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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참여 뒤 도움 필요한 곳 달려가, 인생 180도 달라졌다”

중앙일보 2017.10.27 01:42 종합 4면 지면보기
한국에서 ‘촛불’은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 사회적 함의를 갖게 됐다. 누군가는 촛불을 ‘광장 민주주의’와 연결시켰고, 다른 누군가는 ‘평화’라 말했다. 또 혹자는 ‘특정 세력의 정치적 도구’라고 말한다. 계기는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올해 4월 29일까지 주말마다 계속된 촛불집회였다. 총 23회 열린 집회에는 1700만 명(주최 측 주장)의 시민이 참여했다. 29일은 첫 촛불집회가 열린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촛불은 어느 한 사람, 한 세력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광장에는 촛불을 든 사람, 질서 유지를 위해 밤을 지새운 이들, 이를 지켜보고 기록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촛불과 그 뒤의 1년, 참가자·관찰자·비판자·관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① 참가자들의 시선
중고생들 집회로 이끌었던 최준호씨
“함께 목소리 내니 세상 바뀌더라”
경찰차에 꽃 스티커 제안한 이강훈씨
“새 정부 지지자 일부가 극단 행동
이게 과연 정의인가 생각들 때도”

 
 집회 자원봉사단으로 활약했던 이지연씨. [중앙포토]

집회 자원봉사단으로 활약했던 이지연씨. [중앙포토]

주부 이지연(45)씨가 기억하는 지난겨울 서울 광화문광장은 영하의 날씨 속에서 따스함을 느꼈던 곳이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 때 생애 처음으로 집회에 나간 뒤 올해 4월 29일까지 매주 집회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는 “처음 집회에 갔을 때 현장에 있던 인파와 어마어마한 차벽을 보며 ‘도와줘야 할 사람이 있어야겠다’ 싶어 자원봉사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183일간 매주 평화롭게 촛불집회가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시민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컸다. 고생한다며 핫팩과 간식을 나눠 주던 사람, 용돈까지 쥐여 주려 했던 어르신 등이 지금도 이씨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년 후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이씨는 그때 함께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는 “촛불집회 이후 정치·사회 뉴스를 챙겨 보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봉사활동도 다니며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살게 됐다. 촛불은 그렇게 내 인생을 180도 바꿔 놨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때 경찰의 차벽에 ‘꽃 스티커’ 붙이는 아이디어를 낸 이강훈 작가. [중앙포토]

촛불집회 때 경찰의 차벽에 ‘꽃 스티커’ 붙이는 아이디어를 낸 이강훈 작가.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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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경찰 차벽에 평화를 상징하는 ‘꽃 스티커’를 붙여 화제가 됐던 이강훈(44) 작가는 “폭력을 덜어낸 저항을 해 보고 싶어 ‘꽃’을 떠올렸다”고 회상했다. 촛불집회 이전까지 별다른 사회 참여 활동을 하지 않았던 이 작가는 촛불을 계기로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촛불정국 이후 한국 사회 모습에 대해 이 작가는 내심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새 정부가 잘하고 있지만 이를 열렬히 지지하는 대중 사이에서 ‘대의와 생각이 다른’ 소수 의견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올 때마다 ‘이것이 과연 정의일까’란 생각을 한다. 촛불은 잘못한 누군가에 대해 국민이 심판한 거지 다른 누군가를 지지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촛불집회를 주최했던 ‘중고생연대’ 전 대표 최준호씨. [중앙포토]

청소년 촛불집회를 주최했던 ‘중고생연대’ 전 대표 최준호씨. [중앙포토]

청소년들은 지난 촛불집회 때 지속적으로 동력을 제공한 주역이었다. 당시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었던 중고생연대 전 대표 최준호(19)씨는 “학교에서 늘 경쟁하는 것만 배워 오다 ‘다 같이 목소리를 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촛불집회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성인이 된 최씨는 “촛불집회 이후 단순히 먹고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넘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고 했다.
 
집회에 참여했던 이현민양. [중앙포토]

집회에 참여했던 이현민양. [중앙포토]

하지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청소년 참가자 이현민(18)양은 “청년들은 집회에서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이후 투표권도 갖지 못했고, 일상도 촛불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여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수화 통역을 한 황선희씨. [중앙포토]

집회에 참여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수화 통역을 한 황선희씨. [중앙포토]

황선희(34)씨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지난겨울, 집회 현장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화 통역 봉사를 했다. 늘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그는 “다른 봉사자들과 덜덜 떨며 20~30분씩 돌아가면서 수화를 했다. 그래도 그때 무대 위에서 본 촛불 파도는 잊히지 않는다”고 기억했다. 그는 “장애인 문제 등에 대해 계속 소통하려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지난 1년은 그래도 긍정적인 면이 많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을 분석한 책 『탄핵 광장의 안과 밖』을 펴낸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소속 서복경 연구원은 “세계사를 돌아보면 프랑스 오월혁명처럼 무언가를 향한 집단적 열정이 폭발하는 시기가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그 타이밍을 막 지나온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벨기에 출신 정치학자 아리스티드 졸버그가 말한 ‘모멘텀 매드니스(momentum madness·광기의 순간)’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가 지나면 사람들은 자신이 이전에 살았던 세상에 대한 기억의 일부를 지운다. 그렇게 생각의 도약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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