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죄 뒤집힌 판결 왜? 10문장으로 살펴보는 ‘제국의 위안부’

중앙일보 2017.10.27 18:21
지난 2013년 8월 출간된 박유하 교수의 책『제국의 위안부』. [중앙포토]

지난 2013년 8월 출간된 박유하 교수의 책『제국의 위안부』. [중앙포토]

 
“독자들은 마치 대부분 또는 많은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했고 일본군에 협력해 함께 전쟁을 수행했으며, 일본은 이들을 강제동원하거나 강제연행하지 않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유죄를 선고한 2심)

1·2심 모두 "명예훼손적 사실적시 있다" 인정했지만
1심 "학문적 자유는 틀린 의견도 보호해야"
2심 "허위사실로 특정된 피해자 명예 훼손"

 
“모든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라도 적시하고 있다고 볼 수 없고,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무죄를 선고한 1심)
 
4년 전 출간된 박유하(60)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는지를 두고 두 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문석)는 27일 박 교수가 허위사실을 책에 써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점이 인정된다며 1심을 깨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1월 1심에서 박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관련기사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유죄로 인정되려면 ▶주관이 아닌 사실을 적시했는지 ▶사회적 평가가 저하됐는지 ▶피해자가 특정됐는지 ▶고의가 있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 
 
박 교수가 이 책에 주관적 분석이나 평가만 적은 것이 아니라 진위 판별이 가능한 사실관계도 포함시켰다는 점은 1심 법원에서도 인정됐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사실을 적시한 표현이라도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고 봤다. 
 
“직접적인 폭행·협박에 의해 강제연행됐는지 아니면 학교에 가게 해 주겠다거나 취업을 시켜 주겠다는 등의 기망·유혹에 의해 위안부가 되었는지는, 그 주체가 일본 군인인지 아니면 민간인 포주나 업자인지 등은 위안부 피해자로서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일본이 강제연행을 공식적 정책으로 지시했는지 아니면 개별군인의 일탈로 강제연행이 발생했는지 역시 피해자로서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반면 2심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갖는 사회적 평가나 가치는 그들 대부분이 일본의 지시에 따라 의사에 반해 강제동원돼 성적 학대를 당하는 생활을 강요당했다는 데 있다”면서 “일본국과 일본군이 이들을 강제 동원하거나 강제 연행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피해자들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한 사실을 적시한 것이다”고 봤다.
 
27일 서울고법에서 명예훼손죄 유죄를 선고받고 나온 박유하 교수. 박 교수는 "즉각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27일 서울고법에서 명예훼손죄 유죄를 선고받고 나온 박유하 교수. 박 교수는 "즉각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검찰은 박 교수를 기소하면서 책 내용 중 35군데의 표현을 문제삼았다. 이 중 1·2심에서 모두 ‘명예훼손적 사실 적시’라고 판단한 것은 총 2군데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를 하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는 견해는 옳을 수도 있다(158쪽)”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를 우리가 부정해온 것 역시 그런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296쪽)”는 부분이다.
 
이는 “자발적인 의사로 위안부가 됐다는 사실을 전제로(2심 서울고법)” 하고 있는 표현으로, “어떠한 경위로 동원돼 위안부가 됐는지는 종래 일본의 부정론자들이 문제삼아 왔다는 점에서 만약 어떤 위안부가 자발적인 의사로 위안부로 됐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이는 그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와 평가를 저하시킨다(1심 서울동부지법)”는 것이다.
  
'명예훼손' 문제된 책 속 표현들 살펴보니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명예훼손이 되는 사실 적시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고 박 교수에게 고의성이 없다고 봐 무죄를 선고했다. “책의 전체적 내용을 고려하면 독자로서는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위안부가 된 일부 위안부들’이 스스로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고 일본에 대한 배상을 요구해온 고소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 그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나머지 피해자들을 가리키는 내용으로 인식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 당시 판결문의 내용이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수만명에서 수십만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중 자신이 위안부임을 밝힌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제3자가 일본군 위안부를 생각할 때 전체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보다는 우선 자신이 위안부임을 밝힌 피해자들을 떠올리게 된다”면서 피해자가 특정됐다고 봤다.
 
박유하 교수. [연합뉴스]

박유하 교수. [연합뉴스]

 
명예훼손과 표현·학문의 자유가 충돌될 수 있다는 점은 두 법원이 모두 고심한 부분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피고인이 잘못된 생각이나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당부는 토론과 반박을 통해 걸러져야 할 것이지 법관의 형사처벌에 의해 가려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명예훼손죄에 대한 과다한 형사처벌로 자칫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서는 안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고, 
 
1심 재판부는 “학문적 표현의 자유는 옳은 의견 뿐 아니라 틀린 의견도 보호한다. 옳은 의견만 보호를 받는다면 의견의 경쟁이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고 그 경우 학술적 의견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국가기관이 될 것이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