 하얘집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오 차장은 말을 잇습니다. 

“저도 ‘세상에 이런 법이 다 있나’ 기가 막히더라고요. 선배 딸도 공부 잘하죠? '수시 납치' 그거 조심하셔야 합니다.”

 
오 차장이 자리로 돌아간 뒤 혼자 남은 김 부장 머릿속엔 ‘수시 납치’라는 단어가 맴을 돕니다. 감정기복이 심한 고3병 환자답게 김 부장은 누군가 딸을 납치하려 지켜보는 건 아닌지 불안한 위기감마저 느끼는데요.
 
수능시험을 잘 치른 오 차장 아들을 재수하게 만들고, 지금 어디선가 김 부장의 딸도 노리고 있다는 ‘수시 납치’. 어감마저 좋지 않은 이건 대체 뭔가요?
 
④“수시 납치 위기에서 딸을 건지려면?”
수시전형·수능 최저학력기준 등 공식적인 입시 용어도 모르는 ‘입시 까막눈’ 김 부장이 ‘수시 납치’와 같은 입시 은어를 알 리 없지요. 수시 납치라는 단어를 듣고 ‘수험생을 노린 납치범의 소행’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수시 납치는 김 부장의 염려처럼 범죄 행위를 의미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수시 납치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전에 대학 입시의 큰 틀을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학 입시가 수시전형과 정시전형으로 나뉜다는 사실 정도는 이제 김 부장도 아실 겁니다. 수능을 치른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정시전형과 달리, 수시전형은 지난 9월 대학별로 원서를 받기 시작해 이미 1차 합격자를 발표한 곳도, 2차 시험을 진행 중인 곳도 있지요.  
 
수시 전형은 2단계 혹은 3단계로 이뤄지는데, 1차는 서류 심사이고 2차는 면접과 논술 등 시험을 보게 됩니다. 수시 전형의 ‘본선’에 해당하는 2차 시험을 대학에 따라 수능 시험 전에 치르기도 하고, 수능 시험 이후에 치르기도 하죠.
 
한 가지 경우를 가정해볼까요. A대학은 수시 전형을 2단계까지만 치르는데 2차 시험인 면접을 수능 전에 봅니다. 그렇다면 수능 전에 이미 A대학은 수시전형 최종 합격자가 나오겠죠. 이렇게 A 대학의 수시모집에서 최종합격을 한 학생이 수능에 응시했는데, 수능 만점을 받았다고 합시다. 수능에서 만점을 받았으니, 수능 성적만으로 합격자를 선발하는 정시전형에 응시한다면 어떤 대학이건 합격은 떼놓은 당상일 테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학생은 정시전형에는 지원할 자격이 아예 없습니다. 이유는 ‘수시전형에서 합격한 학생은 정시 모집에 응시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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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납치’라는 은어도 이 원칙 때문에 생긴 겁니다. 일단 수시에 합격하면 아무리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도 정시전형에 지원조차 못하고 수시모집에서 합격한 대학에 다녀야 하는 상황을 빗대 ‘납치’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만약 수시로 합격한 대학에 가기 싫다면? 오 차장 아들처럼 재수를 해 이듬해 다시 수능을 치러야 합니다.
 
김 부장의 딸은 이미 몇몇 대학의 수시 1차에 합격한 상태인데요. 1차 합격한 대학 중 수능 전에 면접이나 논술 등 2차 시험을 진행하는 곳이 있다면, 수시 납치 가능성에 대해 먼저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김 부장님! 수시 납치 위기에 놓인 딸을 구하고 싶으시다고요. 2차 시험을 앞둔 딸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이 대학에 합격하면 아쉬움 없이 다닐 자신이 있니?"
"정시전형으로 이 대학에 다시 응시했을 때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한창 수능 시험 공부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수시 2차 시험 준비와 병행하기 힘들지 않겠니?"라고요. 
 
그럼, 딸의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까요? "이제 아빠도 입시 만렙이네"라면서요.
 
▶도움말: 신동원 휘문고 교장, 김혜남 문일고 진학부장,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 남윤곤 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장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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