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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 흔들리는 WTO 체제 … 한국 양자협상 대응력 키워야

중앙일보 2017.10.31 01:00 경제 8면 지면보기
미국 우선주의 시대, 세계무역 어디로
‘재협상을 정말로 원하는가, 아니면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려는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 양자주의 선호
WTO 분쟁해결위원 임명 거부
EU는 호주 등과 FTA 체결 속도
미 리더십 공백 메우기엔 역부족

 
지난 17일 종료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4차 재협상을 마치고 캐나다와 멕시코 대표단이 내린 결론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선거 기간에, 그리고 취임 후에도 나프타를 대표적인 나쁜 자유무역협정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하며 재협상을 공약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지난 8월 중순부터 양국과 재협상을 시작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의 저의를 의심하게 된 것은 4차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분쟁 해결 절차를 규정한 나프타의 19장을 폐기하자고 제안했다.
 
합의한 규칙에 얽매이기보다 양자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미국의 속내가 드러난 대목이다. 캐나다는 1987년 미국 및 멕시코와 나프타를 협상할 때 미국의 이런 요구에 항의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 가장 논란이 된 미국의 요구는 FTA를 5년마다 체계적으로 재검토하자는 내용이다. 5년마다 FTA의 유지나 폐기를 자동으로 검토하는 조항을 넣자는 것이다. 협정 당사국이 원하면 논의하여 기존 조항을 일부 수정하든지, 아니면 재협상을 하든지 하는 현재의 조항보다 몇 발자국 더 나간 매우 미국 우선적인 요구다.
 
트럼프, 취임 첫 날 TPP서 탈퇴
 
비즈니스 인사이트 10/31

비즈니스 인사이트 10/31

교역과 투자의 안정성(확실성)을 확보하려고 FTA를 체결한다. 그런데 기업이 수출입을 하고 현지 투자를 했는데 5년마다 조항이 변경된다면 누가 중장기 교역과 투자를 하겠는가? FTA의 원래 목표를 거스르는 미국의 요구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는 무역에서 실체를 드러내 왔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일본과 호주 등 11개국과 합의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TPP는 FTA가 아니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지정학적인 셈법을 지닌 자유무역협정이었다. 없으면 만들어내야 하는데 어렵게 성사된 것을 트럼프가 버렸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다자주의가 국익을 침해해 왔다며 정책 재량권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양자주의를 선호한다는 입장을 트럼프 행정부는 수차례 밝혔다.
 
이같은 미국 우선의 통상정책은 WTO 운영에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WTO 회원국들이 상호 협의하여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면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DSB)에 이를 의뢰해 기구의 결정에 따른다. 판결에 불만이 있는 회워국은 DSB에 한 번 상소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공석이 된 DSB 상소기구의 분쟁해결위원(패널리스트) 임명 절차를 거부해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국가들의 의구심을 자아낸다.
 
지난 8월 EU와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는 DSB 상소기구 7명 패널리스트 가운데 공석이 된 두 사람의 임명 절차를 시작하자고 미국에 제안했으나 미국은 거부했다. 상소기구는 최소 3명의 위원이 분쟁을 심리하고 판결을 내린다. 현재 이 기구의 패널리스트는 5명인데 한명이 12월 퇴임해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으면 4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중국의 자오 홍 위원은 전직 관료출신이어 WTO 분쟁의 단골 고객인 중국이 소송 당사국이 되면 심리나 판결에 참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위원의 임기는 2018년 9월에 종료된다.
 
미국이 이유를 밝히지 않고 상소기구 위원의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양자주의 선호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 후 DSB의 판결이 주권을 침해하면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전 미국 행정부는 종종 통상법의 핵심 내용을 위법으로 판결한 DSB에 대해 불만을 가졌지만 트럼프처럼 임명 절차 개시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EU 집행위원회의 세실리아 말름스트롬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미국이 상소기구 위원 임명에 불만이 있으면 말해야 하는데 아무런 언급이 없다”고 밝혔다. EU의 경우 통상정책은 개별 회원국이 아니라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가 행사한다. 그는 싱가폴과 브라질, 일본 등이 EU에 자유무역의 리더가 돼 달라고 요청한다고 밝혔다.
 
EU는 올 해들어 부쩍 FTA 체결에 속도를 내면서 미국의 리더십 공백을 메워 왔다. 지난 7월 6일 일본과 경제동반자협정(EPA)에 서명했고 올 해 안에 호주 및 뉴질랜드와 FTA 협상을 개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EU의 이런 자유무역 움직임에 프랑스가 제동을 걸었다.
 
지난 5월 취임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통합과 자유무역을 지지했지만 어디까지나 자국의 입장에서다. 그는 공정무역을 강조한다. 비회원국이 EU 회원국의 전략산업을 인수할 때 전략적 산업인지를 심사해 이를 불허해야 한다며 EU 차원의 심사 조항 신설을 요구했다.
 
2010년 유로존 위기 후 중국 국영기업은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 일부 주변부 회원국의 항만과 은행 등을 인수했다. 일단 네덜란드와 스웨덴 등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EU 회원국들이 프랑스의 이런 요구를 거부해 아직 EU 차원에서 진전은 없다.
 
미국은 2차대전 종전 직전 국제통화기금과 국제부흥개발은행을 양대 축으로 하는 브레튼우즈체제(Bretton Woods system)를 설립했다. 이 체제에는 원래 국제무역기구(ITO) 설립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미 의회의 반대로 ITO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잠정적인 ‘관세및무역에관한 일반협정(GATT)’으로 대체됐다.
 
한미FTA 재협상 다각적 준비를
 
어쨌든 이 소규모 잠정기구가 전후 자유주의 무역질서를 뒷받침해왔다가 1995년 WTO로 확대 제도화했다. 자국이 중심이 돼 만든 다자주의에 기초한 자유무역 질서를 버리고 약화시키는 게 트럼프 행정부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월 중순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 세계화를 지지하며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했다. 하지만 아직도 자유무역에서 중국의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EU가 함께 주도하던 자유무역이었는데 EU 혼자서 리더가 되기에는 힘이 부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안쌤의 ‘유로톡’제작운영자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안쌤의 ‘유로톡’제작운영자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로 GDP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는다. 그만큼 대외 경제환경에 취약하다. 내년 초부터 미국과의 FTA 재협상이 시작된다. 나프타 재협상에서 보듯이 미국은 강경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실익을 따져 다각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안쌤의 ‘유로톡’제작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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