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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에 필요한 스마트 행정

중앙선데이 2017.10.15 01:27 553호 19면 지면보기
새 정부에 바란다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강일구 ilgook@hanmail.net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개인의 필요가 우선 충족돼야 타인에 대한 배려·기부·자선을 행하기가 쉬워진다는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안전, 정서적인 지지와 더불어 경제적인 필요가 충족 되어야 한다. 이중 경제적 필요가 충족되지 못하면 가족 간 불화, 가정폭력, 질병 등 다양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가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이혼한 부부들 중 경제적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약 10%에 이른다. 가정 불화와 폭력까지 광의의 경제 문제로 간주한다면 전체 이혼의 약 21%를 차지한다.

정부 개입은 쉬워도 철수 어려워
반드시 필요한지 재삼 고민해야
민간에 보조금 지급하는 방식도
공공 서비스 확대로 전환할 필요

 
복지 위한 세금 늘리기 더 어려워져
최근 몇 년째 한국은 경제성장률 하락, 청년실업률 상승, 식료품 등 생활물가 상승, 실질임금의 정체 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평균적인 한국인들의 경제적인 여유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으며, 향후에도 크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속담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공익으로 통칭되는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실업자·환자들에 대한 복지 확충이라는 공익을 위해 본인의 세금 부담이 증가하는 것을 고성장기에 비해 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경제 둔화로 인한 빈곤 문제, 고령화에 따른 노인부양 등 재정 지출이 요구되는 사회적인 니즈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정부의 현명한 정책 수립과 집행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까지는 정책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비용편익분석을 하거나, 집행상의 합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점검과 감사 등의 조치면 충분했다. 이에 더해 현재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 논점을 추가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첫째, 정책의 불가역성을 생각해서 엄밀한 중장기적인 정책 효과 분석이 필요하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서 개입하면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생겨난다.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정책자금을 조성하면서, 이를 딸 수 있도록 중개하는 브로커들이 등장한다. 노인 간병 사업을 확대하면서, 민간 노인요양병원들이 대거 등장했다. 정부 보조로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사립 유치원 및 어린이집 시장이 커졌다.
 
이러한 이해관계자가 일단 발생하면 변화의 필요성이 생기더라도 혜택을 축소하는 등의 조치는 시행하기 어렵다. 또 ‘포획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해관계자들이 거꾸로 국회와 정부에 압력을 행사해 특정 방향으로 정책을 유도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고려해 재정지출이나 정부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선의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보상도 필요
둘째, 정책의 타당성뿐만 아니라, 정책을 어떻게 최종 수요자에게 전달시킬지의 정책 전달 과정도 엄밀한 분석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보조하는 여러 서비스들은 많은 경우 우선 이미 존재하는 민간 단체의 신규 진입을 유도하는 식으로 시작된다. 다음으로 서비스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정부 보조금의 형태로 지급함으로써 최종 수요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 준다. 이후 서비스 제공자들에 대해 위생 등을 감독하는 식으로 관리한다.
 
이런 방식은 정부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서비스 공급을 늘리는 데 적합하다. 한국전쟁 이후 의무교육제 시행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교육 수요에 대해 한정된 정부예산으로는 초등학교 설립에 집중하되, 중고등학교 및 대학에 대해서는 민간 단체(즉 사립학교)에 공급을 의존해온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 결과 현재 사립학교의 비중은 학생수를 기준으로 초등학교는 1%에 불과한 반면, 중학교 17%, 고등학교 42%, 대학교 77% 이른다. 한국이 국내총생산(GDP)이나 교역규모 면에서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된 이 시점에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이 같은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최선인지 다시 검토가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한정된 예산 자원으로 최종 소비자들이 적정한 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시장의 자정능력이 발동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국공립 기관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보육과 노인 요양 서비스도 이용자들은 대부분 서비스의 질이나 가격의 측면에서 국공립 기관을 선호한다. 만약 국공립 기관의 비중이 충분히 높다면 국공립 기관과 민간 기관 간의 서비스 경쟁이 벌어지고,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기준 미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시장에서 퇴출됐을 수 있다.
 
또 민간 기관 간에 적정한 수준의 서비스 및 가격 경쟁이 일어날 수 있도록 설립요건 등을 완화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시장의 자정능력이 발동되지 않는다면, 적정수준의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행정 비용이 소요되는 감시감독이 필요하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하면 감시감독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장의 자정능력이 발동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익과 사익의 조화를 위해 손해를 보는 개인에 대해 어떻게 적정한 보상을 제공할지 검토가 필요하다.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장애인학교 설립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도 지역 이기주의로만 단순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장애인학교 설립으로 평균적으로 재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집값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주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에, 과연 이런 가능성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데이터에 입각한 분석이 필요하다.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인 임대주택 문제와 관련해 최근 필자가 아파트 단지들의 실거래 가격을 분석했다. 그 결과 보금자리주택 지구로 지정되면 인근 단지들에 비해 주택가격이 약 5% 낮아졌다. 만약 이러한 효과가 장애인학교 관련해서도 나타난다면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거나, 아파트 가격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주민 복지시설 설립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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