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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책, 박효신 영화 … 음악의 변신은 무죄

중앙일보 2017.10.31 01:00 종합 24면 지면보기
음반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을까. 가수 루시드폴(42)과 박효신(36)은 이 오랜 고민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들고 돌아왔다. 한 사람은 정규 8집과 동명의 에세이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예감)를 함께 엮었고, 다른 한 사람은 지난해 10월 발매된 7집 수록곡을 68분짜리 블록 뮤직비디오 ‘뷰티풀 투모로우(Beautiful Tomorrow)’로 만들어 극장에서 개봉했다. 미니앨범도 모자라 한 곡씩 쪼개내는 싱글의 시대에, 한 시간이 멀다 하고 뒤바뀌는 음원차트의 시대에 무모하기 그지없는 도전이다.
 

넥스트 CD 고민하는 음반
에세이집에 키운 귤까지 세트로
1년 전 앨범도 영화로 재탄생해
“음악 쉽게 들을 수 있는 시대
새로운 경험 선사할 필요 있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루시드폴에게 ‘음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래된 숙제다. 1998년 인디밴드 미선이로 데뷔 이후 2년마다 꼬박꼬박 음반을 발매하고 있는 뮤지션으로서 나는 CD를 좋아하지만, 사람들은 과연 CD를 필요로 할까 라는 고민에 빠진 것이다. 일찍이 6집 ‘꽃은 말이 없다’(2013)를 USB로 발매하고, 7집 ‘누군가를 위한’(2015)을 본인이 재배한 귤과 함께 홈쇼핑에서 판매한 것 역시 이런 연유에서다.
 
2년 전 CD와 동화책, 사진엽서, 인증서로 구성된 패키지를 꾸렸다면, 이번엔 아예 책을 앞세웠다. 책을 사면 부록처럼 CD를 주는 것마냥 뒤표지 안쪽에 자리하게 한 것이다. 루시드폴은 “요즘같이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굳이 음반을 사서 들어준다면 뭐라도 더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농부인 내가 줄 수 있는 게 귤이고 작가인 내가 쓸 수 있는 게 글밖에 더 있겠느냐”고 말했다.
 
음원의 시대에 음반을 재해석하는 두 뮤지션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원고지에 글을 써서 출간한 에세이집과 함께 컴백한 루시드폴. [사진 안테나]

음원의 시대에 음반을 재해석하는 두 뮤지션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원고지에 글을 써서 출간한 에세이집과 함께 컴백한 루시드폴. [사진 안테나]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잘 안 보이는 건 아니다. 에세이는 처음이지만 소설·서간집·가사집과 번역서로는 10번째인 베테랑답게 지난 2년에 걸친 창작과정을 담담하게 담았다. 타이틀곡 ‘안녕’으로 인사를 건네며 나무와 벌레들과 친해진 이야기나 ‘그 가을 숲속’을 거닐며 ‘바다처럼 그렇게’ 사는 법을 찬미한다. 과수원 한복판에 손수 지은 오두막에서 원고지 위에 써내려간 글과 오두막에 꾸린 녹음실에서 자연을 벗삼아 직접 녹음하고 매만진 소리는 애초에 한몸이기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필름 카메라와 슈퍼 8㎜로 찍은 일상사진과 영상 역시 한적한 제주의 풍광에 그리움을 더하는 느낌이다.
 
2014년 결혼 후 제주로 가 귤 농사를 시작한 이래 직접 개량한 레시피로 무농약 인증까지 받은 루시드폴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전직 화학자로서 칼슘성분이 많이 필요한 감귤에게 목초액 대신 산도가 더 높은 현미식초를 사용해 액비를 만들기도 한다.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7집 앨범 수록곡을 엮어 음악 영화로 만든 박효신. [사진 글러브엔터테인먼트]

7집 앨범 수록곡을 엮어 음악 영화로 만든 박효신. [사진 글러브엔터테인먼트]

반면 지난해 7집 앨범 ‘아이 엠 어 드리머’ 발표 당시 218페이지에 달하는 아트워크를 선보인 박효신은 드라마에 보다 천착했다. 6년 간의 공백기를 깨고 초심으로 돌아가 만든 앨범이었던 만큼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영상과 함께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뮤직비디오가 몸집이 커져 본격 영화로 이어졌다. 악동뮤지션이나 방탄소년단이 뮤지컬 쇼트 필름이나 하이라이트 릴 형태로 웹상에서 영상 콘텐트를 공개한 적은 있지만, 처음부터 극장이라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그에 맞는 영상을 제작하는 것은 드물다.
 
이야기는 지난해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 장면으로 시작해 그로부터 석 달 전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같은 소속사 가수이자 앨범의 공동프로듀서인 정재일(35)과 함께 쿠바로 떠나 음악을 만드는 여정을 담았다. 극중 “음악은 나를 완성시킨 동시에 나를 짓누르는 그림자”라는 박효신의 고백처럼 세상 어디서도 창작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음악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이다. 길거리에서 소매치기로 자랐지만 뮤지션을 꿈꾸는 소년과의 교감하는 이야기로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상영시간 내내 흐르는 음악은 이를 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오랜 시간 억눌린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박효신의 노래와 영화 ‘옥자’ 등 다양한 형태의 영상음악을 경험한 정재일의 신들린 연주가 어우러져 콘서트와는 또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글러브엔터테인먼트 측은 “평소 영화를 즐겨보는 박효신씨 의견에 따라 지난 콘서트도 극장에서 생중계 하고 해당 장면을 다시 뮤직비디오에 활용한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영상 콘텐트로 팬들과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6일 개봉 당일 무대인사에 나선 박효신과 정재일은 “음악이 영상과 함께 하면서 새로운 생명력이 생기는 걸 경험했다”며 “음악이 새롭게 들리는 감동을 여러분에게도 느끼게 해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김영재 교수는 “음악산업의 규모는 커졌지만 수익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가 콘텐트를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비자 경험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통합 마케팅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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