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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장애인의 눈이 되어주세요" 신뢰로 연결한 33만명

중앙일보 2017.10.17 10:25

"기술보다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신뢰입니다."

'비 마이 아이즈'의 설립자 한스 예르겐 비베르그. [사진=be my eyes]

'비 마이 아이즈'의 설립자 한스 예르겐 비베르그. [사진=be my eyes]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비 마이 아이즈(Be My Eyes)'의 설립자 한스 예르겐 비베르그(53·덴마크)는 "아주 간단한 기술일 뿐"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시각장애인용 어플 '비 마이 아이즈' 만든 비베르그
시각 장애 딛고 40대에 스타트업 창업한 53세 창업가
전세계 4만 시각장애인과 28만 봉사자 앱으로 연결

비 마이 아이즈는 스마트폰의 음성 안내 기술과 영상통화를 활용한 무료 앱이다. 시각장애인이 도움이 필요한 순간 앱을 실행하면 그와 같은 언어를 쓰는 봉사자가 '응답'한다. 가령 "이 우유 유통기한이 지났나?"라고 물으며 카메라로 보여주면 "일주일도 더 지났으니 버리라"고 답해준다. 이 앱은 지난달 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오슬로 이노베이션 위크 2017 어워드'를 수상했다. 전 세계 1만여명이 모여 '지속가능한' 디지털과 혁신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철학을 공부하는 농부가 되고 싶었던 비베르그는 25세에 시각장애인이 됐다. 눈 앞이 터널에 갇힌 듯한 시야장애에다 눈앞 25㎝까지만 인식 가능한 지독한 근시가 겹쳤다. 
오슬로 이노베이션 위크에서 '비 마이 아이즈' 설립자 한스 요르겐 비베르그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은 '비 마이 아이즈' CEO 크리스티안 에어푸르트. [사진=이경희 기자]

오슬로 이노베이션 위크에서 '비 마이 아이즈' 설립자 한스 요르겐 비베르그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은 '비 마이 아이즈' CEO 크리스티안 에어푸르트. [사진=이경희 기자]

 
"2012년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저는 기술은 잘 몰랐어요. 스타트업 모임에 가서 이야기했더니 8명이 대단한 아이디어라면서 함께 하겠다고 나섰죠."
 
투자를 받고 앱을 개발하는 과정을 거쳐 2015년 출시하자마자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히트했다. 비베르그는 "영어 사용자가 압도적이긴 하지만 총 80개 언어 사용자가 있다"고 말했다. 2년 만에 시각장애인 4만여명, 봉사자 28만여명이 앱으로 연결됐다. 한국어 사용자는 9월 말 기준 시각장애인 500명, 봉사자 1만여 명이다. 장애인보다 봉사자가 훨씬 많고, 시간대가 다른 전 세계에 이용자가 흩어져있어서 밤낮 가릴 것 없이 필요한 순간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비 마이 아이즈' 어플 초기화면. 장애인이 음성 명령으로 앱을 실행하면 그 시간에 같은 언어로 도와줄 수 있는 봉사자가 응답하는 방식으로 연결된다. [사진=be my eyes]

'비 마이 아이즈' 어플 초기화면. 장애인이 음성 명령으로 앱을 실행하면 그 시간에 같은 언어로 도와줄 수 있는 봉사자가 응답하는 방식으로 연결된다. [사진=be my eyes]

글로벌 기업 IBM도 인공지능 왓슨을 활용해 시각장애인에게 길 안내 등의 음성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베르그는 "왓슨은 정말 놀랍다. 하지만 흰 빨래와 검은 빨래를 분리한다거나 오븐 온도를 200℃로 맞추는 것 같은 작업은 사람에게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언젠가는 왓슨이 모든 걸 하겠지만 아직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 마이 아이즈'를 사용하는 모습.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봉사자에게 우유의 유통기한을 물어보는 장면이다. [사진=be my eyes]

'비 마이 아이즈'를 사용하는 모습.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봉사자에게 우유의 유통기한을 물어보는 장면이다. [사진=be my eyes]

그는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30초~1분 정도만 할애하면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에 대한 경제적 대가나 봉사 증서 발행 같은 혜택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봉사자들에게 앱을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는 e-메일을 매일 받는다고. 반면 "시각장애인은 영상통화로 예, 아니오만 간단히 물어보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에 스스로 해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가족 등에게 폐를 끼친다는 느낌으로 물리적으로 도움을 받는 데 비해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만약 덴마크가 아닌 한국이었다면, 시각장애인이 이런 앱을 만들어 창업할 수 있었을까. 참고로 서울시가 유사한 '엔젤아이앱'을 만들어 지난해 전국에 배포했지만 업데이트는 멈춘 상태다. '비 마이 아이즈' 보다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비베르그는 "덴마크에서도 시각장애인이 직업을 갖긴 어렵다. 하지만 사회 보장 시스템이 매우 훌륭해 장애인은 부자가 되긴 어려워도 내 집에서 남들처럼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봤다. 의료 수준이 높아 시각장애 발생률이 낮고 스마트폰 보급률도 높기 때문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90%가 아프리카·인도 등 저개발 국가에 몰려 있다. 쉽게 시각장애인이 되는데다 스마트폰도 갖기 어렵고 인터넷 접근성도 떨어진다. 완전히 불공평하다. 내가 진짜 원하는 큰 그림은 그들을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에 무료 와이파이망을 구축하는 구글의 프로젝트 등이 완료되면 가능성이 열린다. 보이스오버(voice over·애플의 음성 안내 기능)가 장착된 아이폰5 이상 모델 부터는 비 마이 아이즈가 구동된다. 최근엔 토크백(TalkBack·안드로이드의 음성 안내 기능)이 안정화됐다고 판단해 안드로이드용 어플도 내놨다. 그는 "저개발국가의 시각장애인에게 중고 아이폰 5를 보내주고 싶다. 우리는 여력이 없지만, 비영리기구나 기업이 함께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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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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