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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는 변절의 상징? 되짚어보는 오해와 속설

중앙일보 2017.10.27 01:00 종합 29면 지면보기
중국 화공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신숙주 초상. 보물 613호. [중앙포토]

중국 화공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신숙주 초상. 보물 613호. [중앙포토]

조선 전기의 정치인 신숙주(1417~1475)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간다. 한글의 반포와 보급, 외교와 국방 분야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큰 인물이었지만 일반인의 뇌리에는 아직도 변절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조카 단종을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한 비정한 삼촌, 세조를 섬겨서다. 특히 흥미를 위해서 사실도 저버리는 야사(野史)나 문학작품이 신숙주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한껏 증폭시킨 듯하다. 남편 신숙주의 변절에 실망한 아내 윤씨가 남편을 꾸짖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인간적인 입장에서 참담하기까지 한 대목인데, 사실이 아니다. 그의 줏대 없음에 빗대 녹두나물을 숙주나물로 바꿔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에서는 조롱의 기운이 읽힌다.
 

신씨 태어난 지 600년 … 재조명 활발
“정치적 논란과 별개로 뛰어난 학자”
“일본과 우호 강조 … 국제 감각 갖춰”

이런 현실을 바꿔보려는 대규모 학술대회가 27일 서울 서빙고로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다. 신숙주 탄생 600주년에 맞춰 고령신씨 대종회와 한글학회가 공동주최하고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이 후원하는 행사다.
 
훈민정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슬옹 세종학교육원 원장은 탁월한 언어학자였던 신숙주를 조명한다. 여러 집현전 학자 중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김 원장의 평가다. 박팽년·성삼문 등과 함께 훈민정음 해례본을 썼고, 한자의 한국어 발음을 표준화하기 위해 『홍무정운역훈』과 『동국정운』, 두 운서(韻書)의 편찬, 집필 작업을 주도했다.
 
신숙주가 집필한 일본견문록인 『해동제국기』.

신숙주가 집필한 일본견문록인 『해동제국기』.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는 ‘조선초 격변기 신숙주의 정치적 역할’이라는 발표문에서 세종에서 성종까지 6대에 걸쳐 왕조의 정치·문화 체제가 완성되는 시기의 신숙주의 역할을 살핀다. 연세대 국문과 허경진 교수는 일본인들이 19세기 말까지 탐독했던 신숙주의 일본 견문록 『해동제국기』의 집필 과정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김경록 선임연구원은 신숙주의 지시로 전투와 화물 수송을 겸하는 조병선(漕兵船)이 건조된 사정을 소개한다. 1995년 『신숙주 평전』을 냈던 단국대 문예창작학과 박덕규 교수는 신숙주에 대해 입체적인 접근을 강조한다. 서예가, 미술평론가로서의 신숙주도 조명된다.
 
신숙주에 관한 오해와 속설도 다시 한 번 건드린다. 박덕규 교수는, 신숙주의 아내 윤씨 자살 스토리는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 박종화의 소설 ‘목매이는 여자’ 등이 인기를 끈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두 소설은 사육신의 한 명인 이개의 후손 이기가 쓴 문집 『송와잡기』 등에 기초해 쓰여졌다. 박교수에 따르면 『송와잡기』는 신숙주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가능성이 높은 책이다. 김슬옹 원장은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이설(異說)을 제시한다. 신숙주가 녹두나물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조가 나물 이름을 숙주나물이라 부르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재야사학자 이이화씨는 “신숙주가 정치적으로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뛰어난 학자였고,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평했다.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는 “신숙주는 예외적으로 대외감각이 탁월했던 인물이었다”며 “특히 일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강조했는데 이후 일본에게 당한 환란을 생각하면 당대에 찾아볼 수 없는 전략적 마인드와 국제감각을 갖췄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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