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협력, 상생? 액면대로 들었다간 한국 외교 ‘코피’ 쏟는다!

중앙일보 2017.10.31 07:00
신형 국제 관계(新型國際關係). 시진핑 시대 중국의 외교 나침판이다. 외교 지도 사상이기도 하다. 9월 18일 19차 당대회 보고에서 시 주석이 향후 중국 외교 방향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상호 존중과 공평·정의, 협력·상생에 기초한 '신형 국제 관계'의 구축을 추진하겠다. 냉전과 강권 정치를 버리고 대항이 아닌 대화, 동맹이 아닌 동반자로서 새로운 교류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절대 권력 확보한 시 주석, 국제 사회 눈돌려
신형 국제 관계, 궤도 오르면 미중 경쟁 더 격렬
韓, 시진핑의 외교전략 다시 한번 따져볼 때

각국 국민이 스스로 발전의 길을 선택할 권리를 존중하고 국제적 공평과 정의를 수호하며 자국의 의지를 타국에 강요하는 것과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 강대국이 약소국을 깔보는 것에 반대한다. 중국은 방어적 국방정책을 고수하고 중국의 발전이 어떤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 중국이 어떻게 발전하든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확장의 길도 가지 않겠다.

다른 나라와 공존 공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천 번 만 번 지당한 말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 모든 국가가 바라는 바다.  
시 주석이 유엔 총회에서 신형국제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사진 CCTV]

시 주석이 유엔 총회에서 신형국제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사진 CCTV]

그런데 시 주석의 다음 말을 들어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이 자신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쓴 열매를 삼킬 것이라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 중국은 타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자국의 발전을 도모하지 않겠지만 자신의 정당한 권익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나라 외교든 자국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그러니 틀린 말 아니다. 한데 중국이 ‘자국 이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항상 문제다. 국제적 관례나 규범을 존중하면서 최고의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게 외교의 기술이고 예술이다. 그러나 중국은 종종 이런 규범을 무시하고 자국 기준으로 국가 이익을 정의하고 타국의 이익을 억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예컨대 중국의 남 중국해 영토 주장에 대한 법적 근거 부재를 분명히 한 국제 상설 중재 재판소의 판결 결과에 대한 불복,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등이 대표적이다. 약소국을 깔보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남 중국해와 영토 분쟁을 하고 있는 동남아 약소국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 중국의 외교 행태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민주 인사, 류샤오보에게 노벨 평화상을 줬다고 노르웨이 참치 수입을 막은 중국에 이르면 중국에게 외교란 ‘힘’ 혹은 ‘완력’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신형 국제 관계는 다른 나라가 중국을 화나게 하지 않고 중국의 말을 잘 듣는다는 전제 하에서 “국제 사회 공평과 정의를 수호하며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공존공영한다”는 말의 다름 아닌 것이다. 어느 나라든 힘이 없으면 중국과의 합리적 상식적 외교란 존재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남중국해 영토분쟁 도서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중국 [사진 둬웨이]

남중국해 영토분쟁 도서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중국 [사진 둬웨이]

사실 ‘신형 국제 관계’라는 시 주석의 외교 방략은 2014년 말 처음 언급됐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관심을 받은 건 2015년 9월 26일(현지시간) 시 주석의 유엔 총회 연설 이후다. 당시 그는 “협력과 공영을 핵심으로 하는 신형 대국 관계를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인류 운명공동체론’을 들고 나왔다. 인류가 서로 남이 아니니 국가 간 평등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거였다. 물론 이를 액면대로 믿으면 바보라는 것, 앞에서 이미 말했다.
 
그럼 시 주석은 왜 당 대회에서 이런 전략을 다시 강조하며 결의를 다지는 걸까. 속내를 들여다보면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가 숨어있다. 사정은 이렇다.
 
2013년 6월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시 주석은 오바마를 향해 미국과 중국이 ‘신형 대국 관계’를 구축하자고 제의했다. 기존 패권국가인 미국과 신흥 대국인 중국이 서로 대항하지 않고 상대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면서 국제 질서를 주도해 나가자는 거였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을 환영한다”는 답변으로 시 주석의 제의를 에둘러 거부했다. 중국의 핵심 이익에는 남 중국해와 대만 문제 등 미국의 핵심 이익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후 시 주석은 화도 났고 상심도 컸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와 신형 국제관계 전략이다. 2013년 9월과 10월에 걸쳐 나온 일대일로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 아랍, 유럽, 아프리카를 고대 실크로드로 묶어 중국 영향력 극대화와 미국 영향력 극소화를 노리는 소프트 전략이다. 신형 국제관계 역시 같은 맥락인데 국가 간 협력과 평등, 공영을 앞세워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천하 도략적 관점도 간과하면 안 된다. 마오쩌둥 시대 중국 외교는 천하 3분론에 근거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을 한데 묶은 선진국 진영, 소련과 동구를 묶는 공산 진영, 그리고 나머지 제3세계다. 당시 중국은 제3세계 맹주 자리를 적극 노렸다. 서방 선진국에 비해 힘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었다. 1955년 저우언라이가 반둥회의에 참석해 ‘반식민주의’를 외치며 제3세계 규합을 주도한 이유다. 
시진핑 주석은 도광양회 전략을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바이두 백과]

시진핑 주석은 도광양회 전략을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바이두 백과]

덩샤오핑은 도광양회(韜光養晦·나서지 않고 조용히 실력을 연마함)를 주문했다. 중국이 아직은 미국 등 선진국에 상대가 안 되니 최소한 1세기는 조용히 힘을 기르라는 주문이었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자 장쩌민과 후진타오 전 주석은 중국이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 전략을 들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덩의 도광양회를 잊지 않고 신중한 외교를 펼쳤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의 생각은 달랐다. 경제적으로 이미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대국이 됐고 군사적으로도 항모와 각종 첨단 무기로 무장하면서 도광양회 폐기 전략을 들고 나왔다. 중국의 힘은 이미 미국 등 서방 진영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해졌다고 자신한 것이다. 최근 끝난 19차 당대회에서 황제 급 절대 권력을 확보한 시 주석이 이제는 국제 사회에서의 절대 권력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젊은이들에게도 분발유위를 강조하는 중국 [사진 에스키 닷컴]

젊은이들에게도 분발유위를 강조하는 중국 [사진 에스키 닷컴]

그래서 나온 게 돌돌핍인(咄咄逼人·자기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주변을 괴롭힘) 혹은 분발유위(奮發有爲·정신을 차리고 적극적으로 할 일을 함) 전략이다. 더 이상 국제 문제에서 미국 눈치 안 보겠다는 의미다. 그 내심을 시 주석은 2013년 말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하자마자  ‘중화부흥’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신형 국제 관계가 본 궤도에 오르면 미중 간에 경쟁은 더 격렬해질 게 뻔하다. 
 
중국은 각 국이 평등하다는 기치를 내걸고 각국을 미국에서 떼어내려 할 것이고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보다 다양하고 강한 전략을 들고 나올 것이다. 한국 외교 정신 안 차리면 ‘쌍코피’ 쏟기 딱 좋은 국제 정세다. 시진핑의 신형 국제 관계가 뭔지 다시 한번 고민하고 지혜를 모을 때다.
 
 
차이나랩 최형규
미세먼지 실험 아이디어 공모, 이벤트만 참여해도 바나나맛 우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