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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통령 의전의 세계…클린턴은 수영장 재즈, 부시는 결혼기념일 장미에 감동

중앙일보 2017.10.25 06:00

 “그곳에는 실내 수영장이 있었고 몸을 담그려고 하자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왔다.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재즈에 이르기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수영을 했다.”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 상황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993년 7월 방한 당시 청와대에 머물 때의 일이다. 클린턴은 2004년 펴낸 자서전 『나의 인생(My Life)』에서 “이것은 한국 고유의 접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같이 썼다. 그는 특히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의회 연설이 끝난 뒤 나는 한·미간의 오랜 동맹에 대한 감사와 그것을 유지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한국을 떠났다”고 했다.  

25년 만의 미 대통령 국빈 방문을 앞두고 살펴본 의전의 세계
"의전은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 여러 가능성 대비"
"손님이 좋아하는 것, 관심사 파악해 사소한 것에도 감동줘야"

 
당시 외교부 의전과장이자 훗날 의전장까지 지낸 백영선 전 주인도 대사는 “클린턴 대통령이 색소폰을 잘 불고 엘비스 프레슬리와 재즈를 좋아한다고 해서 좋아할만한 곡 수십 곡을 테이프에 녹음했고, 김 대통령과의 조깅 이후에 녹지원 옆 수영장을 이용할 때 틀었다”며 “의전은 상대방, 손님이 좋아하는 것과 관심 있는 것을 사전에 면밀히 잘 파악해서 사소한 것으로라도 감동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93년 방한한 클린턴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조깅하는 모습. [e영상역사관]

93년 방한한 클린턴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조깅하는 모습. [e영상역사관]

다음달 7~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정상외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의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 형식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2년 1월 ‘아버지 부시’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방한 이후 25년 만이다.  
한국을 찾는 외빈 방문 형식은 ▶국빈 방문 ▶공식 방문 ▶실무 방문 ▶사적 방문으로 나뉜다. 최고 예우인 국빈 방문의 경우 청와대 공식 환영식과 문화공연이 포함된 대통령 만찬 등이 포함된다. 미국 대통령은 지나친 격식을 꺼리다보니 그간 국빈 형식의 방문이 뜸했다고 한다. 4가지 유형이 정해져 있지만 형식보다 앞서는 것은 양국의 협의사항과 손님을 맞는 국가의 정성이다.  
 
이에 따라 정상외교의 의전을 총괄하는 외교부 의전장실 인력 50여 명에겐 비상이 걸렸다. 의전에 대해선 과거의 것도, 앞으로의 것도 경호 문제를 고려해 밝힐 수 없다는 것이 외교부 공식 입장이다. 다만 외교부 강재권 의전기획관은 “의전은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 치밀하게 협의하고 계획을 세운다”며 “비가 올지 안 올지, 어느 길의 치안이 더 좋을지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대비해 시나리오를 세운다”고 말했다.  
 
그간 언론과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된 미 대통령의 방한 사례에 비춰 ‘원 테이크’(한 번 촬영)로 ‘성공한 영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긴장감 넘치는 의전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1952년 한국을 찾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는 거리의 시민들과 손을 들어 화답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중앙포토]

1952년 한국을 찾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는 거리의 시민들과 손을 들어 화답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 [중앙포토]

◇포드 환영 인파 180만 명=한국을 찾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다. 1952년 12월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에 왔고, 60년 6월에는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다시 왔다. 정부는 국가적 차원의 환영행사를 열었다. 허정 국무총리 부부를 비롯해 김도연 국회의장, 배정현 대법원장 직무대행 등 입법·사법·행정 3부 대표가 김포공항에 가서 그를 맞았다. 서울시청에는 아이젠하워 대형 초상화가 걸렸고, 방한 축하 기념우표와 담배도 나왔다. 

포드 대통령 방한기념 우표. [중앙포토]

포드 대통령 방한기념 우표. [중앙포토]

74년 제럴드 포드(1913~2006) 대통령 방한 때는 정부가 가두 환영 인파로 180만 명을 동원했다. 초등학생들까지 나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고, 풍선 5만여 개와 30가마(2400㎏) 분량의 오색 꽃종이가 흩날렸다. 지미 카터(1924~) 대통령이 온 79년에 정부는 처음으로 ‘동원식 환영’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거리는 환영 인파로 넘쳤다. 여의도 광장에는 10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환영대회를 열었고, 여의도에서 마포까지 이동하는 카퍼레이드 때는 80만 서울 시민의 환영을 받았다. 카터는 후에 “해외에서 이런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회고했다.  

레이건 대통령 방한 환영식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환영사를 읽고 있다. [중앙포토]

레이건 대통령 방한 환영식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환영사를 읽고 있다. [중앙포토]

 
80년대 들어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 역시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83년 11월 로널드 레이건(1911~2004) 대통령 방한 때는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공항까지 직접 나가서 환영했다. 공항에서 시청까지 150만 명의 서울 시민이 동원됐다. 조선호텔에 공식·비공식 수행원 392명이 370개의 객실을 사용했는데, 일반투숙객을 일절 받지 않았다.  
 
미국을 향한 의전은 87년 민주화 항쟁, 88서울올림픽 이후로 조금씩 변화했다. 백영선 전 대사는 “당시엔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 나갈 정도로 외교가 그만큼 우리에게 절실하고 중요했다”며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의전도 많이 간소화, 합리화됐다”고 말했다.  
 
◇결혼기념일 장미꽃 선물 받은 부시 대통령=92년 1월 ‘아버지’ 부시 대통령(1924~)이 국빈 방문했을 때는 공항 영접에 정원식 총리가 나갔다. 떠들썩한 환영식은 없었고 행사는 7분으로 줄였다. 카퍼레이드나 시민 동원도 사라졌다. 부시 대통령은 방한 기간 중인 1월 6일이 결혼기념일이었다. 한·미 양국의 확대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오늘 노 대통령 내외분이 결혼 47주년을 의미하는 붉은 장미 47송이를 숙소로 보내줘 감명 받았다”며 “한 여자가 47년 간 살아온 한 남자의 얘기를 들어보지 않겠냐”고 조크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방한 중인 부시 대통령 부부와 노태우 대통령 부부. [중앙포토]

방한 중인 부시 대통령 부부와 노태우 대통령 부부. [중앙포토]

김영삼 정권 시절인 93년 방한한 빌 클린턴(1946~) 대통령 때는 의전 절차가 더욱 간소해졌다. 형식도 국빈 방문이 아닌 공식 실무 방문(official working visit)으로 하자고 먼저 제안한 것도 한국이었다. 공항 영접은 한승주 외무장관이 맡았고, 군 의장대의 영접도 생략됐다. 대신 내실을 더 다졌다. 김 대통령과 클린턴은 7월 11일 새벽에 청와대 녹지원의 265m의 트랙을 함께 열한 바퀴 뛰었다. 이를 위해 영부인 손명순 여자 지휘로 보름 전부터 27종의 야생화를 심었고, 통역을 맡은 비서관은 꽃 이름을 전부 영어로 외웠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93년 7월 한국을 방문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대도무문' 휘호를 써 주고 있다. [중앙포토]

김영삼 대통령이 93년 7월 한국을 방문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대도무문' 휘호를 써 주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통역을 맡았던 박진 전 한나라당 의원은 두 달 가까이 맹훈련을 했다고 한다. 조깅으로 체력을 다져온 김 대통령이나 47세였던 클린턴 대통령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박 전 의원은 “대통령이 그날따라 더 빨리 뛰셨다”며 “미국 측 통역이 한 바퀴 돌고 나가떨어져서 이후 내가 다 통역을 맡게 됐다. 두 분이 함께 뛰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개혁, 북한 문제까지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셨다”고 전했다. 사실상 또 한 번의 ‘정상회담’이었던 셈이다.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한 뒤 어깨동무를 하고, 이 대통령의 차량에 동승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였다. 미국 대통령은 해외 출장 때 전용 방탄 차량 ‘캐딜락 원’을 공수해 온다. 캐딜락 원이 아닌 다른 차량에 타는 것은 관례상 매우 드문 일이다. 부시 대통령이 “내가 좀 타도 되느냐”고 물으며 동승을 먼저 제안했다는 게 당시 청와대의 설명이었다. 부시 방한 때는 30년 전의 환영 인파 대신 찬반 시위로 인해 숙소 경호에 7000명, 시위 대응에 1만6000여 명의 경찰병력이 투입됐다. 사상 최대의 경호작전 속에 부시 대통령의 동선과 일정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오바마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첫 방한 때는 정상회담의 의전 컨셉트를 ‘하트 투 하트(Heart to Heart)’로 잡았다. 오바마가 상원의원 시절 태권도를 배운 점을 감안해 이명박 대통령은 도복을 선물했다. 환영연에서는 불고기와 숯불구이 바비큐를 나란히 냈는데 불고기는 한국산 한우, 바비큐 고기는 미국산을 썼다. ‘아들’ 부시 방한 때도 한우 갈비구이와 미국산 스테이크가 함께 준비됐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반반씩 섞어 먹었다고 한다. 강재권 의전기획관은 “보통 음식은 스테이크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갈비라든가, 코스별로 서빙하는 등 한식을 위주로 하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으로 접대한다”고 설명했다.  
 
오바마는 2014년 4월 방한 때는 세월호 침몰사고를 의식해 “화려하지 않은 일정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상당수의 의전행사가 취소됐고, 청와대 업무만찬도 음악 없이 진행됐다.  
2008년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하얏트 호텔앞 경비가 강화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2008년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하얏트 호텔앞 경비가 강화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오바마는 2009년과 2014년 모두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머물렀다. 오바마가 묵은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은 하루 숙박비가 800만원이다. 1998년 빌 클린턴 이래 이 호텔은 미 대통령의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하얏트 호텔은 도심에서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경호에 유리하다. 2014년 방한 때는 경호견에게 방을 개별적으로 배정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결국 경호실과 호텔 측은 여러 차례 논의 끝에 경호견들이 각각 전담 트레이너와 트윈베드룸에서 묵도록 절충했다. 경호견들이 묵은 방의 하루 숙박비는 32만원이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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