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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최저임금 올린다니, 자동화로 눈 돌리는 기업들

중앙일보 2017.10.16 03:00 종합 5면 지면보기
기업도, 근로자도 부담 되는 정책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완화’를 골자로 한 정부의 경제 정책이 본래 취지와는 정반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각종 비용을 부담할 주체로 기업을 겨냥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근로자가 부메랑을 맞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어서다.

최저임금 인상
이코노미스트 “고용 감소 뻔하다”
무인 주문·결제기 업체 주가 급등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파리바게뜨 직접고용 명령 논란
가맹점주들 “제빵사 내보내겠다”

이미 실패 판명난 기간제법
비정규직, 9년 새 되레 40만 늘어
“경제실험 대신 검증된 정책 필요”

 
대표적인 게 최저임금 인상이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지킬 수 없는 약속(Promising the Moon)’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의 최저임금 1만원(2020년 목표)은 중위소득의 70% 수준으로 노동자 보호가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최저임금(중위소득의 60%)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이 중위소득의 50%를 넘으면 기업은 비용 부담 때문에 고용을 줄이게 된다는 것이 경제학의 경험칙”이라고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와 관련,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임금 격차 악화 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한국 재계 관계자의 말도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문재인 대통령의 이니셜(Moon)을 제목으로 내세워 문 대통령의 정책 목표가 달성하기 쉽지 않음을 중의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대형마트 휴업에도 전통시장 방문 효과 없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기업규제법안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기업규제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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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현장에선 최저임금과 통상임금의 산입 범위가 달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기본급+일부 고정수당’으로 상여금과 숙식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산입 범위가 좁을수록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많아진다.
 
반면 법원은 최근 기아차 소송에서 통상임금에 상여금과 식비를 포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상여금과 식비는 통상적인 임금처럼 주되, 최저임금을 올리는 기준에서는 빼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상충하는 이중부담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양립하기 힘든 과제가 서로 상충하는 ‘정책 패러독스’는 이뿐이 아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파리바게뜨 본사에 가맹점에서 일하는 제빵사 5738명을 직접 고용하라고 명령한 것도 후폭풍을 예고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는 “제빵사가 본사 소속이 되면 내가 월급을 줘야 하는데 차라리 빵을 직접 굽겠다”며 “결국 제빵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데 고용부의 명령이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제빵사를 파견하는 파리바게뜨 협력 업체들은 “정부가 정작 중소기업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소송을 준비 중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확대나 복합쇼핑몰 의무휴업일 적용 등도 당초 취지와는 반대로 갈 수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의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효과 분석’에 따르면 의무휴업 규제가 진행될수록 대형마트와 기업형수퍼마켓(SSM)은 물론 전통시장, 개인 수퍼마켓에서의 소비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형마트 소비는 의무휴업 도입 전인 2010년보다 6.4% 감소했고 SSM은 1.3%, 전통시장은 3.3%, 개인 수퍼마켓은 0.1% 줄었다. 당초 취지인 ‘내수 진작’과 상충한다는 의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인한 전통시장 방문 증가 횟수는 연간 평균 1회도 미치지 못하는 0.92회에 불과했다.
 
또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기업이 과감히 투자하라’고 요구하면서 투자를 주도할 대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를 축소했다.
 
“임금 올려 경기부양은 반짝 효과 … 혁신 필요”
 
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지금처럼 친노동·반기업 일방통행을 계속할 경우 사람 대신 로봇이 일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이 더 빠르게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나오자마자 씨아이테크·한네트·푸른기술 등 키오스크(KIOSK·터치 스크린 방식의 무인 주문·결제 기기) 업체의 주가가 급등하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졌다.
 
패스트푸드 체인은 물론 최근 커피전문점들도 비용 절감을 위해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등 유통가에선 이미 자동화가 퍼지고 있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비즈니스 호텔 관계자도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 비용 절감이 절실하다”며 “조만간 체크인·체크아웃을 고객이 직접 하는 무인화 시스템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민을 대상으로 ‘경제 실험’을 하는 대신 ‘검증된 정책’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07년 도입한 ‘기간제법’의 실패가 반면교사다. 당시 정부는 기간제(비정규직) 직원이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지만 기간제 근로자 수는 2007년 253만1000명에서 지난해 293만 명으로 증가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을 높여 일시적으로 경기 부양을 할 수는 있지만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기술 개발 등 혁신이 있어야 한다”며 “노사가 타협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격차를 줄이는 식으로 소득주도 분배를 하고 성장은 혁신으로 일궈야 5년 뒤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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