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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문재인 구두' 제작 장애인들 다시 일어섰다

중앙일보 2017.10.27 12:43
‘문재인 구두’로 알려진 아지오 구두가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유석영 전 대표(左)와 문 대통령이 아지오 구두를 착용한 모습. [중앙포토ㆍ연합뉴스]

‘문재인 구두’로 알려진 아지오 구두가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유석영 전 대표(左)와 문 대통령이 아지오 구두를 착용한 모습.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청각 장애인들과 다시 모여 문재인 대통령께 새 구두를 다시 만들어 드릴 수 있게 되다니 꿈만 같아요.”

문재인 대통령 신고 있던 낡은 ‘아지오 구두’…‘부활’
경영난 겪다 2013년 이미 폐업했다는 사실 알려져
유석영 전 대표 “내년 봄이면 신제품 만들어 낼 것”

다음달 중 협동조합 창립총회 예정…발기인 17명 참여
작가 유시민, 가수 강원래, 성우 배한성 등 발기인 참여
국민참여로 운영 위해 다음달 1일 총 5억원 펀드 모금
공장 설립, 기계 장비 구입, 초기 운영비용으로 충당

장애인 구두 기업 ‘구두 만드는 풍경’의 유석영(55) 전 대표의 말이다. 이 회사를 설립했던 유 전 대표는 시각장애 1급의 장애인이다  
 
앞서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 있던 낡은 구두 사진이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후 문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후 청각 장애인들이 모여 만든 ‘아지오(AGIO)’라는 수제화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구두 만드는 풍경’에 다시 주문했지만, 이 회사는 경영난을 겪다 2013년 이미 폐업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중앙일보 5월 31일자 23면)
유석영 전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아지오 구두를 지난 5월 중앙일보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유석영 전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아지오 구두를 지난 5월 중앙일보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민규 기자

 
‘문재인 구두’는 지난해 5월 광주에서 열린 ‘제3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촬영된 한장의 사진을 통해 낡은 구두 한 켤레가 뒤늦게 화제가 됐던 것.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엎드려 참배하는 사진에서 닳고 갈라진 구두 밑창이 포착된 것이었다. 아지오는 2012년 9월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오늘은 구두데이’라는 행사를 열고 3일간 구두를 팔았고,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구두 한 켤레 산 뒤 그 구두를 계속 신었다고 한다.
 
이 구두 회사가 ‘부활’하게 됐다. 유석영 전 대표는 “내년 봄이면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장애인이 운영하는 구두회사의 폐업 소식을 접한 뒤 많은 사람이 ‘많이 사줄 테니까 다시 살려라. 용기를 잃지 마라’며 선주문을 잇달아 내거나 격려해 주신 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회사 설립 당시 구두 모델을 해주는 등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아온 유시민 작가와 가수 강원래씨, 성우 배한성씨, 장애인복지시설 관장 등이 발기인(총 17명)으로 참여해 재기를 도와줬다”고 소개했다.  
 
유 전 대표는 “새로이 만드는 회사는 국민들이 살려준 기업이다보니 국민 참여로 자금을 모금한 뒤 함께 키워가는 방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총 5억원 규모의 ‘아지오 펀드’를 만들 예정으로, 다음달 1일부터 펀드 참여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1인당 10만∼50만원씩 투자를 받아 공장 설립비와 기계 장비 구입비, 초기 운영자금 등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했다.
유석영 전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아지오 구두를 지난 5월 중앙일보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유석영 전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아지오 구두를 지난 5월 중앙일보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민규 기자

 
그는 “한 유명 구두회사는 재능기부로 10종류가량의 남성화 디자인를 무상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며 “청각 장애인 일자리를 늘리는 일에 힘을 보태려고 많은 분들이 기부해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전 대표는 새 구두 구입 의사를 전해왔지만 회사 폐업으로 구두를 전하지 못한 문 대통령에게도 새 구두를 만들어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회사 폐업 후 현재 경기도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원장을 맡고 있는 유 전 대표는 사회적 기업이었던 ‘구두 만드는 풍경’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다음달 중 창립총회를 열 예정이다.
 
경기 남부지역 몇 곳을 공장 후보지로 정하고 최종 대상지를 물색 중인데, 현재 공장등록 절차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여서 지난 24일로 계획했던 창립총회를 연기한 상태다. 발기인 대표를 맡은 그는 “내년 3월 아지오 구두의 신상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장애인 근로자 20여 명을 고용해 구두 제작과 마케팅 등 직원교육을 하고 소비자로 구성된 준조합원 1만명을 모집할 예정”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그는 내년 재창업을 위해 이달 말 경기도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원장직에서 물러나 ‘구두 만드는 풍경’ 대표로 자리를 옮긴다.
 
유 전 대표는 “협동조합으로 재창업을 하게 되면 청각 장애인들이 우리나라 구두 장인의 명맥을 이어가는 동시에 품질을 바탕으로 100년을 가는 세계에서 가장 견실한 장애인의 기업 모델을 만들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선주문을 받아서 생산하고 배달하는 방식을 택해 품질을 유지하고, 장기적으로는 청각 장애인이 지역에서 협동조합 대리점을 운영할 수도 있게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유 전 대표는 “나이도 있고 체력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어서 재창업이 굉장히 무섭고 겁이 났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국민들이 우리가 넘어져 있을 때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이다. 관심이 이어지면 청각 장애인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 갈 수 있게 돼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청각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었던 폐업한 이전의 구두 제조회사에는 청각 장애인 6명이 일했다. 이 회사는 경영난으로 3년간 운영하다 결국 4년 전에 이미 문을 닫았다. 이 회사는 대통령도 5년 넘게 신을 정도로 튼튼한 구두를 만들었지만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 했다. 이 회사는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에 있었고,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를 생산, 판매했다.  
 
앞서 유 전 대표는 지난 5월 14일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을 구두를 한 켤레 더 살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구두 회사를 4년 전 폐업해 이제는 안 만들고 있다.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답변한 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았다. 회사가 없어진 가슴 아픈 회한이 한순간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5년 전인 2012년 9월 국회에서 판매행사를 할 당시 구두를 한 켤레를 사간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대행)이 우리 구두를 5년이 지나도록 신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당 대표이던 문 대통령은 아주 즐겁게 구두를 사고, 애로사항도 들어주셨다”고 기억했다.
유석영 전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아지오 구두를 지난 5월 중앙일보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유석영 전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신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아지오 구두를 지난 5월 중앙일보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유 전 대표가 구두 회사를 설립한 것은 2010년 1월 1일이었다. 앞서 2006년 11월 27일부터 파주시장애인복지관장을 맡아 오면서 청각장애인들이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힘겹게 지낸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왔다. 그러던 차에 1980년대만 해도 유명 메이커 구두회사의 생산직 사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상당수 근무했지만 어느새 대부분 사라진 사실과 청각장애인들이 구두 제조업 일에 잘 적응한다는 점도 파악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지역의 청각장애인 6명을 규합해 250㎡ 규모의 경량철골 구조물로 된 공장건물을 임대 내고, 40년 경력의 구두 제조 전문가를 어렵게 초빙해 회사를 차렸다. 3개월만에 5개 구두제품을 선보이며 판매를 시작했다. 당시 친분이 있었던 유시민 작가 등이 모델을 해준 덕분에 출발이 외롭지는 않았다. 한 구두 디자이너가 자원봉사로 도와준 것도 큰 힘이 됐다.  
 
그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정성껏 수제화를 만들면 전망이 있을 것으로 봤다. 그리고 가격 경쟁력에서 자신이 있었다. 편안한 구두를 만들어 차별화하면 호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품질 고급화에 승부를 걸었다. 우수한 품질의 소 가죽(외피)과 돼지 가죽(내피)으로 수작업을 통해 수제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가격을 낮춰 기계로 찍어내듯이 생산하는 메이커 제품 구두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며 힘겹게 경쟁해야 했다.
 
제품을 인정한 신세계 측이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을 시켜줄 정도로 진전도 있었다. 여기에다 전문기관의 검증을 거치는 설립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위치도 제품에 신뢰감을 더하고 사회적인 응원을 기대하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기업활동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우선 ‘장애인들이 만든 구두’라는 비뚤어진 인식을 넘기가 무엇보다 어려웠다. 이들에게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자금 부족으로 신제품 개발에 한계도 컸다. 우수한 제품을 만들고도 광고를 제대로 할 여력이 되지 않아 제품홍보가 항상 턱없이 부족했다. 여기에 유행에 따라 수시로 신제품을 선보여야 하지만 매출 저조로 인한 자금부족으로 신제품 개발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회사 설립 3년 8개월만인 2013년 8월 회사 문을 닫고 말았다.
 
그는 구두 회사를 폐업한 뒤 지난해 6월부터 경기도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 ‘행복을 파는 가게’의 원장직을 맡아 왔다. 장애인들이 만든 사무용품 등 생산품을 구매해 판매하는 일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을 가지고 파주장애인복지관장직을 7년간 맡았고, 구두회사를 운영한 경험 등을 경기도로부터 인정받아 현재의 임무를 맡았다.
 
파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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