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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또 전쟁이 일어나면 당장 달려오겠다”…장진호 전투 노병(老兵)의 노익장

중앙일보 2017.10.25 16:17
진 폴 화이트(90)가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6ㆍ25 전사자 명단에서 전사한 전우들 이름을 찾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진 폴 화이트(90)가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의 6ㆍ25 전사자 명단에서 전사한 전우들 이름을 찾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한국에 4개월이 채 안 되는 동안만 머물렀지만 평생 한국을 사랑하는 미국인이 있다. 보훈처의 해외 6·25 참전용사 초청 행사로 22~27일 한국을 찾은 진 폴 화이트(90) 얘기다.
 
그는 6·25전쟁 당시 미 해병 1사단 소속 병장으로 참전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 작전에 투입돼 서울을 수복했으나 의정부에서 부상했다. 일본에서 치료를 받던 화이트는 전우들이 그해 11월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에게 고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원대복귀를 요청했고 수송기를 타고 전쟁터로 돌아갔다. 화이트는 “160명이던 중대원이 30명으로 줄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장진호 전투에서 걸린 동상 때문에 같은 해 12월 본국으로 후송되면서 한국을 떠나게 됐다.
 
화이트는 “지난 1999년 보훈처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매번 한국의 발전에 놀란다”며 “이런 나라를 지키는 데 내가 기여했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25전쟁에서 내가 더 잘 싸웠으면 한국은 지금 통일될 수도 있다. 한국민에게 정말 미안하다”고도 했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 후 진 폴 화이트. 이 사진 촬영 후 그는 부상을 입어 일본으로 후송된다. [진 폴 화이트 제공]

1950년 9월 서울 수복 후 진 폴 화이트. 이 사진 촬영 후 그는 부상을 입어 일본으로 후송된다. [진 폴 화이트 제공]

1975년 중령으로 예편한 화이트는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미국 내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 모임인 ‘초신퓨’(Chosin Few·장진호 전투에서 생존한 소수) 활동을 했다. 장진(長津)을 일본어로 표기했는데, 당시 미군이 한국어 지도가 없어 일본어 지도를 사용한 때문이다. 화이트는 “한때 8000명이던 회원이 이제 1200명으로 줄었다. 주요 업무 중 하나가 회원의 장례식 참석”이라고 전했다.

 
그는 25일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회장 박종길)가 주관하는 ‘장진호 전투영웅 추도식’에 참석해 먼저 떠난 전우들의 넋을 기렸다.
 
그에게 ‘장진호 전투 때 적군인 중공군과 추위 중 어떤 게 더 무서웠나’고 물었다. 7000명이 넘는 미군의 비전투 사상자 대부분이 동상자였을 만큼 추위가 엄혹했다. 화이트는 ”해병에겐 두려움은 없다“며 ”‘둘 중 어떤 게 더 괴롭혔나’라고 다시 물어봐달라“고 했다. 다시 고쳐 질문하자 이번엔 “전투에서 싸우느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답했다. 우문현답인 셈이다.
 
화이트는 “한국에 6·25전쟁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이번에도 달려오겠다”며 “나는 아직도 총을 쏠 줄 안다. 미 해병대가 나의 재입대를 받아들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한국을 돕겠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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