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현옥의 금융산책]‘중국의 그린스펀’ 저우샤오촨 총재, 15년 장기집권 끝내나? 은퇴 앞두고 목소리 높이는 까닭은.

중앙일보 2017.10.17 00:01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15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열린 주요 30개국(G30) 그룹 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15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열린 주요 30개국(G30) 그룹 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떠나기 전에 남길 말이 많은가. 저우샤오촨(周小川ㆍ69)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공식 석상에서 잇따라 중국 경제에 대한 쓴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고위직 정년(65세)을 넘긴 저우 총재는 18일 개막하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후 15년간의 인민은행 총재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2002년 중국 인민은행장 오른 뒤
자본과 금융시장 개방 적극 이끌어
위안화 국제화 주도한 ‘미스터 런민비’
IMF 개혁 등 국제통화체제 개편에 앞장

태자당 대표주자, 장쩌민 인맥 분류
금융 적폐 청산 분위기속 퇴임할 듯
FT “내년 1월까지는 물러날 전망”

 블룸버그에 따르면 저우 총재는 15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열린 주요 30개국(G30) 그룹 토론에서 “중국 기업의 부채가 과다한 만큼 부채를 줄이고 금융안정을 위한 정책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여겨지는 과도한 부채 문제를 중앙은행장이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앞서 그는 10일 경제지인 차이징(財經)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경제 개방을 위해 자유 무역과 투자를 포용하고 시장이 위안화 가치를 결정하도록 해야 하며 자본계정 통제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화 가치 안정을 위해 중국 정부가 외환 시장에 개입하고 자본의 해외 유출을 막는 상황에서 이런 발언은 시장의 눈길을 끌었다.
 
 홍콩대 아시아글로벌연구소 천즈우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저우 총재의 차이징 인터뷰는 고별 발표문이자 후임자에 대한 브리핑처럼 들린다”며 “그의 발언은 중국 최고 정책결정자뿐만 아니라 동료와 미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에게 보내는 충고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저우 총재는 중국 내 대표적인 개혁 옹호론자이자 시장 개방주의자다. 그의 행보를 따라가면 중국 자본시장 개방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그는 베이징(北京)대를 졸업하고 칭화(淸華)대에서 시스템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인 그는 1979년부터 국무원 여러 부서에서 경제체제개혁 관련 업무를 맡고 86~91년 국무원 체제개혁방안소조 일원으로 활동했다.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 [사진 중앙포토]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 [사진 중앙포토]

 91년 중국은행 부행장이 되면서 금융권과 인연을 맺은 그는 국가외환관리국(SAFE) 국장이던 97~98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는 중국 위안화 가치를 유지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했다. 중국이 아시아의 큰 형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후 증권감독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중국석화와 차이나유니콤 등 주요 국유기업의 증시 상장을 성공시켰다. 외국 기관의 중국 내 주식 취득 허가 등이 그가 증권 시장 감독의 수장을 맡았을 때 이뤄졌다.
 
 그가 인민은행장으로 재임하면서 자본시장 개방과 중국 금융시장의 국제화에는 속도가 붙었다. 2005년 고정환율제를 폐지하며 복수 바스켓 기준 변동환율제로 바꿨다. CNBC는 최근 “고정환율제 폐지는 저우 총재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라며 “시장에서 위안화 가치가 정해질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중국 국유은행의 부실을 털어내고 2006년 엄청난 성공을 거둔 중국공상은행 등의 해외 기업공개(IPO)의 뒤에도 그가 있었다.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지점 설립 허용과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 지원도 이 때 이뤄졌다.
 
 ‘미스터 런민비(人民幣)’로 불리는 그의 업적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위안화 국제화를 앞세워 국제통화체제 개편에 앞장선 것이다. 세계금융위기의 여파가 이어지던 2009년 그는 인민은행 홈페이지에 “IMF 특별인출권(SDR) 역할을 확대해 달러를 대체하는 초주권화폐로 활용하자”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미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체제 개편에 나서겠다는 선전포고였다.
 
 그의 주도 하에 위안화 국제화를 본격 추진하며 2015년에는 위안화가 IMF SDR 통화바스켓에 편입됐다. 미국 달러화와 유로ㆍ일본 엔ㆍ영국 파운드 등 주요국 통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가는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중국이 총대를 메고 나섰던 신흥국의 IMF 쿼터 조정도 이뤄지면서 IMF의 개혁 작업도 이끌어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출범으로 중국은 국제통화체제 재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처럼 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저우 총재의 위상도 점차 높아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저우 총재의 영향력이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맞먹는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의 모습. [연합뉴스]

 
 ‘중국의 그린스펀’으로 통하며 국제 금융무대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던 저우 총재의 퇴진은 집권 2기를 여는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금융 적폐 청산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금융 부문에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한 시도로도 분석된다.
 
 인민은행장으로 15년간 재임하며 일행삼회(一行三會ㆍ인민은행,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 증권업감독관리위원회, 보험업감독관리위원회)에 뻗어있는 그의 영향력을 털어내기 위한 조치라는 풀이도 나온다.
 
 저우 총재는 장쩌민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는 혁명 원로의 자녀를 ‘태자당(太子黨)’의 대표주자다. 그의 부친은 공산 혁명에 참가해 건설부장(건설부 장관)을 지낸 저우찌엔난(周建南)이다. 저우찌엔난이 국무원 산하 국가수출입위원회 부주임으로 일할 때 장쩌민 전 주석이 비서였다. 저우찌엔난은 장쩌민 전 주석을 정계 무대에 발탁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부친과 장쩌민 전 주석의 인연이 인민은행장에 그를 임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2002년 12월 저우 총재가 임명되기 한 달 전 장쩌민 전 주석은 공산당 총서기에서 물러났지만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지위를 유지하는 ‘반퇴(半退)’ 상태였다. 장 전 주석의 영향력이 건재한 가운데 그가 중앙은행의 수장에 올랐다. 이후 저우 총재는 후진타오(湖錦濤)ㆍ시진핑 주석까지 세 명의 최고 지도자를 거치며 15년간 중앙은행 총재 자리를 지켰다.
 
13~14일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제9회 한중일 중앙은행 총재회에의서 3개국 총재가 만났다. 사진 왼쪽부터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자료: 한국은행

13~14일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제9회 한중일 중앙은행 총재회에의서 3개국 총재가 만났다. 사진 왼쪽부터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자료: 한국은행

 그의 입지가 탄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국제 무대에서는 그린스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 내에서 한계는 분명했다. 중앙은행 총재지만 금리 결정권을 갖지 못했다. 인민은행은 통화정책에 대한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공산당 내 영도소조나 국무원 등에서 금리를 최종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부 비판도 이어졌다. 그가 자본시장 개방에만 매진하는 탓에 중국 국내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수차례 교체설이 돈 이유다. 특히 장차관급 정년인 65세를 맞은 2013년에는 그의 교체설에 무게가 실렸지만 유임에 성공하고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부총리급)에 오르며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그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모습이다. 저우 총재가 차이징 인터뷰에서 “개혁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고 촉구한 것은 그가 추진했던 개혁과 개방이 중단되면 안 된다고 강조한 것으로 시장은 평가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개혁 옹호론자인 저우 총재가 내년 1월 말까지는 은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CNBC 등에 따르면 그의 후임 자리를 놓고 궈수칭(郭樹淸) 은행감독관리위원회(은감회) 주석과 장차오량(蔣超良) 후베이(湖北)성 서기가 경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