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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일방적 홍보? 적극적 소통? 정치인 예능출연 논란

중앙일보 2017.10.17 13:08
SBS 동상이몽2에 출연한 이재명 성남시장 부부 모습. [사진 동상이몽 방송화면 캡처]

SBS 동상이몽2에 출연한 이재명 성남시장 부부 모습. [사진 동상이몽 방송화면 캡처]

'폴리테이너 2.0 시대'다. 폴리테이너는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의 결합어다. 
정치학자인 데이비드 슐츠 미국 햄린대 교수가 1999년 『벤추라와 새로운 세계의 용감한 폴리테이너 정치학』에서 처음 정립한 개념이다. 인기 프로레슬러이자 영화배우였던 제시 벤추라가 1998년 미네소타주(州) 주지사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당선된 게 계기였다고 한다. 대중적 인기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연예인 출신 정치인에서 정치인의 연예인화 시대
TV예능 출연으로 기존 강경 이미지 털어 내기도
현행법 지지호소하는 내용 아니면 별 문제 안돼
"정치에 대한 국민 관심 높이는 계기" 긍정측면
"정책 능력 아닌 감성기대 선호 우려" 부정측면

 
이후 폴리테이너는 연예인 출신의 정치인을 일컫는 말로 널리 쓰였다. 국내에서는 배우 홍성우(10~12대 의원)·최무룡(13대)·이순재·강부자,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이하 14대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소신을 갖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발언하는 연예인도 폴리테이너에 속한다. 배우 명계남·문성근 등이다.
 
요즘 회자되는 2.0세대는 거꾸로 정치인의 연예인화를 뜻한다.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인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은 지난 7월 10일 처음 방송된 SBS의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 예능프로그램에 아내 김혜경씨와 고정 출연해 논란을 일으켰다. 다양한 분야의 커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 이 시장은 9월 18일 마지막 방송까지 11회 출연했다. 강경 좌파 발언을 자주했고 특히 ‘형수 욕설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던 그다. 이 시장은 이 방송을 통해 ‘성남 사랑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SBS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한 남경필 경기도지사. [사진 숏터뷰 방송화면 캡처]

SBS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한 남경필 경기도지사. [사진 숏터뷰 방송화면 캡처]

 
한 지상파 자회사가 제작, 동영상 전문 인터넷사이트 유튜브에 서비스 중인 ‘숏터뷰’에는 많은 정치인이 등장했다. 숏터뷰는 키가 동료 연예인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개그맨 양세형이 진행하는 짧은 인터뷰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밀착 인터뷰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정치인이 양세형을 업기도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남경필 경기도지사·안희정 충남지사, 4선의 바른정당 유승민·3선의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출연했다. 기존 시사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던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다.
 
국민의당 안철수는 대표는 2009년 당시 벤처사업가에서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릎팍 도사’ 출연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대선후보로 주목됐다. 예능의 덕을 봤다는 분석이 많았다.  
2009년 MBC무릎팍 도사에 출여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 무릎팍 도사 방송화면 캡처]

2009년 MBC무릎팍 도사에 출여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 무릎팍 도사 방송화면 캡처]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법적으로도 제한이 거의 없는 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소관 사무나 그 밖의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방송·신문·잡지나 그 밖의 광고에 출연할 수 없다고만 규정(86조 7항)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원회의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에도 선거일전 90일부터 후보자의 출연을 금지하고 있는 정도다. 중앙선관위 한 관계자는 “방송에서 자신의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이 아니면 특별히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폴리테이너 2.0은 정치와 대중의 거리를 좁혀 소통이 이뤄진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요소도 적지 않다. 지난달 초 종영된 KBS2의 ‘냄비받침(이경규 진행)’에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등 정치인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대선당시 홍준표 후보가 한 행사장에서 자신을 흉내낸 역을 맡은 개그우먼 정이랑씨와 인사를 하고 어색해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대선당시 홍준표 후보가 한 행사장에서 자신을 흉내낸 역을 맡은 개그우먼 정이랑씨와 인사를 하고 어색해하고 있다. [뉴시스]

 
잦은 돌출 발언으로 도마에 자주 올랐던 추 대표는 딸을 통해 엄마의 여린 모습도 보여줬고, 독설가로 알려진 홍 대표는 대학 선배의 권유로 개그맨 시험을 준비했던 일화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방송을 계기로 시청자들에게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부각하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tvN ‘둥지탈출’에는 더민주 기동민 의원이 출연 중이다. 둥지탈출은 자녀의 자립과정을 그린 가족 예능인데, 초선인 기 의원은 국회 밖 솔직한 일상을 시청자와 공유하고 있다.  
 
심재웅 숙명여대(미디어학부) 교수는 공동논문 ‘정치인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시청자의 정치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2012)’에서 “대선후보가 출
연한 예능 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할수록 정치에 대한 관심 및 정치적 대화량이 증가한다”며 “정치적 냉소주의가 줄어드는 긍정적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 김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 김현동 기자

 
류홍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도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정치에 더 많은 참여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고 긍정 평가했다.
 
반면, 정치인을 정책과 능력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에서 형성된 감성에 영향 받아 선호하게 된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일명 정치의 감성화다. 이성적이어야 할 정치적 과정이 연예인 좋아하듯 이유 없는 선호가 생긴다는걸 의미한다.
 
신율 명지대(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소한 특정 정치인을 좋아한다면 개인을 좋아하는게 아닌 해당 정치인의 정책과 방향성에 동의하는게 맞다”며 “무조건적인 정치인 선호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폴리테이너 2.0시대라지만 특정 인기 정치인 위주의 방송 제작방식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류홍채 교수는 “방송의 공정성, 정치의 중립성 등을 위해 정치 신인들에게도 방송출연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며 “예능에서 다루지 못한 현안은 시사프로그램에서 보완하면 유권자 선택에 보다 도움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

일각에서는 재허가 등의 과정에서 권력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방송사가 마치 보험 들듯 유력 대권주자들의 긍정적 이미지를 띄워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럴 경우 결과적으로 특정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비판 감각을 무디게 할 수 있어 자칫 방송의 공공성에 어긋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남=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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