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실패 경험 없는 한국 경영자들 현실 안주, 위험 회피에만 몰두

중앙선데이 2017.10.15 01:58 553호 20면 지면보기
[SUNDAY MBA] O4O 시대의 기업가 정신
미국 온라인 유통 업체 아마존은 지난 5월 뉴욕의 명소인 센트럴파크·타임워너센터에 오프라인 점포 아마존고를 열었다. [뉴욕=AP 연합뉴스]

미국 온라인 유통 업체 아마존은 지난 5월 뉴욕의 명소인 센트럴파크·타임워너센터에 오프라인 점포 아마존고를 열었다. [뉴욕=AP 연합뉴스]

기업 진화의 속도가 급격히 단축되고 있다. 철강 산업이 50년 주기로, 자동차 산업이 30년 주기로 비즈니스 모델이 급변했다면, 휴대전화 산업은 10년 주기로 줄어들었다. 1990년대 아날로그 휴대전화 시장을 독주했던 모토롤라는 2000년대 디지털 휴대전화의 노키아 시대를 허용하며 몰락하고 말았다. 노키아는 2010년대 이후 애플과 삼성이 주도하는 스마트폰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아마존, 홀푸드 인수로 월마트 위협
온라인 고객 정보 오프라인서 활용
3년이면 시장 환경 급변하는 시대
관리형 경영으론 살아남기 어려워

오늘날을 ‘3고의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아마존고·알파고·포켓몬고의 3고가 모바일과 빅데이터로 새로운 기술시대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새 기술로 유통의 비즈니스 모델은 몇 년 단위의 파괴적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 자기 택시가 한 대도 없는 세계 최대의 택시 회사는 우버고, 호텔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는 세계 최대 숙박업체는 에어비엔비다. 이런 온라인투오프라인(O2O) 모델은 이미 온라인포오프라인(O4O)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O4O모델은 온라인에서 얻은 고객들의 정보를 오프라인 매출 증대를 위해 활용하는 것이다. 아마존 북스가 좋은 예다.
 
질레트, 저가 면도기 내세운 신생 벤처에 고전
달러 쉐이브 클럽의 면도날 세트.

달러 쉐이브 클럽의 면도날 세트.

온라인 강자 아마존이 오프라인 세계 최대 소매업체 월마트를 위협하고 있다. 아마존은 2015년부터 온라인에서 얻은 고객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잘 팔리는 품목으로만 매장을 구성해 재고관리의 왕자로 등극했다. 돈 버는 회사와 돈 못 버는 회사는 창고에 가 보면 금방 알수 있다. 재고가 없으면 무조건 수익성이 좋은 회사고, 재고가 많으면 무조건 수익성이 나쁜 회사다. 재고관리야 말로 수익성의 핵심요소기 때문이다. 아마존 북스는 아마존닷컴에서 리뷰 1만 개 이상, 온라인 평점이 5점 만점에 4.8 이상의 책만 선별해 진열한다. 책은 계산대가 없이 무인판매한다.
 
더 나아가 무인결제가 가능한 스마트 스토어인 아마존고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들고 나오기만 하면 되는 시대를 열고 있다. 길게 줄을 서거나 결제하는 과정이 필요없게 된 것이다. 아마존은 지난 7월 최대 유기농 식품업체인 홀푸드마켓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월마트와 가격경쟁을 시작했다. 인수 후 평균 43%의 할인 판매를 실시한 것이다. 이 같은 아마존의 오프라인화에 대해 월마트는 구글과 손잡고 온라인화로 대응하고 있다. 불과 최근 3년 이내에 진행된 엄청난 변화다.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고가 오프라인의 비즈니스 모델을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이 파괴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1895년 설립된 질레트는 2011년 설립한 스타트업 ‘달러 쉐이브 클럽’과의 가격대 성능비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 고가 이미지 상품의 위기 시대가 오고 있다. ‘면도기는 싸게, 면도날은 비싸게’ 파는 질레트의 고가 서비스 전략은 우수 경영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른바 ‘팔아서 돈 버는’ 전략이 아니라 ‘깔아서 돈 버는’ 전략으로 질레트와 쉬크는 세계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었다. 2010년 질레트의 시장 점유율은 71%였다. 면도기는 싸게 팔고, 대신 교체용 면도날은 끊임없이 신형으로 개발해 화려한 광고로 포장해 고가격 정책을 유지했다. 그 결과 면도날은 첨단 기술 요소는 적었지만 고가격 안정적 매출로 높은 수익을 거뒀다.
 
질레트의 수난은 저가 온라인 판매에서 시작되었다. 면도날 시장에 월 1달러 면도날 구독 모델인 달러쉐이브클럽이 등장한 것이다. 온라인 판매에서는 질레트를 앞서기 시작해 2016년 320만 명의 클럽 회원을 확보하며 2억 4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결국 유니레버에 1조 2000억 달러에 인수됐다. 고가 전략으로 세계 안경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거대 공룡 룩소티카에 도전한 와비파커의 성공 스토리도 이와 유사하다.
 
일본 기업들, 디지털 도전 회피하다 몰락
이렇듯 우리는 거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미래의 새로운 기회에 모험적으로 도전하고 혁신하는 기업가형 지도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오히려 위험을 회피하는 관리자형 지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관료화와 고립된 진화를 뜻하는 갈라파고스화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규정집은 두꺼워지고, 기업 경영에서 창의적 혁신보다 매뉴얼의 의존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에는 규정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의 힘이 세지고 있다.
 
한국은 가난했던 시절을 벗어나면서 경제에 관한 한 실패의 경험이 별로 없는 편이다. 이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물불가리지 않는 도전정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인들은 모험을 피하고 싶어한다. 문제가 있는 도전보다 문제가 없는 안주를 통해 지금까지의 성과를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불행히도 이것이 현재의 ‘저주(curse of incumbency)’가 된다. 혁신보다 현재를 지키려고 하지만 결국 진부해지면서 정체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중간소득함정(neo Middle Income Trap)’이다.
 
한국처럼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던 1990년대 중반 일본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 일본 기업들은 아날로그 기술을 고집하고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다. 반면 당시 한국은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적극적이고 도전적이었다. 그 결과 삼성이 소니를 앞지르고 일본의 잃어버린 경제가 시작됐다. 지금 한국은 상대적으로 4차 산업형인 정보통신기술(ICT) 투자에 소극적인 반면, 중국은 새로운 기회에 매우 모험적이고 적극적이다. 시장은 급변하고 신기술개발은 더 빨라지고 있는데, 한국 경영자들은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혁신하기 보다는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 문제가 없는 경영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다. 이른바 한국 기업의 관료화 현상이다. 기업가 정신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기업가 정신의 반댓말은 관리자 정신이다. 플랫폼 경영의 반댓말은 동물원 관리다. 기업가가 미래의 꿈과 신시장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관리자는 현재의 돈과 규정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기업가는 경계(Border)를 넘어서 위험에 도전하지만, 관리자는 경계의 테두리를 만들어 놓고 위험회피에 관심이 많다. 플랫폼은 개방하고 열린 혁신을 추구하지만, 동물원은 테두리와 경계를 튼튼히 관리해야 한다. 동물원의 구성원은 구경거리고 최소비용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한국 기업가 정신 OECD 하위권 평가
지난 60년 역사는 기업가 정신의 역사다. 1960년대 아무것도 없었던 시절부터 한국 기업가들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냈다. 자동차·반도체를 만들면서 경제를 일으켰고, 일자리를 만들었다. 피터 드러커로부터 가장 기업가적 나라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관리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기업가 정신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하위권인 23위에 그치고 있다.
 
354만 개에 이르는 한국 중소기업 대부분은 해외 신시장에 도전하기보다는 국내시장을 지켜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존 사업에서도 중국 등 신흥기업의 도전에 대응하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켜 내려는 관리 노력이 중심이 되고 있다. 결국 국내시장 의존이 심화되고 글로벌 경쟁력과 부가가치 창출 능력은 떨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해외수출 비중은 아직 매출액의 10%에 불과하고,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은 악화되는 이유다.
 
관리자형 지도자가 주도하는 기업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연구소에서 연구개발(R&D)을 하지만 성공적인 신제품 개발로는 잘 연결하지 못한다. 관리자형 경영자는 신기술·신제품 개발로 미래 신시장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존 시장을 지키는 데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이 R&D 비용은 늘어나는데 성과는 나지 않는 연구개발 패러독스 신드롬이다.
 
둘째, 사람 경쟁력이 아니라 장비 경쟁력에 생산을 의존한다. 직원은 비용요소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서는 상시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 셋째, 저가 영업만 있지 개별 고객별 맞춤형 밀착 영업은 기대하기 어렵다. 주인의식을 갖춘 사원이 꿈을 가지고 설득하고, 미래 고객을 찾아다니는 노력을 기대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저가 영업만 하고 거래단절률이 높아 영업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넷째, 마케팅-생산-연구개발 부서 간 갈등이 심하고, 환경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종업원은 나그네고 조직의 발전이 나의 발전이라는 미래 의식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늘 갑질을 한다는 비난과 소문으로 조직이 흔들리고 직원의 업무 몰입도는 낮아져 기업생산성이 떨어진다.
 
한국 기업은 현재를 지키고 위험을 회피하는 관리형 경영에 빠져 있다. 위험관리를 중시하고 생산·인사·재무·마케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기업 관리자를 키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가형 인재를 키우는 데는 실패했다. 최근 급성장하는 아세안 시장에 일본과 중국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아직 머뭇머뭇하고 있다. 아세안 시장에 새로 도전하기보다는 잘되고 있던 중국 시장 관리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드 체계 배치 이후의 중국 리스크를 자초했다. 선제적으로 도전하고 혁신하는 데 초점을 두는 ‘기업가형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전 세계중소기업학회장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