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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듯 다른 김정일ㆍ김정은의 ‘남매 정치’

중앙일보 2017.10.11 15:48
북한은 지난 7일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를 열어 60명의 인사를 실시했다. 노동당 부서장을 비롯해 정책결정 기구인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후보위원은 투표권 없이 발언권만 보유),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이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28)이다. 이번 회의에서 김여정은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 기구인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다.

김정일, 김정은 힘들때마다 의지할 곳은 여동생
김경희는 암행어사 등 감찰 업무 수행하다 오빠 아프자 내조형으로
김여정은 대놓고 오빠 이미지 메이킹, 북한 양대축 하나인 선전선동부 꿰차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왼쪽)이 지난 4월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 도중 김정은 옆에서 커다란 앨범형 책자를 펼쳐 놓으며 오빠(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를 챙기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왼쪽)이 지난 4월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 도중 김정은 옆에서 커다란 앨범형 책자를 펼쳐 놓으며 오빠(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를 챙기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지난 2014년 한국의 대학 졸업 직후의 나이와 비슷한 만 25세에 당 부부장(선전선동부)에 들어간 지 3년 만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 시대에 가장 수직상승한 인물이 김여정”고 말했다. 김정은이 이번 회의에서 빨치산인 최현의 아들 최용해에게 조직지도부장을 맡긴 것으로 정부 당국이 추정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 체제의 양대 축인 조직지도부는 빨치산에게, 다른 한 축은 김여정에게 맡긴 셈이다. 김여정은 북한에서 1호 행사로 불리는 김정은의 참석 행사를 주관하고 챙기는 책임자로 정부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2011년 사망한 김정일은 아들에게 권좌를 물려줬지만 생전 중앙당 고위간부에 친인척 기용을 꺼려 왔다고 한다. 김평일 등 이복동생들을 해외로 내보낸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정일도 여동생인 김경희 부부만큼은 예외였다. 믿고 의지할 구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정일이나 김정은 모두 ‘남매정치’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①기댈 언덕은 피붙이= 2013년 12월 남편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처형이후 김경희의 활동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김경희는 평소에 심장질환을 앓아 외동딸 장금송 이외 아이를 출산하지 못했다. 장금송은 29세이던 2006년 8월 프랑스에서 자살했다. 김경희는 그래서 장성택 처형 후유증 등으로 인한 건강악화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6.25 당시 피난중이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여동생 김경희. [중앙포토]

6.25 당시 피난중이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여동생 김경희. [중앙포토]

김정일과 4살 터울인 김경희는 1960년대 말 모스크바 유학 후 당 국제부 부부장을 거쳐 경공업부장을 맡으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보좌했지만 그의 모습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오빠(김정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땐 여지없이 나타났다. 2008년 여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성치 않은 몸이 되자 현지지도에 동행하며 챙겼다.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과 기념사진 촬영 이후 6년만인 2009년 6월 김정일의 동봉협동농장 현지지도 때 오빠 손을 잡고 사진을 찍으며 본격적인 공개활동에 나섰다. 통일부가 파악하고 있는 김경희의 공개활동 92회중 90회가 2009년 이후다. 2010년 9월엔 인민군 대장 직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성치 않은 몸으로 지방 현지지도를 다니자 여동생 김경희(왼쪽 둘째) 당 부장이 동행하며 챙겼다. 2009년 6월 6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김경희. [사진 노동신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성치 않은 몸으로 지방 현지지도를 다니자 여동생 김경희(왼쪽 둘째) 당 부장이 동행하며 챙겼다. 2009년 6월 6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김경희. [사진 노동신문]

김경희는 오빠가 왕성한 활동을 할 때에도 '든든한 우군'이었다. 1997~98년 북한이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시절 암행어사를 자처하며 지방 당 위원장의 사무실과 사택을 ‘급습’하며 부정부패를 캐냈다. 이 과정에서 연형묵 당시 자강도당 책임비서(도 책임자)가 가장 검소하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부하 직원들을 독려했던 것으로 파악돼 이후 국방위 부위원장까지 올랐다. 또 2009년에는 북한이 화폐개혁의 부작용으로 혼란을 겪을 때 나서 박남기 당 재정경리부장을 처형하며 수습하기도 했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은 “김경희는 조용히 있다가도 오빠가 힘들어할 땐 항상 지원군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혁혁한 역할을 했다”며 “김정일 사망으로 갑자기 최고지도자가 된 오빠를 옆에서 챙기고 있는 김여정과 닮은꼴”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받은 꽃다발을 김여정이 챙기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받은 꽃다발을 김여정이 챙기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②같은 듯 다른 남매정치= 통일부 인명록에 따르면 김경희는 76년, 30세의 나이에 국제부 부부장에 올랐다. 당시 당 부부장을 40~50대에서 맡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후광이 작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앙위 위원과 국회의원 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각각 42세, 44세에 됐다. 특히 당 정책을 결정하는 당 정치국 위원은 김정일이 쓰러진 뒤인 2010년 64세가 돼서야 들어갔다. 25세에 부부장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27세에 중앙위 위원, 28세에 정치국 후보위원이 된 김여정과 큰 차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체제연구실장은 “김정일 사망으로 27세의 나이에 오빠가 권력을 잡자 자연히 가장 믿는 김여정도 실무경험 없이 곧바로 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희가 암행지도처럼 드러나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면, 김여정은 북한 관영 언론 등에 드러내놓고 모습을 보인다.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 때 참석자들의 자리를 안내하거나, 이틀 전인 13일 여명거리 준공식에서 김정은이 받은 꽃다발을 받다 챙기는 모습도 여과 없이 보여줬다. 고모인 김경희가 조용히, 실무적인 부분을 챙겼다면 김여정은 공개적으로, 그것도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활동한다는 점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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