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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만난 성소수자 ③

중앙일보 2017.10.11 09:35
 by 안호경⋅연제은⋅오수연
 
고등학생 성소수자 인터뷰 기사의 마지막 주인공은 고등학교 2학년인 한정현(가명)학생이다. 그는 스스로를 “그레이로맨틱 팬섹슈얼로 정체화한 청소년 퀴어(성소수자)”라고 말했다. 성별을 불문하고 상대방에게 감정적인 끌림을 거의 느끼지 않고, 느끼더라도 미적 끌림이나 공동체적 끌림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성적 끌림은 성별과 무관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앞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일단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체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8월 19일 만난 한정현 학생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시리즈 기사]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만난 성소수자 ① (http://tong.joins.com/archives/47682)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만난 성소수자 ② (http://tong.joins.com/archives/47989)  
 
 
-인터뷰를 자진한 이유를 말해주세요.
“에이 엄브렐라(어떠한 성별에도 정신적 사랑을 느끼지 않거나 육체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 지향성의 총체를 일컫는 용어)에 대해서 사람들 대부분이 모르는 것 같아요. 다른 퀴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시화되지 않아 이런 성정체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어요. 에이섹슈얼은 무조건 성욕이 없다거나 무기력할 거라는 편견이 제재도 없이 퍼져가고 있는 상황이예요. 반대로 연애를 하거나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무성애자가 아니라고 넘겨짚는 사람도 많아요. 에이 엄브렐라 안에는 저처럼 낭만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에이 로맨틱을 포함해 다양한 정체성이 있는데도 말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이런 사람도 존재한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어요. 내가 여기 있다. 더 이상 나의 존재를 지우지 말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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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0일, 아이돌 그룹 ‘탑독’의 멤버 한솔이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에이섹슈얼(누구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지향성)’이라고 커밍아웃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소수자로서 학교 내에서 느끼는 가장 불편하거나 불쾌한 점은 어떤 것인가요.
“이성애 중심적 발언들이 가장 힘들어요. 남학생과 여학생이 붙어 다니는 걸 보고 무조건 썸이나 연애라고 넘겨 짚는 일도 있고, 여학생을 무조건 미래 누군가의 아내로 대하는 선생님도 계세요. 그럴 때면 ‘나는 아마도 평생 그럴 일이 없을 텐데, 교실 안에서 나의 존재가 이렇게 지워지고 있나’ 하고 생각해요. 유성애 위주의 말들도 저에게는 힘들어요. 연애를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삶에 의욕이 없거나 삶을 제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교내뿐만 아니라 제가 속한 사회 전반에 만연한 거 같아요.”
 
-주변 청소년 성소수자들과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나요.
“일상적이라 이제는 무감각해졌지만, 다른(성소수자가 아닌) 친구들과 있을 때면 내가 그들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위기감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내가 여기서 나에 대해 전부 이야기한다면 그들 무리에 낄 수 없다는 불안감이 커요. 친구들이 남자친구 이야기를 물을 때면 드는 동떨어진 느낌이 저를 힘들게 할 때가 많고요. 퀴어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그런 점을 많이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과 있을 때 습관적으로 본인에 대해 검열하는 습관도 버릴 수 있어서 편해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현재 친한 친구들 중 대부분이 소수자이기도 하고요. 각자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되게 좋아해요. 퀴어라고 한들 퀴어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모르는 부분을 많이 배워가는 것 같아요.”  
 
-커밍아웃 경험에 대한 얘기를 해주신다면.
“퀴어라고 확신이 든 사람에게 커밍아웃한 경험은 많아요. 저랑 그 친구들은 서로 퀴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아는 때가 많기도 해서 커밍아웃이라는 개념도 잘 없어요. 본인이 퀴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한 일은 두 번밖에 없어요. 저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아직 찾아 나가고 있는 중이고, 또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터라 상대에게 이 부분을 이해시키는 것이 힘들어요. 내 발언이 인간 관계를 끝장 낼 거라는 불안감 속에 커밍아웃 할 자신이 더더욱 없는 것도 한 몫하죠. 이 때까지는 제가 완전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친구 둘에게 이야기했는데 한 번은 퀴어에 대한 의식이 하나도 없는 친구라 제 얘기를 들었을 때의 반응이 되게 흥미로웠어요. 아예 혐오적이지 않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평소에 동성애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어서 ‘신기한 존재’라고 말한 친구인데도 잘 받아들여줘서 좋았어요. 또 한 번은 제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이야기 했을 때 친구가 저에게 사실은 이렇게 고민하는 게 당연한 건데 이 나라에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아예 없다고 얘기를 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그 후에 그 친구와 한국 사회의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동안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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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엄브렐라로서 연애 경험 또는 연애관이 궁금해요.
“한 번 연애한 적이 있어요. 사실 낭만적 끌림을 느낀 건 아닌데, 한 번 정도 연애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 친구에겐 조금 미안하죠. 연애를 할 때도 데이트가 싫지는 않았어요. 다만 그 친구가 저에게 느꼈던 감정을 저는 못 느꼈어요. 그래서 오래 갈 수는 없었어요. 앞으로 제가 연애를 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어요. 한 번도 낭만적 끌림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아마도 미적으로 끌리거나 성적으로 끌릴 수 있는 상대와 하게 될 것 같기는 해요. 굳이 필요가 없다면 아마 아예 연애를 안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기사를 읽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본인을 먼저 돌아보셨으면 좋겠어요. 이 사회 안에서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는 현저히 적어요. 제가 퀴어라고 정체화한 후에 힘들었던 부분도 많았지만 정의될 수 없었던 나에 대해 표현할 말이 있다는 것에 대한 안정감이 분명히 있던 것 같아요. 혹시 스스로 당연하게 시스젠더 이성애자라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나를 찾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한 번쯤 고민해보는 일은 유의미하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기사를 접하신 분들은 지금부터라도 주변에 존재할 퀴어에 대해 배려하려고 노력해주셨음 좋겠어요. 본인의 말 한 마디에 상처받고 혼란을 겪을 사람이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씩 변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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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우지 마세요.”

 
한정현(가명) 학생이 직접 쓴, 가장 전하고 싶은 한 마디다. 인터뷰를 진행한 안호경 기자가 팻말처럼 들어보았다.
 
세 번의 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청소년들은 모두 고등학생이자 성소수자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 놓았다. 이들은 직접 밝힌 에피소드 외에도 수많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자신의 존재를 지우지 말라는 공통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이들은 모두 다양한 위치에서 존재하고 있었고, 또 각자 사회에 대항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기획은 3회의 인터뷰로 끝나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고군분투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또한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 기사가 우리 마음속의 편견을 허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본인의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해준 세 명의 성소수자 학생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글=안호경⋅연제은⋅오수연, 사진=오수연(일산 대진고 2)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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