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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寫眞萬事]서청원의 전략, 진창에서 같이 구르기

중앙일보 2017.10.25 00:34
 결정적인 순간에 한 쪽을 배신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상황은 일회적으로 종료되지 않는다. 배신의 결과는 엄중하게 치러야 한다. 평소 내게 은혜를 베푼 순하고 고마운 사람과, 성정이 매몰차고 잔인한 무서운 사람이 있다. 어느 한쪽을 배신해야만 일단 내가 살고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고맙고 착한 사람을 배신할 것인가,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을 배신할 것인가.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에 대한 배신은 쉬운 것이 아니다. 후환이 두렵기 때문이다. 후환은 다음의 몇 가지를 상상할 수 있다.
첫째, 저 무서운 자는 자신이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즉시 반격을 가해올 것이다. 무서운 자의 평소 행동과 성질, 그리고 능력을 볼 때 반드시 배신 이상의 반격을 할 게 분명하다. 무서운 자가 죽어야 한다면 배신하는 자도 죽어야 할지 모른다. 소위 ‘너 죽고 나 죽는’ 경우다. 최악이다.
 
정주택 자유한국당 윤리위원장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윤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윤리위원회는 박 전 대통령과 친박 핵심 인사들의 징계절차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중앙포토]

정주택 자유한국당 윤리위원장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윤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윤리위원회는 박 전 대통령과 친박 핵심 인사들의 징계절차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중앙포토]

 
 둘째, 무서운 자의 신공이 배신하는 자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중상을 피할 수 없는 경우다. 무서운 자는 독종이다. 저 독종은 절대 맥없이 저 혼자 죽지 않는다. 모든 수를 동원해 배신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지만 최소한 중상을 피할 수 없다. 이 중상은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면 배신자라는 낙인과 함께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최악에 버금가는 선택이다.
 
 
 셋째, 정말 철저하게 배신 이후의 상황에 대비하지만 저 무섭고 질긴 자와 함께 진흙창으로 끌려 들어가는 경우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를 동원해 육체적 피해는 막았어도, 온 몸에 오물을 둘러쓰는 것마저 피할 수는 없다. 진창에 빠져 구르는 꼴이다. 세상 사람들이 비웃으며 손가락질 한다.  
“저 더러운 것들은 보라. 저것들이 알고 보니 똑같은 것들이다!”
살았어도 죽느니만 못한 상황이 이어진다. 진창에 빠진 꼴은 지워지지 않는 상징으로 굳어지고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경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친박 핵심 서청원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서 의원, 최경환 의원 세 사람에 대해 사실상 출당 조치를 결행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에 대해 “고(故) 성완종 전 의원과 관련한 검찰의 사건 수사 과정에서 나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홍 대표는 “서 의원 사람인 윤씨가 나를 물고 들어가 자제시키라고 요청한 일이 있다”며 “얼마 전에도 서의원 측근들이 찾아와 출당시키면 (당시 통화 사실을) 폭로할 듯 협박했다”고 반박했다.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서 의원의 반격이 의도한 대로 싸움은 ‘너 죽고 나 죽기’식 아니면 ‘진창에서 같이 구르기’ 모양으로 굴러갈 조짐이고, 안 그래도 보수 정치 세력의 행태에 진저리치는 국민들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못나가는 한국당의 퇴행을 다시 비웃기 시작했다.  
 
 서청원 의원이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과 나라를 위해 홍준표 대표 체제는 종식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청원 의원이 지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과 나라를 위해 홍준표 대표 체제는 종식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청원 의원은 금년 초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의 쇄신을 위해 서 의원과 최경환 의원의 탈당을 요구하자 인 비대위원장을 향해 “거짓말쟁이 성직자 인명진 비대위원장은 이제 당을 떠나주시기를 바란다”고 독설을 날리면서 쇄신파와 친박간의 대립을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 간 전력이 있다. 이후 쇄신을 거부한 친박의 행태에 질려 새누리당 의원 일부가 분당해 나갔지만 정작 책임의 직접 당사자인 서 의원을 비롯한 친박집단은 그 어떤 책임도 거부하고 있다.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중앙포토]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중앙포토]

 
지난 3월 9일 당시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당시 경남지사인 홍준표 지사를 접견하고 있다. 두 사람 뒤로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남긴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중앙포토]

지난 3월 9일 당시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당시 경남지사인 홍준표 지사를 접견하고 있다. 두 사람 뒤로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남긴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중앙포토]

 
차라리 당에 잔류하겠다는 이유가 보수 세력의 재건이나, 아니면 “오해가 있다.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당에 남아 잃어버린 지지를 회복하는 데 일조하겠다” 는 등 손톱만한 대의명분에 기대려고만 했어도, 황당하기는 하겠지만 이렇게까지 허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못 나가겠다는 이유가 고작 “성완종·…”을 들먹이며  ‘겨 묻은 개, X 묻은 개’ 수준의 타령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싸우는 당에 희망을 걸 국민은 없다. 
 
 
 정치판의 의리 운운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이미 대한민국 국민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박 전 대통령의 대응, 주변 인물들의 행태 등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깊은 모욕감을 느꼈다. 어떤 경우에도 계파 보스에 대한 의리보다 국민에 대한 의리가 우선이다. 국민에 대한 의리보다 보스에 대한 의리를 우선하는 자는 정치꾼이자 사기꾼일 뿐이다. 같이 죽든, 중상을 입든, 진창을 구르든, 쇄신의 시도가 여기서 중단되는 것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자,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무서운 자는 바로 국민임을 알아야 한다.
 
 
김춘식 중앙일보 포토데스크 부국장 kim.choon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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