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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차에 자녀 방치’ 괌 사건은 우리 자화상

중앙일보 2017.10.11 01:53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 호 내셔널부 기자

김 호 내셔널부 기자

미국령 괌에서 자동차 안에 어린 두 자녀(1, 6세)를 방치한 혐의로 체포됐다가 풀려난 한국인 판사·변호사 부부 사건은 국가적 망신이었다. 법조인 부부가 쇼핑하러 아이들만 차 안에 뒀다는 게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는 또한 미국 사회의 수준 높은 아동 보호의식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갈 길 먼 아동 보호 수준의 민낯을 드러냈다. 현행법상 한국에서는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는 행동이어서다.
 
미국의 경우 차량에 아이를 보호자 없이 방치만 해도 ‘범죄’로 간주한다. 미 50개 주 가운데 20여 개 주에 관련 처벌규정이 있다. 캘리포니아주법을 따르는 괌에서는 6세 미만 아동을 12세 이상 보호자 없이 15분 이상 차량에 방치할 경우 아이의 건강상태가 멀쩡하더라도 처벌한다. 차 안에 방치된 아이를 보고 도와주지 않아도 범법이다.
 
괌 경찰이 보호자 없이 자동차 안에 방치된 한국 아이들을 구하고 있다. [사진 괌 뉴스 캡처]

괌 경찰이 보호자 없이 자동차 안에 방치된 한국 아이들을 구하고 있다. [사진 괌 뉴스 캡처]

우리나라는 관대하다. 차 안에 아이를 남겨 둔 채 보호자만 일을 보러 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지만 않으면 잘못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뾰족한 처벌규정도 없다. 한여름 열사병 같은 신체적 위해가 생길 경우만 처벌하는데 이 역시 가벼운 범죄인 ‘과실’로 치부된다.
 
문제를 일으킨 판사의 소속 법원은 소명자료 등을 검토한 뒤 징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차량 내 아동 방치에 대한 마땅한 규정이 없어 고민 중이라고 한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에서는 유치원 직원이 당시 4세이던 최모(5)군을 7시간 동안 통학버스에 부주의로 방치해 의식을 잃게 했다. 1년 넘도록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치원 책임자 3명이 금고형의 처벌을 받았다. 이후에도 대구에서 3세 아이가 유치원 통학버스에 방치됐다가 1시간 만에 구조되는 등 판박이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판사의 소속 법원은 남편과 함께 각각 500달러의 벌금을 괌 법원에 낸 판사의 징계를 따지는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징계보다 중요한 건 차량에 아동을 방치한 행위를 범죄로 보는 인식 및 제도의 전환이다. 미취학 아동을 보호자 없이 차량에 방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정치권은 추진 중이다.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괌 사건을 계기로 어른의 부주의 탓에 차 안에서 불가항력적인 위험에 놓이는 아이가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
 
김 호 내셔널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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