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J report] 남는 쌀 사는데 1조 쓴 정부 … “쌀농사 구조조정 우선”

중앙일보 2017.10.31 01:00 경제 2면 지면보기
“쌀값 21만원 달성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아닌가.”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
 

‘쌀값 21만원’ 공약한 문재인 정부
시장 적극 개입 산지값 13% 올라

1인당 소비량 절반으로 줄었는데
쌀 공급량 초과 개선될 기미 없어

생산조정제 한시적 시행으론 한계
보조금 등 ‘쌀 편중’ 정책 바꿔야

“장관 지명(6월) 당시 12만6000원대였는데 지금 15만원을 넘어섰다. 정부 노력도 평가받을 만하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3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장. 쌀값 문제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여야 의원들은 한 가마(80㎏) 기준 15만원대인 쌀 가격이 물가상승률 대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정부가 이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질타했다. 황 의원은 “20년 전 쌀값에도 못 미치는 상황인데 장관이 15만원 쌀값을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농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종회 국민의당 의원도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현재 적정 쌀값은 40만원”이라고 주장했다.
 
JReport 10/31 쌀값

JReport 10/31 쌀값

국내 쌀 가격은 농가소득과 직결된다. 국정감사 때마다 적정 쌀값 논란이 매해 반복되는 이유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농업소득의 25%가 쌀 소득에서 나온다. 지난해 기준 벼 재배 농가는 전체 농가의 절반 이상인 56.6%(60만5000호)를 차지했다. 쌀값 하락은 농심(農心) 위축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농업인 간담회에서 “지난 대선 때 공약하고도 당선되지 못해 이루지 못한 쌀값 21만원 약속을 정권교체로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는 취임 첫해부터 쌀 가격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올해 정부는 쌀 수급 안정을 위해 수확기(10~12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인 72만t을 매입했다. 공공비축분(35만t)에 시장격리분(37만t)을 추가로 사들이는 데 총 1조원 넘는 예산을 썼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올 6월 12만6640원까지 추락했던 산지 쌀값이 수확기 대책 발표 직후(10월 5일) 뛰어올라 15만원선을 회복했다. 직전 조사(9월 25일 기준 13만3348원)보다 13.2% 올랐다.
 
10월 한 달간 쌀값은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 25일 기준 산지 쌀값(80㎏ 기준)이 15만1164원으로 열흘 전(15만984원)보다 180원 더 올랐다. 통계청은 한 달에 세 번(5일, 15일, 25일) 산지 쌀값을 조사해 발표한다. 전한영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햅쌀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10월 수확기에는 통상 쌀값이 하락하는데 10월들어 산지 쌀값이 오른 건 2002년 이후 15년만”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농가들은 추가 가격 상승을 예측해 출하 시기를 일부러 늦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부 매입분 확대 효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뒤늦게 물량이 몰려 나와 가격 상승세가 주춤할 우려가 있다. 전 과장은 “추수와 쌀 출하가 마무리되는 다음달 초까지 가격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쌀값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국내 쌀 수급 불일치가 심화되고 있어서다. 30년 전(1997년) 102.4㎏이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지난해 61.9㎏으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같은 기간 연간 쌀 생산량도 23%가량(545만톤→420만톤) 줄었지만 소비 감소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공급 초과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
 
남는 쌀은 고스란히 재고가 된다. 군납미, 가공용 쌀 등으로 유통되거나 복지용(정가의 10%가격)으로 판매되지만 일부에 그친다. 지난달 쌀 재고량은 196만t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승룡 고려대 교수(식품자원경제학과)는 “자연적인 소비 감소분으로는 수급을 맞추기 어려워 적극적으로 수급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사후 가격 조정보다 사전에 공급 균형을 찾는 게 우선이라는 논리다.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내년부터 2년간 한시적으로 3차 쌀 생산조정제를 실시한다. 앞서 2003, 2011년 두차례 시도했던 제도인데 밥쌀 농사를 콩이나 사료용 벼 등 다른 작물 농사로 전환했을 때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골자다. 농식품부는 논이 10만㏊ 줄면 쌀 생산량이 50만t 가량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년에 5만㏊씩 전환을 목표로 2018년도(1차) 예산 1680억원을 편성했다. 휴경지 지원 여부 및 작물별 세부 단가 등을 포함한 확정안을 11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국내 쌀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은 역사가 길다. 쌀 개방 본격화로 2005년 추곡수매제가 폐지되고 국내 소비량의 17~19%가량만 사들이는 공공비축제가 도입됐지만 쌀 직불금 제도(고정·변동)에 대한 농가 의존이 여전히 높다. 지난해 정부가 농가에 지급해야 할 변동직불금 총액은 세계무역기구(WTO)의 농업보조총액(AMS) 상한선(1조4900억원)을 넘은 1조4977억원을 기록했다. 쌀값이 하락해도 목표가격(18만8000원) 대비 85%를 정부가 지원해줘 생긴 결과다.
 
전문가들은 쌀에 편중된 농정 구조를 바꾸는 데 정책 목표를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태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쌀 가격을 높게 유지하면서 생산조정제를 실시하는 것은 증산정책과 감산정책을 동시에 펴는 셈”이라면서 “단기적으로 생산조정제가 불가피하더라도 2년 후 농가들의 쌀 농사 복귀를 막기 위해서는 다른 품목을 자발적으로 선택해 경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50%선이다. 이 중 곡물자급률은 24%를 기록했다.
 
세종=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