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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극우 돌풍..나치추종 정당 내각 참여 초읽기

중앙일보 2017.10.12 06:01
제바스티안 쿠르츠(오른쪽) 오스트리아 국민당 대표와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자유당 대표가 10일(현지시간) TV토론에 앞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들은 총선 이후 연정을 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제바스티안 쿠르츠(오른쪽) 오스트리아 국민당 대표와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자유당 대표가 10일(현지시간) TV토론에 앞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들은 총선 이후 연정을 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독일 총선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의회에 입성한 데 이어 이웃 나라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전후 유럽에서 처음으로 극우 정당이 정부 구성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독일 중도 좌·우파 주류 정당의 지지율이 하락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에서도 기존 양대 정당이 극우 정당의 어젠더를 따라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오는 1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총선을 앞두고 현지 일간 쿠리에가 지난 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중도우파 국민당이 지지율 33%로 1위를 기록했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27%, 극우 자유당이 25%로 2위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대연정으로 집권해온 양대 정당 분열해 조기 총선 실시
나치 부역자들이 만든 극우 자유당 지지율 2위 경쟁 중
인구 대비 많은 난민 유입에 장기 경기 침체로 극우 인기

31세 수려한 외모 국민당 대표, 반 난민 정책 적극 수용
총선후 극우와 연정 시 네오 나치주의자들 내각 참여할 듯

지난해 대선서 양대 정당 부진 속 무소속 후보가 극우 저지
"사민, 국민 두 기성정당 대선 승리 비결도 연구 안해" 비판

 오스트리아에선 1당을 번갈아 차지해온 사민당과 국민당이 대연정을 통해 정부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지난 5월 양 당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연정을 깨고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사민당 대표인 크리스티안 케른 총리는 올해 31살인 제바스티안 쿠르츠를 외무장관으로 발탁했다. 그는 지난 5월 국민당 대표로 취임했는데, 곤두박질하던 국민당의 지지율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오스트리아 중도우파 국민당의 제바스티안 쿠르츠 대표. 31세인 그는 강경한 반 난민 정책으로 당 지지율을 1위로 끌어올렸다. [AFP=연합뉴스]

오스트리아 중도우파 국민당의 제바스티안 쿠르츠 대표. 31세인 그는 강경한 반 난민 정책으로 당 지지율을 1위로 끌어올렸다. [AFP=연합뉴스]

 젊은 나이와 준수한 외모로 주목받는 쿠르츠는 22살이던 2009년 당 청년위원장을 맡으며 일찌감치 차기 리더로 주목받았다. 그는 전직 장대높이뛰기 선수를 총선 후보로 발탁하는 등 파격적인 공천 전략을 써 ‘오스트리아의 마크롱'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쿠르츠는 국민당의 정책을 반 난민에 초점을 맞추며 우클릭으로 몰아갔다. 외무장관으로서 강경한 난민 정책을 주도했고,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 복장 착용 금지도 그가 발의해 시행된 법안이다. 극우 자유당의 정책을 따라 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1당을 차지했던 사민당은 케른 총리의 참모 출신 인사가 ‘쿠르츠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가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것이 드러나 스캔들에 휩싸였다. 쿠르츠가 국경을 열고 난민을 받아들이려 하고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조지 소로스와 협력 관계에 있다는 등의 내용을 실었다.
오스트리아 중도좌파 사민당 대표인 케른 총리 [AFP=연합뉴스]

오스트리아 중도좌파 사민당 대표인 케른 총리 [AFP=연합뉴스]

 이 파문으로 사민당과 국민당은 총선 이후 대연정을 하지 못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 최근 TV 토론에서도 사민당 케른 총리와 국민당 쿠르츠 대표는 극우와의 차별점은 내세우지 못한 채 서로에 대한 증오만 드러냈다.
 그러는 사이 자유당은 점점 더 우편향으로 흐르고 있다.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자유당 대표는 이민 정책에 적대적인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과 함께 오스트리아가 반 난민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오스트리아 우선주의' 가치를 내건 채 유럽연합(EU)이 할당한 난민의 수용을 거부하는 나라들과 같은 대열에 서겠다는 주장이다.
 독일의 AfD가 2013년 창당한 신생 정당인데 비해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1956년 나치 부역자들이 설립한 정당으로 60년 이상 존속해왔다. 오스트리아는 나치에 협력해 유대인 학살에 적극 나섰지만 전후 국제사회에 피해 국가라고 역설했다. 그 결과 독일과 달리 나치 전범자들을 강하게 처벌하지 않았고 정치 활동도 자유롭게 허용됐다. 가디언은 "자유당의 극우 전선은 유럽 다른 국가의 신생 극우 정당으로 수출됐다"고 보도했다.
 자유당은 1990년대 중반 세계화로 중산층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기존 양당 정치체제에 불만을 품은 이들을 대변하겠다면서 ‘보통사람과 중산층의 보호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99년 총선에선 26%를 얻어 원내 2당이 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대선 1차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노르베르트 호퍼 자유당 후보. 유럽의 첫 극우정당 소속 대통령이 될 뻔 했으나 무소속 후보가 지난해 12월 결선투표에서 신승해 간신히 그의 당선을 저지했다. [AFP]

오스트리아 대선 1차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노르베르트 호퍼 자유당 후보. 유럽의 첫 극우정당 소속 대통령이 될 뻔 했으나 무소속 후보가 지난해 12월 결선투표에서 신승해 간신히 그의 당선을 저지했다. [AFP]

 이후 지지율이 하락하던 자유당은 2015년 오스트리아에 인구 대비 많은 난민이 들어오자 기회를 잡았다. 오스트리아는 2015년 9만명 가량의 난민을 받아들였는데 인구 대비로 치면 독일 다음으로 유럽에서 많은 규모였다.
 장기 경기 침체는 자유당의 약진에 밑거름이었다. 2008년 이후 오스트리아 국민의 순수입은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저임금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한 노동자 층이 자유당에 표를 몰아줬다. 자유당은 “사민당과 국민당의 오판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오스트리아인이 소수가 돼선 안된다”고 민심을 자극했다. 최근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는 현재 870만명인 인구의 8%정도가 무슬림인데, 2046년이면 12~21%로 높아질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사민당과 자유당이 대연정을 하지 않을 전망이어서 자유당이 연정 구성의 열쇠를 쥐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집권 연정에 참여하면 나치 옹호주의자인 당 핵심 관계자들이 내각에도 참여하게 되는데, 전후 유럽 국가에선 처음 있는 일이 된다.
지난 8일(현지시간) 열린 TV 토론에 참석한 크리스티안 케른 오스트리아 총리 겸 사민당 대표(좌)와 제바스티안 쿠르츠 외무장관 겸 국민당 대표. 대연정을 하다 결별한 이들은 거친 비난을 주고 받았다. [EPA=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열린 TV 토론에 참석한 크리스티안 케른 오스트리아 총리 겸 사민당 대표(좌)와 제바스티안 쿠르츠 외무장관 겸 국민당 대표. 대연정을 하다 결별한 이들은 거친 비난을 주고 받았다. [EPA=연합뉴스]

 지난 2000년 총선 때 국민당이 자유당과 우파 연정을 꾸렸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연일 반대 집회가 벌어졌고, EU와 이스라엘 등이 경제 제재에 나섰다. 당시 연정 파동은 자유당 당수로 나치 찬양 때문에 논란이 된 외르크 하이더가 사퇴하면서 진정됐고, 3년 만에 총선이 조기 실시됐었다.
 자유당은 지난해 12월 실시된 대선에서도 결선 투표에 후보를 진출시키는 등 영향력을 키워왔다. 대선에선 양대 정당 후보가 1차 투표 때 자유당 후보에게 큰 차이로 밀리면서 결선 투표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럽에서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극우 정당 대통령이 배출될 위기에 빠졌으나 무소속으로 출마한 전 녹색당 당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이 신승을 거두면서 그나마 저지됐다. 극우의 당선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표를 몰아준 결과였다.
 영국 가디언은 “오스트리아 정계를 주도해온 사민당과 국민당은 녹색당 출신이 대선에서 과반을 획득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연구하지 않고 포퓰리즘에 영합해 극우 정책을 흉내내기에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오스트리아 총선 결과는 프랑스와 독일 등에 이어 유럽의 정치 향배에 또다른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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