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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된다"며 문 닫더니, 한식당 속속 여는 특급호텔

중앙일보 2017.10.16 00:01
빠르게 바뀌는 한국의 식음 트렌드와 달리 호텔 레스토랑에선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확연하게 눈에 띄는 변화가 읽힌다. 바로 한식당의 부상이다.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어소시에이티드 위드 풀만(이하 그랜드 앰배서더)은 지난 8월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던 자리에 한식당 '안뜨레'를 열었다. 1976년 호텔 개관부터 96년까지 영업했던 한식당 '금수장'의 명성을 잇겠다며 20여 년 만에 다시 한식당을 연 것이다. 한달 앞선 7월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하 반얀트리)이 유러피안 레스토랑 '페스타'의 이름은 그대로 둔채 모던 한식당으로 메뉴를 싹 바꿨다. 호텔 식음(F&B)을 총괄 기획하는 셰프 강레오 셰프 이사가 1년 동안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찾은 식재료를 바탕으로 개발한 메뉴 40여 가지를 선보이고 있다. 4월 문을 연 잠실의 6성급 호텔 시그니엘 서울도 81층에 유명 한식당 '비채나'를 입점시켰다. 이 호텔의 레스토랑은 캐주얼한 '라운지'와 프렌치 '스테이' 등 총 세 곳 뿐인데 그중 하나를 한식으로 채운 것이다. 삼성동 파크하얏트 서울은 한식당까지는 아니지만 지난 4월 '더 라운지'에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코리안 티하우스를 만들고 한식 메뉴를 더 강화했다. 

미쉐린 효과 기대에 앞다퉈 오픈
모던 한식의 대중적 인기도 한몫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의 모던 한식당 '페스타 다이닝'. 7월 유러피안 레스토랑을 모던 한식당으로 바꿨다. [사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의 모던 한식당 '페스타 다이닝'. 7월 유러피안 레스토랑을 모던 한식당으로 바꿨다. [사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파크하얏트 서울은 4월 '더 라운지'에 한국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코리안티하우스'를 만들고 24절기에 따른 한식 메뉴를 선보이는 등 한식을 강화했다. [사진 파크하얏트 서울]

파크하얏트 서울은 4월 '더 라운지'에 한국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코리안티하우스'를 만들고 24절기에 따른 한식 메뉴를 선보이는 등 한식을 강화했다. [사진 파크하얏트 서울]

"돈 안된다"며 철수하더니
불과 1년 전만 해도 서울시내 특급호텔 중 한식당이 있는 곳은 4곳 뿐이었다. 롯데호텔 서울 '무궁화', 서울신라호텔 '라연', 그랜드 워커힐 서울의 '온달'(한식당)·명월관(숯불갈비 전문점)', 메이필드 호텔의 '낙원'(갈비)·'봉래헌'(한식당)이 전부였다. 
1999년엔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한식당 '수라'를 접은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인터컨티넨탈 서울이 한식당 '한가위'를, 2005년 웨스틴조선호텔 서울이 한식당 '셔블'의 문을 닫았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한국 호텔에 한식당이 없어서야 되겠느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호텔 관계자들은 "호텔 레스토랑은 관광객뿐 아니라 내국인 고객 수요가 적지 않다"며 "평소 늘 먹는 한식을 굳이 비싼 값 주고 호텔에서 먹으려는 사람이 적다보니 도저히 수익을 낼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식자재나 인건비를 감안할 때 시중의 한식집처럼 싼값에 메뉴를 구성하기 어려운데, 값이 비싸다보니 고객들이 굳이 호텔 한식당에서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게다가 과거엔 한식당 보유가 특등급 이상 호텔의 필수기준이었지만 1994년 관광진흥법 시행규칙 가운데 관련 규정을 삭제한 것도 호텔 한식당 보기가 어려워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왜 갑자기 최근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일까. 
 
미쉐린 별을 노려라 
업계에서는 미쉐린 효과를 지목한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시상식 모습. 왼쪽부터 한식당 '가온'의 수셰프(부주방장)와 프랑스 미쉐린 본사의 마이클 앨리스 인터내셔널 디렉터, 서울신라호텔 '라연'의 수셰프. [중앙포토]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시상식 모습. 왼쪽부터 한식당 '가온'의 수셰프(부주방장)와 프랑스 미쉐린 본사의 마이클 앨리스 인터내셔널 디렉터, 서울신라호텔 '라연'의 수셰프. [중앙포토]

2016년 11월 세계적 미식 가이드인 '미쉐린(미슐랭) 가이드'가 처음으로 서울편을 발간했는데 별을 받은 총 24개 레스토랑 중 11개가 한식당이었다. 특히 최고인 별 3개를 받은 두 곳인 라연(서울신라호텔)과 가온, 별 2개를 받은 권숙수·곳간이 모두 한식당이었다는 점이 호텔을 자극했다. 별 2~3개를 받은 특급호텔 5개의 레스토랑 중에서 한식당이 아닌 곳은 롯데호텔 서울의 프렌치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뿐이었다. 별을 기대했던 특급호텔들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이제 다음달이면 '2018년판 미쉐린 가이드'가 나온다. 이애주 세종대 호텔관광학과 교수는 "한식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진 데다 2016년 나온 미쉐린 가이드에서 한식의 가능성을 확인한 호텔들이 한식당으로 미쉐린에 승부수를 거는 게 아니겠느냐"며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호텔이 한식당을 열어 선두해간다는 건 외식업계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호텔들이 미쉐린 별에 집착하는 건 호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에 앞서 영업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호텔업계에서 유일하게 별 3개를 받은 라연이 미쉐린 발간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예약이 한 달 밀려있을 만큼 인기를 끌다보니 별을 따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롯데호텔 서울은 2017년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받겠다는 각오로 피에르 가니에르의 서비스를 도입하고 좌석수를 대폭 줄였다. 대표메뉴 구절판. [사진 롯데호텔서울]

롯데호텔 서울은 2017년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받겠다는 각오로 피에르 가니에르의 서비스를 도입하고 좌석수를 대폭 줄였다. 대표메뉴 구절판. [사진 롯데호텔서울]

예컨대 롯데호텔 서울은 1979년 호텔 개관과 동시에 문을 열어 아직 유지하고 있는 '무궁화'로 40년 저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를 위해 피에르 가니에르의 셰프드랑(Chef de Rang) 서비스를 도입했다. 홍성원 롯데호텔서울 식음팀장은 "이전엔 한 테이블을 1명의 직원이 전담했지만 요즘은 3명의 직원이 맡아 보다 세심하게 고객의 식사를 책임진다"며 "또 음식을 가르킬 때 손바닥이나 검지 손가락이 아닌 새끼손가락을 이용하는 등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좌석 수도 90석에서 60석으로 줄였다. 서양식 서비스를 도입해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 기준을 만족시키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올해 3스타 수성에 나선 서울신라호텔의 라연. [사진 서울신라호텔]

올해 3스타 수성에 나선 서울신라호텔의 라연. [사진 서울신라호텔]

3스타 수성에 나선 서울신라호텔 라연은 전통주를 12종에서 24종으로 강화했다. 한식과 어울리는 페어링을 선보이는데 식사 전엔 오미자로 만든 오미로제 와인을, 냉채나 물회엔 제주 약주 '맑안 바당'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은 전통주를 두 배로 강화하고 한식에 어울리는 페어링을 선보인다. [사진 서울신라호텔]

서울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은 전통주를 두 배로 강화하고 한식에 어울리는 페어링을 선보인다. [사진 서울신라호텔]

고급 한식 찾는 고객 늘어  
미쉐린 가이드의 별이 단지 명예로만 끝난다면 특급호텔들이 너나없이 한식당에 열을 올릴 이유가 없다. '돈이 안된다'며 접었던 과거와 달리 이젠 한식이 '돈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어소시에이트 위드 풀만은 프렌치 레스토랑을 한식당 '안뜨레'로 바꿨다. 안뜨레의 코스 메뉴 [사진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어소세이에티드 위드 풀만]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어소시에이트 위드 풀만은 프렌치 레스토랑을 한식당 '안뜨레'로 바꿨다. 안뜨레의 코스 메뉴 [사진 그랜드 앰배서더 서울 어소세이에티드 위드 풀만]

실제로 지난 몇년새 모던 한식 열풍이 불면서 꽤 비싼 가격에도 한식을 찾는 고객이 많아졌다. 정식당·밍글스·권숙수·이십사절기 등이 모두 예약이 어려울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한정식이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한 코스 요리와 전통주 페어링 등을 선보이면서 한식의 '집에서 먹는 밥'이라는 이미지를 '좋은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먹는 요리'로 바꿔놨다.
이런 분위기는 호텔 레스토랑에도 이어졌다. 그랜드 앰배서더는 한식당 '안뜨레'를 열기 전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한식 단품 메뉴를 함께 팔았는데 한식을 찾는 고객이 점점 늘자 아예 한식당으로 바꿨다. 반얀트리의 '페스타 다이닝'도 문 연 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일·주말, 그리고 점심·저녁 할것없이 100석 모두 찰 만큼 인기다. 반얀트리 홍보담당 박수정 대리는 "미쉐린 발간 이후 호텔가에서 한식당이 재조명 받고 있는 흐름과 맞물린 데다 트렌디한 미식 경험을 추구하는 유행이 인기의 배경"이라고 말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의 모던 한식당 '페스타 다이닝'은 주중과 주말 모두 만석이다. 대표 메뉴인 골동 반상. [사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의 모던 한식당 '페스타 다이닝'은 주중과 주말 모두 만석이다. 대표 메뉴인 골동 반상. [사진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앞으로는 어떨까. 레스토랑 가이드북 『블루리본』 김은조 편집장은 "최근 외식 트렌드가 프렌치에서 모던 한식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호텔 입장에서도 모던 한식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어 전통 한식에 비해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데다 메뉴도 차별화할 수 있어 당분간 인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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