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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사색·풍류·사랑… 함양 3색(色) 테마여행

중앙일보 2017.10.28 08:00
지리산 천왕봉(1915m)에 오르는 최단경로인 백무동 계곡이 있는 경남 함양군은 지자체 중 유일하게 두 개의 국립공원(지리산, 덕유산)을 품고 있다. 그래서 1000m급 산이 15개에 달하고, 봉우리까지 치면 34개에 이를 정도로 산이 많은 지역이다.
 

김순근의 간이역(10)
사색과 명상에 빠지게 하는 평지숲 '상림'
조선 선비의 풍류가 느껴지는 화림동 계곡
변강쇠와 옹녀가 사랑을 나누던 오도재

이처럼 산 높고 골 깊은 지역이다 보니 판소리 여섯마당의 하나인 변강쇠타령의 지리적 배경이 됐다. 속세를 떠나 호연지기를 기르며 학문에 전념하기 좋아 항교와 서원이 많이 들어서면서 학자들이 줄이어 배출된 선비의 고장이기도 하다.
 
 
신라 말 최치원이 조성한 평지 숲 
 
 
완전히 단풍이 든 함양 상림 모습. [사진 함양군 제공]

완전히 단풍이 든 함양 상림 모습. [사진 함양군 제공]

 
함양에는 다른 지자체에 없는 또 다른 기록이 있다. 국내 최대의 평지 인공 숲인 ‘상림(上林)’이 그것. 신라말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것으로 현재 3분의 1 정도만 남아있는데도 21만4500㎡(폭 100m, 길이 1.6km)의 방대한 규모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의 상림은 사색과 명상의 숲이 된다.
 
이처럼 함양은 서로 다른 독특한 컬러를 갖고 있어 여행의 묘미가 있다. 국내 최대의 평지 숲을 찾아 사색에 잠기고 조선 선비들의 풍류를 느끼며, 해학 넘치는 변강쇠와 옹녀의 흔적을 찾아 쉬엄쉬엄 떠나보자.
 
국내 최대의 평지 숲 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은 신라 진성왕때 함양태수를 지내던 최치원 선생이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했다. 숲에는 40여종의 낙엽관목 등 116종의 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특히 가을이면 오색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수북이 쌓이는 낙엽들로 인해 사색과 명상의 숲이 된다.
 
 
상림숲은 활엽수 나무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림북쪽에는 단풍가 많다. [사진 김순근]

상림숲은 활엽수 나무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림북쪽에는 단풍가 많다. [사진 김순근]

 
단풍이 물듦과 동시에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상림에 들어서면 비밀의 숲에 들어서는 듯 신비로움이 감돈다. 발걸음은 자연히 느려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점차 무념무상에 빠져든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으면 맑은 계류소리, 떨어지는 낙엽, 아이들의 웃음소리, 연인들의 속삭임 등이 사색으로 안내하는 명상음이 된다.
 
이른 아침 안개가 살짝 낄때면 몽환적 분위기가 감돌아 굳이 이른 아침에 찾는 이들도 많다. 숲속에는 계곡처럼 만든 작은 시내와 고풍스런 정자를 비롯해 이은리 석불 등 지방문화재와 조선시대 역대 함양군수들의 찬양비도 숲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유생들이 과거보러 가다 놀아 
 
함양은 조선시대때 공립학교격인 향교와 사립학교인 서원이 많아 안동에 버금갈 정도로 학자가 많이 배출되어 ‘좌 안동, 우 함양’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사대부 문화가 꽃피웠던 곳이다. 그래서 곳곳에 정자와 누각, 서원, 향교들이 많다.
 
 
화림동계곡의 거연정. [사진 김순근]

화림동계곡의 거연정. [사진 김순근]

 
특히 함양읍에서 국도 26호선을 따라 무주로 가는 덕유산 기슭의 화림동 계곡은 옛날 과거보러가는 유생들이 육십령을 넘기위해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다. 계곡을 따라 농월정,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 등 정자들이 즐비한데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자연을 벗삼아 시를 읊고 학문을 논하며 풍류를 즐겼다. 특히 농월정에서 거연정까지 6km의 계곡길은 경관도 아름다워 선비들의 멋과 정취를 엿볼 수 있는 드라이브 길이다. 가을이면 계곡의 단풍으로 더욱 운치있다.
 
 
화림동계곡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농월정. [사진 김순근]

화림동계곡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농월정. [사진 김순근]

 
이중 농월정은 밤이면 앞에 펼쳐진 넓고 하얀 암반에 반사된 달빛에 주변이 밝아져 선비들이 밤늦게까지 계곡수의 청아한 소리를 반주삼아 시를 읊고 달을 희롱하며 놀았다고 한다. 기암절벽 암반위에 세워진 거연정은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는데,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와 노송, 기암들과 어우러져 명승지로 지정될만큼 경관이 아름답다.  
 
 
변강쇠와 옹녀의 발자취
 
 
오도재 가는길의 변강쇠와 옹녀 묘. [사진 김순근]

오도재 가는길의 변강쇠와 옹녀 묘. [사진 김순근]

 
판소리 여섯마당중 변강쇠 타령은 변강쇠와 옹녀가 말년에 등구 마천에 정착한 것으로 나온다. 등구마을이 있는 함양군 마천면은 함양읍과 오도재(773m)를 사이에 두고 있다. 변강쇠와 옹녀가 읍내로 가려면 아마도 이 오도재를 넘나들었을 게 뻔하다. 지금은 2차선 도로가 개통되었지만 2001년 이전까지만 해도 험준한 산길이었다. 변강쇠와 옹녀의 발자취는 이 오도재를 중심으로 곳곳에 남아있다.
 
변강쇠와 옹녀가 정착한 등구마을은 함양읍에서 오도재를 넘어가면 왼쪽에 마을표지석이 있다. 마을 입구에는 수령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고 경사진 산기슭에 위치한 마을에는 현재 40여가구가 살고 있다.  
 
등구마을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 칠선계곡 가는 의탄교를 건너면 벽송사가 나온다. 게으른 변강쇠는 옹녀가 땔감을 해오라고 하자 주변의 장승을 뽑아 도끼로 패서 불 태우다 결국 장승들의 저주를 받아 ‘동티’병에 걸려 죽는다. 지리산 둘레길 4구간 초입에 있는 벽송사에 이와 관련된 장승이 있다. 지방문화재인 이곳 목장승 2기중 하나가 머리가 도끼로 찍힌 듯 쪼개져 있고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다. 6.25 전쟁 직후 땔감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장승으로 전해지고 있다.
 
 
오도재 정상 아래에 있는 변강쇠공원. [사진 김순근]

오도재 정상 아래에 있는 변강쇠공원. [사진 김순근]

 
오도재 정상에서 함양읍쪽으로 내려가면 변강쇠와 옹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장승들로 변강쇠 공원을 조성해 놓았고, 조금 더 내려가면 계곡변 오도재 주막 뒤편에 누군가 변강쇠와 옹녀묘 가묘를 만들어 놓았다. 변강쇠와 옹녀 묘 가는 길목에는 보통 남녀보다 월등한 사랑을 과시한 그들의 끈끈한 사랑을 말해주듯 두 나무 밑둥이 붙은 층층나무 연리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처럼 함양읍에서 오도재를 넘어가는 길을 변강쇠와 옹녀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해학의 길이라 할만하다.
 
 
함양토박이가 알려주는 ‘함양 100배 즐기기’ 여행팁
“3색테마를 하룻만에 다 둘러보긴 어렵습니다. 함양군청 인근에 있는 상림을 산책한뒤 지리산 가는길을 따라 오도재~벽송사의 변강쇠·옹녀 테마와 상림~화림동 계곡을 연계한 조선 선비들의 풍류테마 코스로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함양 토박이 이용기씨(61). [사진 김순근]

함양 토박이 이용기씨(61). [사진 김순근]

 
함양 3색테마 여행을 제안한 이용기씨(61)는 함양에서 태어나 함양에서 학교를 나온뒤 함양군 휴천면 면서기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등 함양을 떠나본적이 없는 함양토박이다. 2014년 12월 기획감사실장을 끝으로 퇴직한뒤 군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향을 알차게 알릴수 있는 관광관련 스토리텔링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용기씨는 3색 테마여행지외 빼놓아선 안될 명소를 추가로 추천했다. 우선 지리산 가는길의 오도재를 오를땐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선정된 구불구불한 길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아가라고 말했다. 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포토존도 설치되어 있는데 2006년 ‘드라이빙 이모션’이란 주제로 영화배우 전도연씨가 출연한 한 타이어회사 CF가 이곳에서 촬영됐단다.
 
함양읍에서 오도재로 가는 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다. [사진 김순근]

함양읍에서 오도재로 가는 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다. [사진 김순근]

 
오도재 정상을 넘어서면 왼쪽에 휴게소와 함께 지리산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의 지리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공원도 꼭 들리라고 한다. 이곳은 옛날 선비들이 호연지기를 길렀던 곳이기도 하다. 장쾌하게 펼쳐진 지리능선을 바라보며 옛 선조들이 느꼈던 호연지기를 체험해보라고 말했다.
 
변강쇠로부터 수난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벽송사 목장승. [사진 김순근]

변강쇠로부터 수난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벽송사 목장승. [사진 김순근]

 
변강쇠에 수모당한 목장승이 있는 벽송사를 둘러본뒤에는 인근 서암정사를 방문하길 권한다. 일반 사찰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서암정사는 불교의 화엄세계를 상징하는 갖가지 마애불과 석굴에 지은 불당 등으로 인해 한국의 돈황으로 불리는 이색지대다.  
 
서암정사 전경. [사진 김순근]

서암정사 전경. [사진 김순근]

 
화림동 계곡의 선비문화탐방때는 TV드라마 ‘토지’의 촬영지였던 지곡면 개평마을의 고옥촌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정여창 고택을 비롯해 오담고택, 노참판댁 고가 등 100년이 넘은 60여채의 한옥들이 남아있어 선조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엿볼수 있다.  
 
유림들이 많은 지역이어서 아직 거부감이 있는 ‘변강쇠와 옹녀’ 테마에 대해서는 색다른 해석을 내놨다. 변강쇠와 옹녀가 등구 마천에 정착한 것은 함양의 독특한 토양에서 자란 건강식품과 관련 있다고 주장한다. 함양지역의 토양에는 타지역보다 3~6배 많은 게르마늄이 포함돼 있어 산삼축제를 열 정도로 산삼으로 유명한데다 대표적인 강장채소인 양파도 품질 좋기로 정평나 있다.  
 
또 지리산 계곡 엄천강에서 잡힌 물고기들을 재료로한 어탕국수는 이곳의 별미로 통하는데 여기에 향신료인 제피가 반드시 들어간다. 초피나무 열매를 갈아만든 제피는 젠피라고도 하는데 신장기능을 강화시키는 강장식품으로 함양의 지리산자락에서 많이 생산된다. 변강쇠가 건강한 남성의 상징인 만큼 게르마늄이 많은 함양에서 나온 이같은 다양한 건강식품들이 곧 ‘변강쇠’ 원동력이며, 이는 함양의 특산품과 먹거리인 ‘8품(品) 8미(味)’에 담겨있다고 말했다.
 
상림에 있는 연리목. 느티나무와 개어서나무의 몸통이 붙어있다. [사진 김순근]

상림에 있는 연리목. 느티나무와 개어서나무의 몸통이 붙어있다. [사진 김순근]

 
상림숲에 연리목 2개가 있는 것을 비롯해 변강쇠와 옹녀 묘 가는 길 초입에 연리목이 있고 최근에 층층나무 연리목 군락이 발견되는 등 함양에 유독 연리목이 많은 것에도 주목한다. 연리지 및 연리목은 부모 자식간의 사랑, 남녀간의 변함없는 사랑을 뜻하는 만큼 함양에 오면 가족애가 돈독해 지고 청춘남녀 및 부부들은 사랑이 더욱 깊어진다고 말했다. 
 
김순근 여행작가 sk4340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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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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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근 김순근 여행작가 필진

[김순근의 간이역] 은퇴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도전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걱정과 두려움도 있겠지만, 성공의 성취감은 무엇보다 값질 것이다. ‘간이역’은 도전에 나서기 전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처음 가는 길은 먼저 간 사람들이 겪은 시행착오 등 경험들이 큰 힘이 된다. 성공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한 이들의 경험담과 조언을 공유하고, 좋은 힐링 여행지를 통해 도전에 앞서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며 막연한 두려움을 씻어내고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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