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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서거 당시 北침략 막았던 美 키티호크 해체

중앙일보 2017.10.27 15:30
북한 침략 막았던 미 항모 키티호크, 역사 속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북한의 침략을 억제했던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 해군, 2009년 1월 퇴역시킨 마지막 디젤 항모 해체키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긴급 파견돼 북한 견제
베트남전, 걸프전 참전은 물론 2008년까지 한반도 경계

26일(현지시간) USA투데이에 따르면 미 해군은 2009년 1월 퇴역시킨 키티호크함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이 항모는 퇴역 후 미 서부 워싱턴주 퓨젯사운드항에 정박해 있었다. 미 해군은 키티호크함을 전쟁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방안은 물론 업그레이드해 다시 대양으로 보내는 것까지 다양하게 검토해 왔다. 미 해상시스템사령부의 대변인인 콜린 오루크는키티호크함의 해체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핵 추진이 아닌 디젤엔진을 탑재한 키티호크급 항모 중 1번 함으로 마지막까지 활동한 키티호크함은 최대 배수량 8만3000t에 전투기와 헬기 등 85대의 함재기와 5624명의 승조원을 태웠다. 1960년 취역했다.
역사적 족적도 많이 남겼다. 베트남전은 물론 걸프전에도 참가했다. 베트남전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65년부터 미군이 철수한 1972년 말까지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 임무 등을 수행했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는 일본 요코스카(橫須賀)를 모항으로 하는 7함대에 전진 배치돼 북한의 침략 억제 역할을 했다. 이후 핵 추진 항공모함인 조지 워싱턴호에 임무를 넘겼다. 현재는 로널드 레이건함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2005년 부산항에 입항한 키티호크함. [중앙포토]

2005년 부산항에 입항한 키티호크함. [중앙포토]

 
그보다 더 키티호크함을 따라다닌 사건은 1972년 10월 12일에 발생한 ‘함상 반란’이었다. 필리핀 수빅 만에 정박해 있던 키티호크 탑승 흑인 승조원들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면서 백인 동료들과 벌인 주먹 싸움이 다음 날까지 이어지면서 46명이 부상했다. 베트남전 막바지였던 당시 이 항모의 작전 수행은 12시간 중단됐다. 미 해군 지휘부는 이 사건 직후 주먹 싸움에 가담한 흑인 26명만 군법회의에 회부하면서 편파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해군 참모총장이던 엘로 줌월트 대장은 인사와 근무 등에서 인종차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해군 복무규정을 개정했다. 키티호크 함상 반란은 해군 내의 인종차별을 줄이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1979년부터는 베트남인들의 집단 해상 탈출 지원활동에 참여했다. ‘보트피플’을 발견해 안전지대로 후송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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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현재 핵 추진 항공모함 11척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신형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함을 취역시켰다. 신형 핵 발전기와 전투체제, 이중 대역 레이더 등을 갖춘 강력한 항모이다. 20년간 활용할 수 있는 원자로 2기를 동력원으로 하고 있으며, 함재기는 80대 정도 탑재하고 있다. 특히 최신형 전자식 사출장치(EMALS)를 사용할 수 있어 함재기들이 항모의 짧은 비행갑판을 안전하게 이륙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니미츠급 항모는 원자로에서 만들어지는 고온고압의 증기를 이용해 비행기들을 이륙시켰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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