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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국민의 법감정이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2017.10.31 02:27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형량·무죄추정·소년법·공소시효·사형제도…. 국민의 법감정과 형사사법 제도는 격렬하게 충돌할 때가 많다. 그건 어떻게 보면 운명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의 형사사법 제도는 사실 일본을 통해 유럽에서 수입한 것이고, 유럽에서 근대적 형법을 만든 이들은 대중의 법감정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대 형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체사레 베카리아는 명저 『범죄와 형벌』 서문에서 ‘몽매하고 흥분 잘하는 군중들과는 거리를 두고, 오직 공공복리의 담당자들을 위해’ 썼다고 선언한다. 그는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므로 범죄로 인한 쾌락이 6이라면 형벌은 최소한인 7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감정을 경계하고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와 공리주의가 근대 형법의 뼈대인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마녀사냥·공개처형의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였으니까.
 
일상有感 10/31

일상有感 10/31

흥미로운 것은 현대 심리학과 뇌과학의 연구 결과다.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전차가 인부 5명을 향해 질주하는 상황에서 스위치를 눌러 인부 1명만 있는 쪽으로 선로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같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스위치가 아니라 직접 다른 인부를 선로 위로 떠밀어야만 5명을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앞의 질문에는 ‘예’를 선택한 많은 사람이, 뒤의 경우에는 ‘아니오’를 택했다. 뭐가 다른가?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의 책 『옳고 그름』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 뇌의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에서 강력한 정서적 거부반응을 보였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동족 간 잔혹행위·친족살해·아동성폭행 등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위협하는 행위들에 대한 자동적인 거부감과 분노를 진화시켰다. 감정은 도덕적 판단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실체다.
 
법이 감정을 맹종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감정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요치 몇 주의 상해냐, 사망이냐로 범죄 경중을 비교하는 양적 공리주의 사고만으로는 잔혹한 아동성폭행을 살인보다 무겁게 처벌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21세기 형법의 과제는 원시부족사회 때 진화된 우리의 도덕 감정 중 동성애 혐오, 이민족 혐오처럼 현대 문명과 배치되는 쪽은 제어하되, 존중할 것은 존중하며 사법제도 내로 수용할 방법을 이성적으로 재검토해 보는 것이 아닐까.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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