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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취향]진짜 여행은 일상을 사랑하는 것

중앙일보 2017.10.31 00:01
정면에서 본 ‘보안여관’(오른쪽)과 복합문화공간 ‘보안1942’. [중앙포토]

정면에서 본 ‘보안여관’(오른쪽)과 복합문화공간 ‘보안1942’. [중앙포토]

서울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와 경복궁을 오른편에 두고 북악산 방향으로 걷다보면 ‘낡아서’ 눈에 띄는 건물 한 채를 만나게 된다. 통의동 터줏대감인 ‘보안여관’이다. 시인 서정주, 화가 이중섭 등 문화예술가가 묵었던 보안여관은 2004년 폐업하면서 여관으로서의 기능은 종료됐다. 이 오래된 건물이 '최소한의' 리모델링을 거쳐 2010년 전시장으로 부활했다. 여관이지만 머물 수는 없었던 보안여관은 2017년 7월 다시 투숙공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았다. 보안여관 바로 옆에 쌍둥이 건물 ‘보안1942’가 개장하면서부터다. 보안1942는 서점·카페·갤러리를 갖춘 문화예술컴플렉스로, 게스트하우스까지 품고 있다.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이자 보안여관과 보안1942을 이끌고 있는 최성우(57) 대표는 “보안1942를 전 세계 문화예술가가 먹고, 보고, 머물고, 드나드는 일상 예술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1980년 설립된 일맥문화재단은 최 대표 외조부인 태창기업 고(故) 황래성 회장의 유지를 받든 문화예술 지원 재단이다. 최 대표는 2012년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에 올랐다. 전 세계 예술 공간을 찾아 부지런히 여행을 나서는 나그네이기도 하다는 이 예객(藝客)의 여행법을 물었다. 
서점과 시장 등 일상의 공간에서 그 도시의 깊이를 느끼는 여행을 즐긴다는 보안1942 최성우 대표. [사진 최성우]

서점과 시장 등 일상의 공간에서 그 도시의 깊이를 느끼는 여행을 즐긴다는 보안1942 최성우 대표. [사진 최성우]

여행을 자주 다니나
경희대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 디종국립대학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한 후 1992년부터 2년 간 프랑스문화성 문화정책 부문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말이 연구원이지 외국인 입장에서 프랑스의 문화 예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프로젝트의 일원이었다. 프랑스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문화첨병에 발탁된 셈이다. 프랑스 정부가 자국 문화를 사랑하고 확산시키는 외국인을 양성하기 위해 어떤 투자를 했는지 아나? 바로 여행이었다. 여행이야말로 그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하고 저절로 사랑에 빠지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프랑스 정부는 잘 알고 있었다. 프랑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박물관과 미술관 안의 박제된 예술만이 아니라 일상의 예술을 봤다. 구시가·카페·영화관 등 생활인의 공간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때 경험으로 여행지를 가면 시장과 서점은 꼭 방문한다. 시장은 그 도시의 물질문화, 서점은 정신문화의 수준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 시장의 품목만 봐도 식문화뿐만 아니라 그 도시의 장인 문화를 엿볼 수 있고, 서점을 보면 지식과 철학을 대하는 일반인의 태도를 알 수 있다.

佛문화성 출신 일맥문화재단 최성우 이사장
프랑스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건 여행
어딜 가든 서점·시장에 꼭 들러
근대문화유산·먹거리 가득한 부산 알리고 싶어

시장이나 서점이 인상적이어서 좋았던 여행지가 있나.
세계 최초 사진작가인 니엡스의 스튜디오. [사진 니엡스사진박물관]

세계 최초 사진작가인 니엡스의 스튜디오. [사진 니엡스사진박물관]

프랑스에서는 샤롱 쉬흐 손느(Chalon-sur soane)가 생각난다.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340㎞ 떨어진 도시인데 시내 구경에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다. 인적이 드문 도시에 세계 최초로 사진 촬영에 성공한 조셉 니엡스(Joseph Niepce, 1765~1833)의 박물관이 있다. 암실에 들어오는 한줄기 빛으로 바깥 풍경이 역상으로 비치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볼 수 있으니 꼭 들러보라. 샤롱 쉬흐 손느의 리브라리 라 망드라고르(Librairie La Mandragore) 서점은 지금껏 봤던 서점 중 최고로 꼽는 곳이다. 1991년에 개점했으니 역사가 오래된 곳은 아니지만 작가와의 대화, 일러스트 전시가 활발히 열리는 서점이다. 서점 주인이 책 한 권 한 권에 북 리뷰를 손 글씨로 적어놨더라.  
프랑스 소도시 샤롱 쉬흐 손느의 작은 서점인 라이브라리 라 망드라고르. [사진 라이브라리 라 망드라고르]

프랑스 소도시 샤롱 쉬흐 손느의 작은 서점인 라이브라리 라 망드라고르. [사진 라이브라리 라 망드라고르]

시장이 매력적인 여행지로는 전남 해남을 꼽겠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장이라고 해서 가보면 실망하기 일쑤다. 전통시장에 통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유통업자라도 있는 건지 물건이 죄다 똑같다. 그런데 해남읍 매일시장은 상품의 차별성이 확실하다. 전남 완도에서 온 활 전복, 고흥·장흥에서 건너온 매생이를 살 수 있는 시장이다. 자신들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명인’도 넘친다. 30년간 자신만의 양념을 가미한 젓갈을 만들거나, 치자무로 쫄깃쫄깃한 단무지를 담그는 반찬 장인도 있다. 일본식 채소절임에 특화된 시장인 교토 니시키 시장을 보는 것같이 재밌다.  
일본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 시장. [사진 니시키시장]

일본 교토의 부엌이라 불리는 니시키 시장. [사진 니시키시장]

여행지에서 묵는 숙소도 궁금하다.
1824년 지어진 아비뇽 최고(最古) 영화관인 유토피아 시네마. [사진 최성우]

1824년 지어진 아비뇽 최고(最古) 영화관인 유토피아 시네마. [사진 최성우]

호텔이든 게스트하우스든 아니면 예술가 레지던스든 숙소 유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반드시 구시가에서 머문다는 원칙은 지킨다. 구시가 곳곳을 탐색하며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기 위해서다. 요새는 현지인 집을 빌리는 에어비앤비도 종종 이용한다. 2016년 프랑스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는데 주행거리만 3500㎞였다. 파리부터 아비뇽까지 이동하면서 현지인집에 자주 머물렀다. 특히 아비뇽에서 빌린 에어비앤비는 최고였다. 옛집을 리모델링한 복층 빌라였는데, 저렴하고 아늑했다. 구시가 숙소를 기점으로 아비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가장 오래된 영화관, 현지인의 식당을 둘러봤다. 
프랑스 중부 자동차 여행 중 마주친 해바라기밭. [사진 최성우]

프랑스 중부 자동차 여행 중 마주친 해바라기밭. [사진 최성우]

여행 계획이 있다면 들려달라.
부산시 초량동의 카페 브라운핸즈 백제점. 근대문화물로 지정된 옛 백제병원 건물을 카페로 개조했다. [중앙포토]

부산시 초량동의 카페 브라운핸즈 백제점. 근대문화물로 지정된 옛 백제병원 건물을 카페로 개조했다. [중앙포토]

부산의 명물 먹거리가 한데 모여있는 깡통시장. [중앙포토]

부산의 명물 먹거리가 한데 모여있는 깡통시장. [중앙포토]

프랑스문화성에서 연구했던 경험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고 싶다. 시작은 내 고향 부산이다. 나는 부산의 오랜 구도심 초량동의 일본식 적산가옥에서 나고 자랐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하면서 부산은 일본·중국·러시아 문화가 뒤섞인 국제도시가 됐다. 우리나라 근대의 역사와 문화의 원류를 보려면 부산을 여행해야 한다. 국내 작가와 지인을 초청해 부산의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는 ‘부산유람단’을 조직해 떠난 적이 있다. 현재 카페로 변신한 부산 최초 서양식 병원인 백제병원, 보수동책방골목 등을 돌아다녔다. 부산의 소울푸드 ‘어묵’을 맛보는 먹방 여행도 떠났다. 초량영진어묵, 미도어묵 삼진어묵을 돌아다녔다. 문화예술가를 위해 부산만의 유니크함, 부산만의 생활예술을 발견하는 여행프로그램을 계속 만들고 싶다. 내가 프랑스에 반한 것 같이 그 작가들이 부산을 여행하고, 영감을 받고, 한국을 사랑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점조직이 되지 않겠는가. 여행은 일상을 발견하고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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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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