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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종교개혁 500주년 … 루터의 개혁신앙 낮은 목소리로 전파

중앙일보 2017.10.31 00:02 부동산 및 광고특집 2면 지면보기
독일 드레스덴 프라우엔 교회 앞에 세워진 말틴 루터 동상의 모습. [사진 한국루터교회]

독일 드레스덴 프라우엔 교회 앞에 세워진 말틴 루터 동상의 모습. [사진 한국루터교회]

1517년 10월 31일, 로마 가톨릭 교회의 한 이름 없는 수도사였던 ‘말틴 루터’는 베텐베르크 교회 문에다 편지 형식으로 95개 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면죄부 문제를 따지기 위해 독일 제국교회 수석 대주교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에게 보내는 내용이었다.
 

한국루터교회
1832년 독일 선교사 통해 첫 인연
지역개척 지양 … 미디어 활용 선교
루터 선집 등 다양한 연구서 출간
정식인가 신학대 세워 목회자 양성
영상제작·방송·해외선교도 활발

거대한 종교개혁 물결의 시작이자 중세의 암흑이 걷히는 순간이었다. 루터의 반박문으로 촉발된 종교개혁의 물결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결국에는 유럽 전체 기독교 세계의 개혁의 문을 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루터교회의 모태가 될 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출발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500년. 한국루터교회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낮은 목소리로 루터를 기념하고 있다.
 
한국의 루터교회, 1832년 7월 한반도에 첫발
지난 2008년 10월 열린 한국루터교회 선교 50주년 기념예배·대회 모습. [사진 한국루터교회]

지난 2008년 10월 열린 한국루터교회 선교 50주년 기념예배·대회 모습. [사진 한국루터교회]

루터교회(Lutheran Church)는 16세기 말틴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에 의해 재발견된 복음의 가르침 위에 서 있는 교회다. 한국이 루터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독일 루터 교인으로 자유 선교사였던 칼 귀츨라프(1803-1851)가 1832년 7월 한반도의 서해안에 들러 1개월간 한자어로 된 전도지를 돌린 데서 비롯된다.
 
공식적으로 한국에 루터교가 들어와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8년부터다. 몇 년간 준비 기간이 끝난 뒤 미국의 미조리 의회(LCMS)가 파송한 세 명의 선교사(L.B. Bartling, M.W. Dorrow, K.E. Voss)는 58년 1월 13일 서울에 도착해 선교를 시작했다. 9개월 뒤에는 지원용 박사가 귀국해 선교팀(LCMS)에 합류했다.
 
교파 분열의 혼란기에 선교부는 ‘깨끗한 출발’을 시작했다. 우선 지역 교회를 개척하는 전통적 선교 방법을 지양하고 초교파적 사업을 선교 정책으로 삼아, 매스미디어를 통한 선교를 시작했다. 방송선교는 ‘루터란 아워’의 첫 프로인 ‘이것이 인생이다’가 59년 11월 6일 첫 전파를 타면서 시작됐다. 문서선교는 이듬해(60년 5월) ‘기독교 통신 강좌’(CCC)로부터 시작했다. 또 사회봉사를 통한 선교의 일환으로 66년 3월 사회사업부 (‘디아코니아’)도 개설해 구호사업을 펼쳤다.
 
‘루터선집’은 한국의 루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
컨콜디아 출판사는 출판매체를 통한 선교의 일환으로 59년 세워졌다.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과 루터교의 신앙고백을 소개하는 저서 및 일반 기독교 저작물을 출판했다. 60년부터 맹인용 점자 교재를 포함한 통신교재를 배포했고, 74년 베델 성서 연구의 한국어판 교재를 출판했다. 기독교 교양지로 창간된 ‘새생명’(19년간 통권 203호)은 각 교단에서 잡지 만드는 일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12권으로 된 ‘루터선집’은 한국의 루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휴간되었던 ‘루터 연구’지(64-68년 발간)는 97년에 부활했다.
 
74년부터 초교파적으로 실시되어온 한국 베델 시리즈 성서연구는 80년부터는 성서편 외에도 생활편도 다루고 있다. 86년 이후 미주지역의 목회자도 실시하고 있다. 베델성서연구원 창립 20주년을 맞은 94년에는 서울 양재동에 ‘베델회관’을 봉헌해 성서연구 보급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한편 교회는 종합적인 선교 계획을 실천하고자 ‘루터교 센터’를 75년에 세웠고, 현재 잠실에 루터회관이 건축 중이다.
 
1987년 열렸던 베델성서 연구 세계대회 전경. [사진 한국루터교회]

1987년 열렸던 베델성서 연구 세계대회 전경. [사진 한국루터교회]

목회장 양성 위한 루터신학교, 86년 1월 18일 대학 인가 받아
루터교회는 초교파 운동을 벌이는 한편 전도활동에도 힘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59년 2월 15일 YMCA 회의실에서 모임을 가진 것이 그 첫 시발이었다. 한국의 루터교회는 58년 선교사의 입국 때부터 69년까지 ‘한국 루터교 선교부’(KLM)로 있었다. 71년 2월 제1회 총회에서는 ‘한국 루터교 선교회’라는 명칭으로 하나의 자립교회로 발돋움하기에 이르렀다. 선교지원 교회인 미조리 의회와는 ‘자매교회’에서 ‘동역교회(partner church)’로 바뀌어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선교부는 교회 전도사업을 위해 일할 목회자를 양성하고자 ‘루터신학원(LTA)’을 설립(66년)해 루터신학교가 설립될 때까지 루터교 목사 지망생을 교육했다. 학생들은 연세대 신과대학이나 연합 신학대학원에 등록해 위탁교육도 받았다.
 
84년 3월에는 새 교사를 경기도 신갈에 마련해 첫 강의를 시작했다. ‘루터신학교’는 86년 1월 18일 대학 ‘학력 인가’를 받게 됐다. 약 12년 뒤인 97년 12월 5일에는 증설된 교사와 함께 대학교로 개편되어 이름도 ‘루터신학대학교(LTU)’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다양한 교파 배경을 가지고 있다. 루터신학대학교는 미국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컨콜디아신학교, 세인 폴에 있는 컨콜디아대학교 등과 자매 관계를 맺고 학생 교환을 하고 있다.
 
다양한 채널 통한 선교활동과 활발한 해외 교류
한국 루터교회는 영상제작, 방송, 출판물, 선교사 파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루터교회 목사의 설교를 루터란 아워를 제작해 지난 2012년 봄부터 기독교 방송을 통해 매주 화요일 방송하고 있다. 극동방송을 통하여서는 2012년 가을부터 방송 중이다. 또 선교잡지인 ‘새생명’은 79년 203호로 정간했다가 2008년 8월에 월간에서 계간으로 바꿔 계속 출판하고 있다.
 
해외 선교교류도 활발하다. 일본과는 2008년부터 교단과 일본루터교단(NRK)의 지도자가 교류 방문을 했다. 그 결실로 2012년 10월 24일 일본 삿포로 루터교회(일본교단 총회장 시무교회)에서 양 교단장이 선교협정을 공식 체결했다.
 
일본에는 이정우 준목이 일본교단에 선교사로 선임되어 2013년 7월 2일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같은 날 정식으로 파송장을 받고 선교사로 사역했다. 또 베트남 다낭에 있는 이레교회(가정교회)를 한국루터교 선교 50주년 기념 교회당으로 선정해 선교 50주년 기념예배 헌금으로 건축해 봉헌했다. 또 교회 부설로 어린이 도서관도 설립했다. 앞으로도 베트남에 있는 루터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총회장과 선교 교육국장이 네 교회를 방문했고 계획에 따라 선교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도 2003년 교단과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성 바울 교회와의 선교협정을 맺었다. 노르웨이·필리핀 등지에도 목회자를 파견하거나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송덕순 객원기자 song.deoks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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