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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세상읽기] 직접민주주의가 미래다 2

중앙일보 2017.10.25 02:10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직접민주주의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즐겨 드는 예가 고대 그리스의 ‘도편추방’ 제도다. 전자는 제도 초기의, 후자는 말기의 예를 선호한다. 독재자가 등장할 위험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게 도편추방의 기본 취지다. 무력으로 참주(僭主)를 참칭했던 페이시스트라토스 같은 인물의 재현을 막기 위해 도입한 민주개혁이었다. 하지만 점차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됐다. 문맹인 농부의 부탁으로 도자기 조각에 자기 이름을 대신 써주고 결국 추방돼야 했던 아리스티데스의 일화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유명한 사례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묻는 아리스티데스의 질문에 농부는 “사람들이 그를 보고 하도 ‘정의로운 자’라고 하는 게 지겨워서”라고 하더란 얘기 말이다.
 

공론화위가 입증한 시민의 직접민주주의 수행 능력
빈사 상태의 대의민주주의 되살리는 시대정신이다

하지만 도편추방이 그리 사악한 제도는 아니었다. 도편추방을 발의한 사람 역시 투표 대상에 포함됐다. 섣불리 발의했다가는 자기가 추방될 수도 있었던 거다. 남용을 막는 장치였다. 도편추방 제도가 실시된 90여 년 동안 추방된 건 고작 열 명뿐이었다. 추방된다고 명예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었다. 시민권과 재산권은 유지됐고, 시간이 지나면 재기가 가능했다. 그저 웃자란 가지를 쳐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한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다. 위험인물이라는 주관적 판단만으로 예방적 추방을 결정하는 건 비민주적이다. 도편추방의 오늘날 버전은 ‘국민소환’이지만 역시 문제가 적잖다. 선출직 공무원이 장기적 안목의 정책을 추진하는 대신 현실적 인기에 편승하는 건 예방적 추방의 효과와 같다. 갈등이 첨예한 현안이 있으면 오히려 갈등이 확대되고 그로 인해 행정력을 낭비하기 십상이다. 정치세력까지 개입하면 극도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한마디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어서 오늘날에는 도입되는 예가 많지 않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직접민주주의를 우려하는 시각은 대체로 여기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반대하는 건 도편추방제를 도입하자는 것만큼이나 난센스다. 흔히 목소리 큰 쪽이 이기는 광장민주주의를 걱정하지만 우리는 촛불시위에서 광장의 집단지성을 목격한 바 있다. 촛불이 없었다면 권력자의 국정농단은 계속되고 있을 테고, 그것을 감시할 의무를 팽개치고 권력자의 눈에 드는 게 지상목표처럼 행동하던 부역세력들의 종종걸음도 여전했을 터다.
 
물론 광장의 엇나간 집단사고도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인간 광우병’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수개월 동안 나라를 마비시켰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권력을 국민한테서 위임받은 정치 엘리트들의 오만과 직무유기가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대신 “내가 죽을 거 주겠어? 그냥 주는 대로 먹어”라는 식의 안하무인에 분노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촛불에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촛불로만 잘못이 바로잡힌다면 그런 불행도 없다. 촛불이 켜지기 전에 바로잡을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국민발안’ 같은 직접민주주의인 거다. 누누이 말하지만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다.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란 말이다. 대리인이 일을 안 하면 주인이라도 일을 대신 해야 하는 거다. 계약기간 동안 자를 수 없다고 계약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순 없지 않겠나.
 
얼마 전 우린 또 하나의 희망을 봤다. 원전 공론화위원회 말이다.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져 정부 탈원전 정책 추진의 들러리가 될 거라는 합리적 의심을 극복하고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 재개라는 집단지성을 발휘했다. 그것이 시민의 힘이다. 국회에서 공전 중인 개헌 논의조차 공론화위에 맡기자는 주장까지 곳곳에서 나오는 이유다.
 
공론화위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중간쯤에 위치했다고 볼 수 있지만 직접민주주의를 수행할 수 있는 시민의 힘은 충분히 입증했다. 시민이 토론과 숙의로 정치 전문성을 높인다면 갈등요소가 많은 주제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수많은 국가적 과제가 국회로만 가면 정쟁으로 변질되는 현실과는 못내 다르다. 매번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의 절반을 물갈이해 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
 
이제 주인이 직접 나서 이런 의원들에게 채찍질을 가해야 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교양과 체육 교육을 받은 시민에게 ‘칼로스카가토스(아름답고 선한)’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당당히 주권을 행사하는 시민사회의 주역이 됨을 의미했다. 이제 대한민국 시민이 모두 칼로스카가토스가 돼야 한다. 도편추방이 당시 참주의 등장을 막기 위한 시대정신이었던 것처럼 직접민주주의도 빈사상태의 대의민주주의를 되살릴 수 있는 시대정신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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