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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지시대로 춤추는 사람, 오선지 채우는 어항 물고기 …

중앙일보 2017.10.25 01:00 종합 25면 지면보기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에서 개막공연으로 선보인 관객 참여형 로봇 퍼포먼스 ‘인페르노’. [사진 금천예술공장]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에서 개막공연으로 선보인 관객 참여형 로봇 퍼포먼스 ‘인페르노’. [사진 금천예술공장]

육중한 로봇형 장치를 착용한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움직인다.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이지만 각자의 의지대로 추는 춤이 아니다. 외부의 통제를 받아 몸에 착용한 장치가 제어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전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시도들
국내외 13개 작가팀이 선보여

로봇기술을 활용한 이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는 캐나다 미디어 아티스트 빌 본, 루이 필립 데미르의 작품 ‘인페르노’다. 서울 독산동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에서 지난 20일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의 개막공연 중 하나로 선보였다. 인간이 로봇의 통제대로 움직이는 듯한 모습, 단테의 ‘신곡’ 중에 ‘지옥편(인페르노)’에서 따온 제목이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게 했다. 동시에 인간과 기계의 결합, 신기술을 새롭게 활용한 예술적 상상력과 연출력이 미디어 아트이자 공연으로서 신선하고 강렬한 재미를 안겨줬다.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7’은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시도, 세계적 흐름을 신진 작가들의 공모작품과 초청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행사다. 과학기술에도 뛰어났던 예술가 다빈치의 이름을 따서 2010년 공모전으로 시작, 2014년부터 축제형태로 발전했다.
 
이재형, 박정민 작가의 ‘기계 즉흥곡’. [사진 금천예술공장]

이재형, 박정민 작가의 ‘기계 즉흥곡’. [사진 금천예술공장]

특히 올해 국내외 작가 13팀이 참여한 전시는 가상현실이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품은 물론이고 미생물을 이용한 바이오 아트, 우주와 관련된 스페이스 아트 등을 아울러 특징이 뚜렷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예컨대 에두아르도 카츠의 ‘이너 텔레스코프’는 무중력 상태의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프랑스 우주인이 작가의 지시대로 프랑스어로 ‘나’(moi)를 형상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내 작가 닥드 정의 ‘형이상한 연못’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자성을 띤 우주 연료로 개발했던 물질을 잉크처럼 활용,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구현한다. 이재형·박정민 작가의 ‘기계즉흥곡’은 생물의 우연한 움직임을 음악으로 바꾸는 서정성이 두드러진다. 악보처럼 오선이 그려진 어항을 카메라로 포착, 물고기의 순간적 위치를 음계로 해석해 화성까지 결합한다.
 
관람객이 고글을 쓰고 직접 체험하는 여러 가상현실(VR) 작품은 각기 다른 시선이 뚜렷하다. 이성은·이승민 작가의 ‘에테리얼:지극히 가볍고 여린’은 관람객이 스스로의 모습을 뒤편 거대한 ‘로봇’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게 하고, J F 말루앵의 ‘미의 세 여신’은 비록 고전 명화 속 인물이지만 타인의 몸을 만지는 행위가 기이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한다.
 
이번 주제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로봇 같은 것이 사람을 닮아갈수록 인간이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 어느 정도에 이르면 강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영역을 가리킨다. 이후 사람과 아주 흡사해지면 다시 호감도가 높아지는 걸로 알려져 있다.
 
최두은 예술감독은 “로보틱스뿐 아니라 인공지능, 증강현실, 합성 바이올로지, 스페이스 테크놀로지 등의 발달로 인간의 삶이 증강(augmented)되고 인간과 기계의 구별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며 “아직은 인간과 기계를 구분할 수 있는 ‘언캐니 밸리’의 마지막 지점”에서 “‘인간다움’을 생각해볼 기회”라고 이번 전시를 소개했다. 11월 5일까지. 무료관람.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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