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세상읽기] 바른정당, 교섭단체 반드시 지켜내라

중앙일보 2017.10.11 01:56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22년 전인 1995년 5월. JP(김종필)는 죽을 맛이었다. 딱 한 석만 더 확보하면 교섭단체(20석)가 되는데 박철언이 몽니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JP는 석 달 전 YS(김영삼) 정권의 ‘2선 후퇴’ 요구를 일축하고 민자당을 뛰쳐나와 자민련을 세웠지만, 의석 7석의 미니 정당에 불과했다. 백방으로 뛴 끝에 13석을 보유한 김복동의 신민당과 합당에 성공해 한숨 돌리는가 싶었다. 그런데 돌연 신민당 의원인 현경자(박철언 부인)가 태클을 걸었다. 남편의 사주를 받았는지 “자민련에 합류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경악한 JP는 온갖 채널을 동원한 끝에 박철언을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만난다. JP는 박의 마음을 사려고 사력을 다했다. 독대한 80분 내내 YS 욕만 늘어놓은 것이다. “YS와 동거한 2년 내내 수없이 배신당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 “정말 부도덕한 사람이다”···.
 

20석에서 1석이라도 줄면 정치적 존재감 상실, 소멸 뻔해
단 1석 늘리려 사력 다한 JP 배워야 … 유승민 리더십 기대

자신을 감옥에 보낸 불구대천의 원수 YS를 ‘인간쓰레기’로 만들어 버린 JP의 말발에 박철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JP는 한발 더 나갔다. 박철언의 숙원인 내각제를 추진하고, 그의 텃밭인 대구·경북(TK)엔 지방선거 공천을 포기해 박철언이 미는 후보의 당선을 돕겠다는 약속까지 해준 것이다. 흡족해진 박철언은 며칠 뒤 현경자와 함께 자민련에 입당한다.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한 JP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이듬해 총선에서 50석을 따내는 대박을 터뜨린다.
 
정치 9단 JP가 까마득한 정치 후배 박철언에게 입안의 혀처럼 굴며 갖은 공을 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교섭단체 아닌 정당은 정당이 아닌 탓이다. 19석과 20석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JP가 박철언을 만날 당시 자민련에선 “현경자 한 명 거취에 30억원이 걸렸다”는 말이 돌았다. 교섭단체가 되면 국고보조금이 그만큼 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 액수가 훨씬 더 커졌다. 돈뿐만 아니라 정치적 위상도 차원이 다르다. 교섭단체가 돼야 법안 교섭권이 주어지고 출입기자진도 생겨 제대로 된 정당 취급을 받는다. 반대로 교섭단체가 되지 못하면 끝이다. 2000년 총선에서 17석으로 추락한 자민련이 새천년민주당 의원 3명 꿔오기 같은 꼼수를 부렸음에도 얼마 가지 않아 소멸해버린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의석 20석의 바른정당이 교섭단체 붕괴 위기에 몰려 있다. 자유한국당과 합치자는 통합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에선 “이미 절반 넘는 11명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통합은 시간문제”란 얘기를 흘리고 있다. 바른정당 자강파 내에서도 “당을 끝까지 지킬 의원은 유승민과 이혜훈·하태경·김세연·지상욱 등 7~8명에 불과할 것”이란 우려가 공공연히 나돈다.
 
박근혜 탄핵에 앞장섰고 대선에서 한국당과 죽기 살기로 싸운 바른정당 사람들이 태도를 180도 바꿔, 단 한 명의 친박도 청산하지 못한 한국당에 복당하겠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개인적으로 힘든 사정이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안보벨트 경기 포천이 지역구인 김영우 의원은 한국당 복당을 요구하는 지역 어르신 주민의 성화에 밤잠을 못 이룬단다. 선거구 조정으로 텃밭인 강원 횡성을 잃은 황영철 의원도, 새로 편입된 철원과 양구에서 표밭을 다져온 한국당 라이벌의 기세에 가슴이 먹먹하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바른정당은 시·도 의원 후보를 내기조차 힘든 상황이 된다. 그러니 묻지마 식 통합이라도 해서 살길을 찾자는 게 통합파의 변명이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을 지키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정치인을 국민은 눈여겨본다. 정치의 기본은 가치다. 민심과 시대가 보수에게 요구하는 가치는 환골탈태 수준의 확실한 개혁이다. 바른정당의 탄생은 그런 수요에 부응한 자연 현상이다. 표를 노린 정치공학으로 이를 뒤집으려 한다면 파멸일 뿐이다. 눈앞의 떡이 달콤해 보인다고 한국당에 들어가 보라. 친박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당협위원장 자리 하나 얻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바른정당은 JP의 정치력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교섭단체 유지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라. 당장 한국당은 다음달로 예정된 바른정당 전당대회를 흔들기 위해 이달 중 한두 명이라도 바른정당 의원 탈당을 유도하려 들 것이다. 이를 막는 게 바른정당의 급선무다. 차기 대표가 유력시되는 유승민 의원의 노력이 중요하다. 약점으로 지적돼 온 스킨십 부족을 떨쳐내고 다른 의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라. “한국당이 개혁의 진정성을 보인다면 통합을 무조건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다. 바른정당이 교섭단체를 유지하면서 전당대회를 치러낼 수 있는지가 당의 생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미세먼지 실험 아이디어 공모, 이벤트만 참여해도 바나나맛 우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