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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인간 중심” “사람 중심” … 창조경제와 너무 비슷한 혁신 성장

중앙일보 2017.10.12 02:34 종합 5면 지면보기
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 중심의 경제’와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네 차례 언급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이날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을 골자로 한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4차산업혁명위가 내놓은 비전
박근혜 정부 정책 기조 보는 듯
“미래 변화 선제 대응”도 담론 그쳐
미 잡스법처럼 구체적 대책 제시를

그런데 여기에 담긴 내용은 지난해 12월 27일 박근혜 정부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 부처들이 공동으로 펴낸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발표된 55쪽짜리 문서는 4차 산업혁명에 본격 대응하기 위해 ‘인간 중심 지능정보 사회 실현’을 국가 비전으로 정의했다. ‘전 산업의 지능화 혁신’(4차산업혁명위원회)과 ‘전 산업의 지능정보화 촉진’(박근혜 정부)같이 비슷한 뜻인데 표현만 다른 정도인 내용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내용이 겹치는 것만 가지고 문제로 삼을 순 없다. 그러나 9개월 전 이전 정부가 이미 정의한 개념들과 정책 추진 방향을 새 정부의 ‘혁신 성장 정책’의 골자라고 발표하니 산업 현장에선 실망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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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의 또 다른 한 축은 기대했던 4차산업혁명위원회다. 출범 전 위원회에는 국무위원 15명이 참여한다더니 결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 4명과 대통령비서실의 과학기술 관련 보좌관까지 5명만 합류했다. 새 정부의 혁신 성장을 견인하는 컨트롤타워를 자처하지만 위원회 회의는 분기에 한 번, 1년에 네 번 열린다.
 
위원회가 발표한 ▶산업·서비스 지능화 혁신 ▶미래사회 변화 선제 대응 ▶4차 산업혁명 기술기반 강화라는 목표도 지나치게 거대 담론 중심이어서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위원회가 비록 정부 주도로 탄생했지만 구성원 26명 중 21명이 대기업·IT기업·학계 등에서 활동해 온 이들이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위원회가 민간의 목소리를 대변할 목적이라면 거대 담론보다는 정말 혁파해야 하는 규제와 제도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기업공개(IPO) 절차를 간소화하고 크라우드펀딩을 허용하는 내용의 창업기업지원법, 일명 ‘잡스법(JOBS Act·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 Act)’은 기업인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스티브 케이스 AOL 창업자 등 25명 안팎의 기업인·학자들로 구성된 ‘혁신과 기업 국가자문위원회(NACIE)’가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녹색성장·창조경제처럼 정권에만 한정된 조직, 캐치프레이즈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NACIE처럼 구체적인 목표와 과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동엽 경영학 연세대 교수는 “그간 기업을 경영하고 경제 가치를 창출해 온 방식으로는 4차 산업혁명에 절대 대비할 수 없다”며 “기업들이 체질 개선을 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바꿀 수 있도록 위원회가 각종 규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정책 허점을 조목조목 짚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위원회가 성과를 내고 싶다면 조직 형태에 얽매이지 말고 관련 전문가들을 모두 집결할 수 있는 전진기지를 자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규제 위주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혁신 성장’을 내세운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거는 각계의 기대가 크다.
 
그러나 위원회가 ‘창조경제’가 ‘혁신성장’으로 간판만 바꿔 달았다는 지적을 받고 싶지 않다면 좀 더 명확한 목표와 과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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