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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80여 년 전 예술인 사랑방, 이젠 젊은이 북적이는 갤러리·카페

중앙일보 2017.10.17 01:05 종합 20면 지면보기
인스타 거기 어디? │ 통의동 보안여관
최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자꾸 옛날 여관 사진이 올라온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목욕탕 표시와 ‘여관’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투박한 간판 사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이다.
 
80년 된 간판 등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보안여관.

80년 된 간판 등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보안여관.

그 자리에 있은 지 80년은 족히 넘은 이 여관이 요 몇 달 사이 인스타 명소로 떠올랐다. 보안여관 관련 게시물 수만 3600여 개. ‘보안책방’ ‘보안스테이’ ‘일상다반사’ 등 보안여관과 연결된 장소의 게시물도 속속 올라온다.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 보안여관에 갈 때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리는 게 가장 쉽다. 4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 일명 ‘경복궁 담장길’을 따라 청와대 방면으로 쭉 거슬러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 보면 통의동 파출소, 대림미술관을 지나 투박한 보안여관 간판을 찾을 수 있다. 이름은 여관이지만 지금은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다. 과거 여관으로 운영되다 200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수년간 버려지다시피 한 곳을 2007년 당시 복합문화예술공간을 기획하고 있던 최성우(일맥문화재단 이사장) 보안1942 대표가 사들였고, 2010년부터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사실 여관일 때도 갤러리 못지않게 많은 문인과 화가 등 예술가들의 공간이었다. 1936년 시인 서정주가 여기서 지내며 김동리·김달진 등 동료 시인과 함께 문예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는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다. 화가 이중섭이나 시인 이상도 보안여관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2004년 문을 닫기 직전엔 늦게까지 야근하다 통금시간에 걸린 청와대 공무원들의 잠자리로 종종 쓰이기도 했다.
 
보안여관 바로 옆 ‘보안1942’의 1층 카페 ‘일상다반사’.

보안여관 바로 옆 ‘보안1942’의 1층 카페 ‘일상다반사’.

보안여관은 꼭 전시를 볼 생각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 됩니다’는 옛 여관 시절 푯말이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다. 바로 옆에는 손님이 들어오면 숙박 등록을 했을 작은 창과 오래된 거울이 붙어 있고, 안쪽으로 길게 난 복도를 따라 작은 방이 열을 지어 나타났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바닥과 이제는 생활에 사용하지 않는 옛 전구 스위치나 ‘문 살짝’ 같은 푯말을 보는 재미가 솔직히 더 쏠쏠하다.
 
보안여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17년 6월 바로 옆에 보안여관의 2017년 버전인 ‘보안1942’를 만들면서다. 건축디자인은 신도리코 본사. 국립국악중고등학교 등을 짓고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마스터플랜을 맡았던 민현식 건축가가 맡았다. 이름의 1942는 보안여관 천장 속에서 발견한 ‘1942년 천장을 보수했다’는 기록에서 따왔다. 카페·책방·전시장·게스트하우스까지 모두 갖춘 공간으로, 이곳의 원류인 보안여관 관련 이야기가 함께 입소문나면서 인스타그래머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18일에는 보안1942 4층에서 헤라서울패션위크의 오프쇼(메인 행사장 외에서 열리는 쇼)로 김민주 디자이너의 ‘민주킴’ 패션쇼도 열린다.
 
글·사진=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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