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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인연 끝까지 간다 … 충성심으로 뭉친 ‘시파이’

중앙일보 2017.10.27 01:29 종합 12면 지면보기
시진핑의 신시대 <5> 인맥지도와 용인술 
중국 공산당에 새로운 계파가 탄생했다.
 

정치국 25명 중 14명이 시진핑계
공청단파·상하이방·태자당 제쳐
리잔수·차이치·황쿤밍·천민얼 등
시진핑, 지방근무 때 운명적 만남
‘내 사람과 아닌 자’ 철저히 구별

당의 요직을 분점해 온 전통의 공청단파와 상하이방(幇) 및 태자당에 이은 제4의 계파라 부를만 하다. 수적으론 열세지만 파워는 나머지 파벌을 합친 것보다 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친위군단을 일컫는 ‘시자쥔(習家軍)’ 얘기다. 최근엔 ‘시파이(習派)’라 부르기도 한다.
 
시진핑 이력과 인맥지도

시진핑 이력과 인맥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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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공산당 1인자가 될 때만 해도 시 주석의 당내 인맥은 두텁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줄곧 지방에서만 근무한 데다 후야오방(胡耀邦)-후진타오(胡錦濤)-리커창(李克强)으로 이어져 온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이나 장쩌민(江澤民) 이후 중앙에 큰 세력을 형성한 상하이방처럼 든든한 정치적 배경이 없었던 탓이다. 대신 시 주석은 지방 근무시절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옛 부하들을 차례로 발탁해 올렸다. 이들이 당·정·군·지방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25일 선출된 정치국 25명 가운데 14명이 시자쥔으로 분류된다.
 
시자쥔의 형성은 시진핑의 인생 역정이나 정치 행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 주석은 청소년 시절을 산시성 량자허(梁家河)의 시골에서 토굴 생활을 하며 보냈다. 문화대혁명기 베이징의 지식청년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낸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에 합류한 것이다. 반(反)부패 사정을 주도하며 시진핑 1기 체제를 떠받친 왕치산(王岐山) 전 기율위 서기와의 반세기 인연은 이때 시작됐다. 시 주석은 이웃 마을에 배치된 왕의 토굴을 찾아가 책을 빌려보고 밤새워 인생상담을 했다.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대학 졸업후 중앙군사위 판공실에서 잠깐 일한 뒤 지방근무를 자청한 시 주석은 허베이성 정딩(正定)현 부서기로 내려갔다. 서열 3위의 상무위원에 오른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을 여기서 만났다. 시 주석은 이웃 현 서기인 리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시 주석은 3년 뒤 푸젠성으로 건너가 17년간 일했다. 여기서 차이치(蔡奇) 베이징 서기, 황쿤밍(黃坤明) 선전부 부부장,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 주임 등 시자쥔의 주축 인물들과 인연을 맺었다. 쉬치량(許其亮)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군내 인맥도 이때 넓혔다.
 
이 가운데 차이치와 황쿤밍의 운명은 특히 흥미롭다. 공직 입문 이래 줄곧 푸젠에서만 근무하던 두 사람은 1999년 저장(浙江)성으로 옮겨갔다. 지방 간 인사교류를 권장한 중앙의 방침에 따라 푸젠성과 저장성이 지방 간부를 두 명씩 맞바꿨기 때문이다. 그들은 2002년 저장 서기로 승진해 부임한 시 주석과 재회했다. 두 사람 모두 이번에 정치국원이 됐다.
 
시 주석은 저장에서 측근 인맥을 대거 넓혔다. 천민얼(陳敏爾) 충칭 서기, 리창(李强) 장쑤 서기, 잉융(應勇) 상하이 시장, 중산(鐘山) 상무부장, 멍칭펑(盟慶豊) 공안부 부부장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중 천 서기는 새로 부임해 온 시 주석 명의로 4년 간 232편의 신문 칼럼 연재를 기획하고 책임졌다.
 
시 주석은 2007년 상하이 당서기로 재직한 7개월의 짧은 기간에도 측근을 만들었다. 이번에 정치국원이 된 딩쉐샹(丁薛祥) 중앙판공청 부주임과 양샤오두(楊曉渡) 기율위 부서기가 대표적이다.
 
시진핑은 10년 상무위원으로 발탁되면서 25년 간의 지방 근무를 마쳤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용인술을 읽을 수 있다. 개인적 신뢰를 대단히 중시하고 한 번 맺은 관계를 끝까지 유지하는 보스 기질이 강하다. ‘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구별도 뚜렷한 것도 특징이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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