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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기부금 관리 구멍 숭숭, '제 2의 이영학' 전혀 못 잡는다

중앙일보 2017.10.27 06:53
12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빼돌린 이영학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지면서 개인이 직접 모금에 나서는 상황에 대한 관리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앙포토]

12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빼돌린 이영학의 사례가 뒤늦게 밝혀지면서 개인이 직접 모금에 나서는 상황에 대한 관리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앙포토]

"제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딸의 병원비가 만들어진다면 바랄 것도 없습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이 2008년 기부금 모집을 위해서 만든 온라인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그는 딸(14)의 희소병 치료를 도와달라며 2005년부터 인터넷·방송 등에 활발히 나섰다. 감정에 호소하며 모은 돈만 12년간 12억 8000만원. 하지만 후원 액수나 사용처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 씨는 기부금과 별도로 기초생활 수급자 지원을 꾸준히 받아왔다.
 

13억 기부받은 이영학, 12년 만에 진실 드러나
단체와 비교해 개인 모금·후원 '감시 사각지대'

연 1000만원 이상 모금은 등록 의무지만 허점
적발 쉽지 않고 불법 행위에도 처벌 세지 않아

기부 단체 관리 소홀도 '모럴 해저드' 부추겨
불법 모금 피해는 '저소득층'에…기부 흔들려

"처벌 강화, 체계적인 기부 감시 체계 필요
낸 돈 제대로 쓰이는 지 기부자들도 챙겨야"

  그가 딸의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후원금의 '진실'이 뒤늦게 밝혀지고 있다. 경찰이 송금 기록을 확인한 결과 딸의 치료비로 쓰인 돈은 1억6000만원에 그쳤다. 나머지는 치료비와 상관없는 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영학 가족 명의로 된 차량 6대를 사는 데 후원금이 들어갔다. 딸 치료와 거리가 먼 본인 문신에도 4000만원을 썼다.
이영학이 '어금니아빠'라는 닉네임으로 온라인에 올린 모금 글. [인터넷 캡처]

이영학이 '어금니아빠'라는 닉네임으로 온라인에 올린 모금 글. [인터넷 캡처]

  이영학이 시민들의 기부금을 이렇게 빼돌려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기부금 모금 단체는 외부 감사나 자체 모니터링을 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개인 모금은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인터넷·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으로 목적이 불분명한 '앵벌이' 모금이 이어져도 적발이 어려울뿐더러 처벌도 세지 않다.
 
 개인 모금을 관리하는 조항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연간 누적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기부 물품)을 모집하려면 광역지방자치단체·행정안전부 등에 모집 목적과 목표액, 사용계획 등을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이 규정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소액 모금 횟수가 아무리 많아도 금액 기준(1000만원) 아래라면 등록 대상이 아니다. 1000만원 넘는데도 등록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이를 어겨도 적발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 강제로 계좌 추적 등을 하기 불가능한데다 온라인에서 기부금을 모으는 사례를 감시하기도 쉽지 않다. 
 
 현행법상 불법 행위가 드문드문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이다. 전모(26)씨는 2015년 광주광역시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립하겠다고 내세워 온라인 모금에 나섰다. 시민 1300여 명이 참여해서 모인 돈이 3300만원. 하지만 소녀상 설치 두 달 만에 기부금 일부를 개인적으로 썼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고발과 수사로 이어졌다. 전씨는 "일부 기부금으로 친구와 술을 마셨다"는 해명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업무상 횡령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고 기부 관련 법 위반만 인정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영학은 정부에 등록하지 않았는데도 적발되지 않았고 기부금을 엉뚱한 데 썼는데도 아무런 감시를 받지 않았다.  
 
  기부 담당 부처가 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 등으로 분산된 점도 체계적인 관리를 어렵게 한다. 김희정 한국NPO공동회의 사무국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관리·감독에 소홀하다. 특히 언론과 인터넷을 모니터링 하는 사람만 충분히 있어도 불법 사례를 적발할 수 있지만 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15일 서울북부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15일 서울북부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모금 기관의 관리 소홀도 '모럴 해저드'를 부추긴다. 26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11년부터 이영학에게 1400여만원을 지원했다. 특히 지난해엔 E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으로 모은 의료비·생계비 1200만원이 이영학 가족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원 대상의 기부금 사용 계획 등을 관리해야 할 공동모금회는 이영학의 '횡령'을 전혀 알아채지 못 했다. 공동모금회처럼 국내 최고의 기부금 관리 노하우를 갖고 있는 기관이 이럴진대 다른 데는 말할 필요가 없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과 연계해서 기부금 부정 수급 여부를 확인하고 있지만, 병원으로 집행되는 의료비와 달리 생계비는 실제 사용처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간 기부 단체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막기 위해 현금으로 주는 생계비보다 사용처가 확실한 의료비 등에만 기부금을 집행하고 있다. 사회복지사가 각 지역의 후원 대상들을 정기적으로 방문 점검도 한다.
서울의 한 쪽방촌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의 뒷모습. 개인 모금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커질수록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저소득층이 피해를 볼 거란 우려가 나온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쪽방촌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의 뒷모습. 개인 모금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커질수록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저소득층이 피해를 볼 거란 우려가 나온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기부금을 받는 저소득층 가구가 일부러 수령 사실을 숨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꺼번에 거액이 들어오면 기초수급자 선정 기준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학이 기부금을 딸 의료비로 정직하게 썼다면 기초수급 자격이 사라졌을까. 복지부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주거비나 의료비, 교육비처럼 '자립'에 도움이 되는 돈은 대부분 공제되거나 극히 일부만 소득·재산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기부금만으로 기초수급 자격이 사라지려면 최소 몇억원을 일시불로 받아야 한다. 또한 국가 지원 범위를 넘어선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에 기부금을 쓰는 경우 대부분 공제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영학 사태로 피해를 보는 건 민간 기부 단체들이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저소득층이다. 불투명한 기부 문제가 이어지면 기부를 원하는 사람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정작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벌써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모금 단체 중 하나인 월드비전 관계자는 "최근 들어 기부금을 어디에 쓰고 어떻게 관리하는지 물어보는 전화가 많이 늘었다. 후원을 끊는 사람들도 정확한 이유를 말하진 않지만 이영학 사건의 영향이 없다곤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기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부 문화를 상징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탑'. 전문가들은 개인 기부 감시 시스템 강화 등으로 기부자들의 신뢰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앙포토]

국내 기부 문화를 상징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탑'. 전문가들은 개인 기부 감시 시스템 강화 등으로 기부자들의 신뢰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처벌을 강화하고 보다 체계적인 기부 감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희정 사무국장은 "기부의 가치를 지키는 일은 정부 역할이다. 모금 단체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 모금하는 사례는 더욱 엄격히 관리하고 제한해야 한다"면서 "영국·호주 등은 개인·단체 상관없이 모금하면 인증번호를 받는다. 우리도 기부용 인증번호나 QR코드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무성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외국에선 모금할 때 목표액을 반드시 제시한다. 목표액을 초과 달성하는 경우엔 거기서 그치도록 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관리 감독을 다 하지 못 한다. 모금 행위를 감시할 시민단체들이 많이 생겨서 기부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1회성 기부'가 많은 국내 기부 문화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 교수는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개인 모금은 불법이라는 걸 기부자들이 인지해야 한다. 내가 기부한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파악하는 등 좀 더 현명한 기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종훈·백수진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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