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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은 민주주의 아닌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 용어다"

중앙일보 2017.10.25 14:42
 오는 29일이면 '촛불 1주년'이다. 1년 전 촛불은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와 과제를 남겼을까.  2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정치발전소를 찾았다. 거기서 정치학자 박상훈(53) 학교장을 만났다. 『정치의 발견』,최장집 교수와의 공저 『양손잡이 민주주의』등으로 주목받은 이다. ‘촛불 1주년’을 맞아 그에게 촛불의 정치사회사적 의미와 계승을 물었다.  
 

[촛불 1주년 기획 인터뷰] 정치학자 박상훈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품고 있던 '실현되지 않은 약속'을 집약해서 촛불 광장에서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품고 있던 '실현되지 않은 약속'을 집약해서 촛불 광장에서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 정국’ 1주년이다. 돌아보면.
“우리 역사에서도 큰 사건이었다. 큰 사건은 시간이 지나서 먼지가 좀 가라앉아야 잘 보인다. ‘2016년 촛불 정국’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대신 나는 촛불 정국에서 회자 됐던 ‘나라’라는 말에 주목한다.”
 
-어떤 ‘나라’를 말하나.
“촛불을 든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다. ‘이게 나라냐?’‘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 사실 ‘나라’는 정치학적으로 볼 때 특별한 말이다. 예전에는 그게 민족주의의 용어였다. 가령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국권을 회복할 때 주로 쓰는 말이었다. 그런데 촛불 정국에서는 ‘나라’가 민주주의의 용어로 쓰였다.”
 
-민주주의 용어로서 ‘나라’는 어떤 의미인가.
“‘나라’라는 말은 좋은 뜻에만 쓰인다. ‘신의 나라’‘동화의 나라’‘행복의 나라’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상상된 공동체를 가리킨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건물 3층에 있는 정치발전소 사무실. 그의 책상에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과 책들이 놓여 있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건물 3층에 있는 정치발전소 사무실. 그의 책상에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과 책들이 놓여 있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꿈꾸었던 공동체라면.
“주부들이 육아와 가사에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향유할 수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도 안정되게 일할 수 있고, 젊은 학생들의 일자리가 해결되는 삶. 그런 자유롭고 평등한 삶의 가치를 ‘나라’라는 말로 대신 표현했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에 고등학생이 나와서 학교 문제를 말할 때 감동을 받고, 노동문제를 말하는 노동자의 발언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게 ‘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30년간 품고 있던 실현되지 않은 약속에 대한 요구라고 본다. 촛불 광장은 그 약속을 집약해서 요구한 장이었다.”
 
-그럼 그걸 ‘촛불 혁명’이라고 불러도 되나.
“1년 전 촛불 정국에서 사람들이 원했던 것이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게 ‘보다 근본적이고 큰 변화’였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촛불 혁명’이라 부를만한 요소가 있었다. 그런데 ‘혁명’이란 용어는 기존의 권위구조가 개편되고, 지배적 엘리트층의 구조가 달라지고, 사회적 체제 변화를 동반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촛불 이후를 보라. 기존의 정당 구조나 체제의 틀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향과 현실 사이의 간격인가.
“그렇다. 그 사이에 간격이 있다. 이 간극을 어떤 사람은 실망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기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기대와 실망의 교차 속에 지금의 ‘촛불 1주년’이 있는 게 아닐까.”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서로 다른 의견과 갈등을 놓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협력적 변화를 모색해 가는 것이 정치다"라고 설명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서로 다른 의견과 갈등을 놓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협력적 변화를 모색해 가는 것이 정치다"라고 설명했다.

 
박상훈 학교장은 ‘촛불 정국’을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두 가지 시각을 설명했다. “하나는 ‘적폐청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회적 협치를 통한 변화’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한다.”  
 
-‘촛불 정국’에 대한 해석이 왜 둘로 갈라지나.
“사람들이 더 과감한 변화를 원한다고 한쪽에서는 해석한다. 그래서 ‘적폐청산’이나 ‘구체제에 대한 변혁’을 내걸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적폐청산’이나 ‘양극화된 대립적 갈등구조’를 바라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오히려 ‘촛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양손잡이 민주주의’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손잡이 민주주의’라면.
“대통령 탄핵은 진보 정당만의 힘으로 통과될 수가 없었다. 친박을 제외한 보수가 힘을 합했기에 가능했다. 사실상 ‘촛불’은 그러한 사회적 대연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왼손과 오른손이 힘을 합했다. 그게 ‘양손잡이 민주주의’다. 그러니 정치도 거기에 부합해 협치(協治)와 협력적 변화를 모색해가라는 요구다.”
 
-그렇다면 ‘촛불’ 직후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을 전후해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적폐청산’이고, 또 하나는 ‘통합대통령’이다. 그런데 요즘은 누가 보더라도 ‘적폐청산’이 주(主)가 됐다. ‘통합대통령’은 특정상황의 논리에 따라 알맹이 없는 말이 돼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혹자는 문 대통령이 극렬 지지자들의 요구를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대통령 본인이 결정할 문제다.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서 하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정치발전소에 놓여 있던 액자들. 오른쪽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그림도 보인다.

정치발전소에 놓여 있던 액자들. 오른쪽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그림도 보인다.

 
박상훈 학교장은 ‘적폐청산’이 옛날부터 쓰였던 말이 아니라고 했다. “‘적폐’라는 말은 구한말 때 언론을 봐도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용어다. 박정희 시대 때 ‘구악일소(舊惡一掃)’라는 말을 썼고, 김영삼 정부에서 사정개혁을 할 때 ‘적폐청산’을 부분적으로 썼다. 이 용어를 광범위하게 정치권으로 불러들인 건 박근혜 정부였다. 야당과 국회가 본인이 기대하는 개혁입법을 잘 해주지 않자 ‘좌익정권 10년 적폐청산론’을 많이 거론했다. 그때 비로소 ‘적폐’가 본격적인 정치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박 학교장은 ‘적폐청산’이 민주주의 용어는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유사 공안 담론의 용어”라고 지적했다.  
 
-‘적폐청산’이 왜 민주주의의 용어가 아닌가.
“가령 남북문제에 있어서 ‘대북포용’과 ‘안보우선’은 찬반이 갈릴 수 있다. 그래서 토론과 협의가 가능하다. 그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적폐청산’에 맞선 ‘반(反)적폐청산’이 있을 수 있나. 한쪽에서 ‘적폐청산’을 내걸면 토론과 협의는 이미 불가능해진다. 나는 절대적으로 옳고, 상대는 전적으로 처벌과 청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폐청산’은 오히려 반공주의의 변형된 형태에 더 가깝다. 메르스 사태처럼 우리 사회는 깨끗한데 외부에서 들어온 일부 병균이나 잘못된 인자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보고, 그들을 사회 공동체 밖으로 몰아내 제거하면 우리 사회가 깨끗해지리라 보는 식이다. 그건 권위주의에는 맞지만 민주주의에는 맞지 않는 방식이다.”
박상훈 학교장은 "'여론조사는 시민주권을 해석하는 기초가 될 수 없고 단순한 참고 정보로만 봐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주권을 확인하는 창구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학교장은 "'여론조사는 시민주권을 해석하는 기초가 될 수 없고 단순한 참고 정보로만 봐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주권을 확인하는 창구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과거의 잘못된 문제는 해결하고 나아가야 하지 않나.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 ‘국정원 적폐’ 대신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민간인 사찰 방지 대책마련’이라고 명패를 붙이면 된다. 그럼 여야간 토론과 합의가 가능해진다. 사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갈등쟁점이 되기도 하고, 합의쟁점이 되기도 한다. 정치란 눈앞에 있는 갈등도 합의로 풀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적폐청산’은 없던 갈등마저 만들어내는 말이다. 합의하고 협력할 수 있는 문제마저 갈등쟁점으로 만들어 버리면 곤란하지 않나.”  
 
정치발전소 책꽂이에 놓여 있던 인형. 손에 들고 있는 '유쾌한 정치실험 공동체'라는 문구가 정치발전소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정치발전소 책꽂이에 놓여 있던 인형. 손에 들고 있는 '유쾌한 정치실험 공동체'라는 문구가 정치발전소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박상훈 학교장은 노무현 대통령 때 일구어낸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을 예로 들었다. 한국전쟁 때부터 시작해 국가폭력이나 민간인 학살 등을 다루는 법이었다. 당시 보수 야당이 심하게 반대했다. 노 대통령은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좌익 세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까지 조사하게 했다. 결국 법이 생겼고 과거의 상처를 딛고 한국사회가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 박 학교장은 “갈등을 합의쟁점으로 바꾼 좋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통합대통령이 왜 중요한가.
“촛불 집회의 최고 계승자는 정치일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그게 ‘협치’라는 말로 표현됐다. 모든 정치인이 ‘협치하겠다’고 했다. 그건 촛불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다. 그래서 통합대통령이 중요하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59%의 시민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은 스스로 정치 위에 서있는 국가지도자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외교 관계에서는 국가지도자이지만, 대내적으로는 정치지도자가 돼야 한다.”
 
-정치지도자가 된다는 건.
“야당과 힘겹게 대화하고 타협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의회나 정당 바깥에서 시민사회의 환호를 받는 식으로 정치를 하려는 건 되짚어 볼 일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 여야 대표를 초청해 식사하고 그러는 건 예전에도 해오던 일이다. 거기서 실질적인 의제를 다룬 적은 없다. 대부분 협력을 요청하는 분위기 조성 차원이었다. 넓게 보면 일종의 행사성이다. 그걸 책임있는 정치 행위로 발전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통합대통령은 하나의 이미지나 상징이 아니다. 야당과 협치를 통해 실질적인 정치 행위를 하는 통합대통령이어야 한다.”
 
박상훈 학교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여야 사이의 합의나 입법부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론조사나 공론화를 통해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건 권위주의 방식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다.

박상훈 학교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는 여야 사이의 합의나 입법부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론조사나 공론화를 통해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건 권위주의 방식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인 문재인’과 ‘정치인 노무현’의 차이를 짚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관된 의회주의자이자 정당주의자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랬다. 일관된 가치나 이념에 따른 제대로 된 정당주의가 노무현의 꿈이었다. 그에 반해 문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전통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느낌을 준다. 문 대통령이 정당 대표를 지냈지만 정당 정치보다는 대선에 집중했다고 본다. 게다가 ‘직접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걸 직접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다.”
 
-그럼 직접민주주의가 뭔가.
“직접민주주의의 요체는 의회나 정당의 역할이 최소화되는 거다. 그건 사실상 민주주의보다 권위주의에 가깝다.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국민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이용해 3선 개헌과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정치학에서는 의회를 중시하지 않는 직접민주주의를 보수 포퓰리즘 혹은 권위주의로 본다. 여론조사나 공론화에 기대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그건 문 대통령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통로는 선거여야 한다. 히틀러 이후에 독일은 개헌을 할 때도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는다. 의회에서 결정한다.”
 
정치발전소 책상 위에 놓인 '정치는 신뢰'라는 작은 액자가 눈에 띈다. 박상훈 학교장은 "촛불 혁명은 민주적인 규범 안에서 합의된 변화를 모색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정치발전소 책상 위에 놓인 '정치는 신뢰'라는 작은 액자가 눈에 띈다. 박상훈 학교장은 "촛불 혁명은 민주적인 규범 안에서 합의된 변화를 모색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촛불 정신을 계승하려면.
“정치에서는 여든 야든, 진보든 보수든 옳음을 나누어 갖고 있다. 성장에 대한 관점도, 복지에 대한 관점도 옳음을 나누어 갖고 있다. 이견(異見)을 통해서, 또 고통스럽지만 협력을 통해서 서로의 옳음을 배워가는 과정이 협치다. 그럴 때 양손잡이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민주주의는 그걸 통해 성숙한다. 나는 거기에 진정한 촛불 정신의 계승이 있다고 본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우상조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박상훈=충남 청양 출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의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는 서울 동교동에 있는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정치의 발견』『민주주의의 재발견』『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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