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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박정희, 김일성 눌렀다 … ‘마법의 북핵’으로 남북 경쟁 재개

중앙일보 2017.10.12 01:00 종합 26면 지면보기
절대 무기의 기습적 파장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다가온다. 그 삶은 격렬한 서사다. 여러 상념을 낳는다. 그의 딸의 비극적 처지는 두드러진다. 북한의 핵 도발은 그의 시대를 떠올린다. 1970년대 주한미군은 철수하려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그것은 자주국방 결단의 정점이었다. 미국은 제동을 걸었다. 그의 야망은 좌절했다.

박정희의 핵 개발 좌절 후
김일성의 손자, 핵 무장 성취로
끝나 가던 체제 경쟁 혼미
역대 정부, 북핵 집념 못 꺾어

안보 의지 결핍이 재대결 허용
탈원전, 우월한 경쟁력 잃어
잠재적 핵 무장력 확보해야
남북한 공존과 상생이 가능

문재인 대 김정은, 최후의 결전
국민적 지혜·투지 결집해야

 
박정희와 김일성의 대결은 치열했다. 박정희의 산업화는 국가적 가난을 몰아냈다. 북한의 자력갱생 경제는 추락했다. 그 시절 유신 독재의 고통과 어두움이 있었다. 하지만 남북한의 체제 경쟁은 박정희의 압승이었다. 1979년 10·26,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38년 뒤 김정은의 북한은 핵무장국으로 등장했다. 김일성 주석의 33세 손자가 이룬 성취다.
 
남북한의 경제·문화력 차이는 엄청나다. 한국이 압도적 우위다(GDP 북한의 45배). 한국은 자유와 풍요다. 역사의 정통성도 장악했다. 남북 대치는 파란이다. 그 곡절의 드라마가 끝나가는 듯했다. 한국 주도의 흡수통일론은 대세인 듯했다. 하지만 그 풍경은 성급한 축배였다. 2017년 북한의 반격은 거대하고 절묘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그리고 6차 핵실험의 성공(9월 3일). 그 무력시위로 남북한 판세가 단숨에 혼미해졌다.
 
남북한 체제 경쟁의 시즌2

남북한 체제 경쟁의 시즌2

핵무기는 ‘신(神)의 한 수’다. 그 괴력이 남북 우열과 격차를 헝클었다. 북한의 협박은 험악하다. “남조선이 쑥대밭 될 수 있다.” 그 장면들은 마법의 절대 무기가 이룬 기막힌 반전(反轉)이다. 그것은 남북한 판도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의 진단은 실감 난다. “국력은 경제력과 군사력, 정치·사회적 단결력을 합친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과 한국 사회 분열이 기습하듯 남북 경쟁의 재개를 허용했다.”
 
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가. 눈 뜨고 당한 것이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제2의 남북 경쟁이 시작됐고 우리는 전략적 불리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 속엔 오판과 무능, 게으름과 비겁함이 섞여 있다. 그 세월은 길었다. 91년은 한반도 정세의 전환기다. 미군 전술핵무기의 철수, 한반도 비핵화 선언(노태우 대통령)이 있었다. 그것으로 한국은 핵무기와 결별했다. 거기엔 비핵화 모범에 북한도 따를 것이란 기대가 깔렸다.
 
그 무렵 소련의 붕괴, 한·중 외교관계 수립이 있었다. 평양 지도부는 위기에 몰렸다. 그들의 탈출구 모색은 치열했다. 절실하면 길이 열린다. 그들은 문득 핵의 마력을 깨달았다. “핵무기는 마법, 판을 뒤집는 신의 한 수다.” 그들은 거기에 역량과 집념을 쏟았다. 그 후 26년간 평양의 핵 보유 의지는 선명하면서 은밀했다.
 
북한 외교는 영악하다. 기습과 예측 불가능, 속임수와 벼랑 끝 전술을 번갈아 묶는다. 그 술책에 미국은 당했다. 제네바 협상의 미국 대표 로버트 갈루치의 고백은 충격이다(2014년). “1994년 핵 동결 합의 당시 우리는 북한에 대해 몰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 관계자들의 무지(無知)는 치명적 부담이다. 크리스토퍼 힐(국무부 차관보)과 김계관(외무성 부상)의 협상이 2006년부터 있었다. 힐은 유력한 협상가였다. 하지만 김계관의 노련미에 참패했다. 그로 인해 금융제재가 어이없이 풀렸다.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 계좌에 김정일의 통치자금이 숨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책은 씁쓸하다. “북한과의 합의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훼손돼 미국 협상가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북한 이미지는 왕따, 깡패, 인권 유린이다. 오명과 비웃음 속에서 그들은 신의 한 수에 매진했다. 2014년 핵 개발 책임자 전병호(군수비서)가 숨졌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렀다. 북한 TV는 이렇게 소개했다. “조국을 인공 지구위성 제작·발사국, 핵보유국으로 전변시키는 데 특출한 공헌을 하였다.” 전변(轉變)은 과학 우대정책의 산물이다. 그것은 지금의 한국 풍토와 대비된다. 탈(脫)원전은 원자력 과학자들의 울분과 낙담을 낳았다. 원전 수출은 한국 과학자들의 기술 승리다.
 
북한의 성취는 한국의 좌절이다. 햇볕과 포용, 압박과 견제.- 진보·보수정권 모두 북핵을 막지 못했다. 투지도 전략적 감수성도 부족했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은 화해의 상징이다. 노무현 정권은 흐름을 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핵 야욕은 확장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북한의 붕괴 가능성이 퍼졌다.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이명박), ‘통일은 대박’(박근혜)은 사치스러운 기세였다. 안일과 자만이 얽힌 26년. 그것이 오늘 북한의 반격을 허용했다.
 
국의 낭패는 무엇 때문인가. 근본 요인은 안보의 주인의식 결핍이다. 한국은 주한미국에 의존한다. 오랜 혜택은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그것은 미국 핵우산에 기대기와 강 건너 불구경이다. 그 심리는 스스로를 변방의 종속변수로 설정한다. 안보 불감증은 뿌리 깊다. 구경꾼 심리가 득세한다. 북핵 위기는 오래됐다. 그때마다 대응과 분석은 치밀하지 못했다. 한국의 국방비(약 395억 달러)는 북한의 5배다(한반도선진화재단 보고서). 하지만 위기 대처능력은 허술했다. 국방 주역 자세의 부족 탓이다. 핵·미사일의 개발 초기는 체제 방어용이다. 하지만 핵은 자체 번식한다. ICBM 단계에선 악성 진화한다. 김정은의 핵은 공포의 공격 장비다. 정권 생존의 자위(自衛)용이라는 인식은 파산했다. 북한은 “우리의 핵 억제력은 조국 통일의 위업을 앞당기는 만능의 보검”이라고 한다. 적화통일의 파괴적 도구가 됐다.
 
‘남북 체제 경쟁의 시즌 2’는 잔인한 현실이다. 무대의 주연은 문재인과 김정은. 방책의 기본은 안보 의지의 배양이다. 1960년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이런 말로 핵무장에 나섰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쥐어야 한다. 자주국방 의지 부족은 동맹을 약화시킨다.” 한·미 동맹은 남북 다툼에서 주요 자산이다. 동맹은 주고받기다. 그렇지 않으면 무임승차의 의심을 받는다. 북핵 대응의 주인정신은 체제경쟁의 절대조건이다. 그 의식의 빈곤은 미·중의 빅딜론을 부른다. 거래는 김정은 정권 제거와 주한미군 철수다.
 
문 대통령은 “전시작전권을 가져야 북한이 우리를 더 두려워할 것”이라고 했다. 전작권 환수는 배수진이다. 그래야 남북 대결의 투혼과 용기가 생산된다. 안보불감증도 퇴출된다. 그 발언은 파격이고 적절하다. 과정은 정교해야 한다. 한·미 동맹이 흔들려선 안 된다. 박정희의 자주국방은 배수진이었다. 그 승부수는 공세적 상상력을 주입했다. 안보와 중화학공업이 연결됐다. 그것은 경제 비약과 환골탈태의 계기였다. ‘싸우면서 일하자’ 세대의 쾌거다. 공세적 상상력은 응전의 지평을 넓힌다. 그런 대처 자세가 재생돼야 한다. 그것이 남북 대치 무대의 와일드카드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 독점시대다. 전성훈 박사(아산정책연구원)의 지적은 명쾌하다. “적대국 사이에 어느 한쪽의 핵 보유를 일방적으로 허용한 사례는 한반도가 유일무이하다.” 핵무장의 잠재력 확보는 남북 체제 다툼의 필수요소다. 북한은 핵무기 없는 한국을 얕잡아 본다. 통미봉남(通美封南)의 빌미가 된다. 핵무장의 길은 여러 단계다. 검토·의사 표명·기술 동원·실제 보유로 나뉜다. 검토 자체가 효과적인 억제수단이다. 한국의 전술핵 접근에 중국은 민감하다. 그것으로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지렛대가 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반드시 핵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다짐의 우선적 해법은 협상평화론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불안한 실험이다. 핵의 세상은 단순하다. 핵무기로 맞서는 공포의 균형, 아니면 현상 인정의 비굴한 순응이다. 제3의 회색빛 선택은 성립하지 않는다. 시간은 북한 편으로 기울고 있다. 핵 보유자의 속성이 있다. 상대를 인질로 삼기다. 핵은 정글의 야수 속성을 갖고 있다. 핵 없는 웰빙의 남한 사회는 먹잇감이다. 한국 사회는 만성 불안감에 시달릴 것이다. 안보 불확실성은 경제 침체로 전이된다. 핵의 공간은 역설이다. 공포의 균형이 남북 공존과 상생을 보장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역설에 익숙해야 한다. 그래야 핵 위기의 결정적인 돌파구를 찾는다.
 
너지는 남북 대결의 주요 요소다. 북한의 에너지·전력난은 극심하다. 탈원전은 한국의 우월한 경쟁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핵무장의 잠재력도 상실된다. 탈원전 정책은 재검토·수정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은 고난도 기술이다. 핵폭탄 만들기가 훨씬 쉽다. 북한은 원전을 지을 능력이 없다. 원자력계 대부 장인순 박사는 비감과 경계를 토로한다. “탈원전을 하면 북한이 좋아하고, 다음은 중국일 것이다.” 핵무장은 기술 문제가 아니다. 리더십 의지와 결단의 영역이다.
 
트럼프의 모호한 언어는 긴장감을 높인다. ‘폭풍 전 고요, 오직 한 가지.’ 그것은 군사 옵션의 고민을 반영한다. 북한에 대한 선제·예방타격은 힘들다. 북한의 행태는 기습이다. 미국과의 협상 제의도 허를 찌를 것이다. 그 무렵 남한 사회에서 ‘우리 민족 끼리’ 외침은 커질 것이다. 이념 갈등도 깊어진다. 문재인 정부의 통합의 정치가 절실해진다.
 
남북한 경쟁의 최후 승부는 이렇게 전개되고 있다. 승패는 경제·문화력만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신복룡 전 건국대 교수는 “중국 송나라는 경제·문화 대국이었다. 하지만 안보 의지의 빈곤에다 문약(文弱)이 사회에 스며들면서 군사국가 거란·여진·몽골에 차례로 뜯기고 망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경쟁의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 역사 전개에 국민과 동행은 필수다. 북한 핵무장의 위협적인 실상을 알려야 한다. 상황 공유는 국민적 지혜와 투지를 결집시킨다. 그것이 남북 체제 경쟁을 압도하는 발판이다. 
 
박보균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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