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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빈곤의 원인에 대한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2017.10.10 02:21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유석 판사 『미스 함무라비』 저자

문유석 판사 『미스 함무라비』 저자

백인 빈곤층이 트럼프를 지지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는 이유로 유명해진 책이 있다. J D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다.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의 철강 도시에서 가난하게 자란 저자가 백인 빈곤층의 문화를 가차 없이 서술했다. 마약 중독과 일상적인 폭력, 붕괴된 가족, 롤 모델의 부재, 게으름, 낭비, 배타성, 남 탓하기. 밴스는 이 모든 것의 총체인 ‘학습된 무기력’이 가난을 대물림하게 만들고 있다고 증언한다. 밴스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건전한 가정과 종교, 노력과 성공의 가치를 일깨우는 롤 모델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군대에서 규율과 자기억제, 생활에 필요한 기본상식까지 거의 최초로 배웠다고도 토로한다.
 
딱 봐도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조건반사적으로 되뇌는 좌파 지식인들이 불편해 할 내용이다. 이런 책이 사회구조적 모순을 은폐하고 낡은 보수적 윤리의 중요성을 과장한다고 투덜댄다. 반대로 ‘거 봐라!’ 하며 환호하는 우파 지식인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복지정책에 기대 나태한 삶을 사는 ‘복지 여왕’에 대한 증오와 고학력 진보 엘리트에 대한 혐오가 빈곤 노동계층을 보수화시키고 있다는 증언 부분에만 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일상有感 10/10

일상有感 10/10

밴스는 양쪽 모두에게 진저리를 칠 것 같다. 그가 자기 가족의 치부까지 드러내며 절실하게 하고 싶었던 얘기는 좌우 어느 프레임에도 갇히지 않은 빈곤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전문 연구자가 보다 장기간 빈곤을 관찰하고 기록한 저작이 있다. 사회학자 조은이 1980년대 중반부터 25년간 사당동 재개발 지역 빈민 가정의 생활사를 연구한 『사당동 더하기 25』다. 조은이 관찰한 우리나라의 빈민들은 밴스가 속한 미국 빈민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지만 빈곤의 굴레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조은은 ‘빈곤 문화’란 없다고 일갈한다. 그것은 가난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실은 양쪽 모두에 있을 것이다.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 빈곤이 장기화되면 그 결과 학습된 무기력에 기반한 빈곤 문화가 발생하고, 이는 가난을 대물림하도록 고정시키고 강화한다. 밴스가 서술한 백인 빈곤층의 역사는 백 년도 넘은 것이다. 같은 길을 따라가지 않으려면 모든 도그마를 버리고 먼저 ‘있는 그대로 두 눈으로 보기’부터 시작할 일이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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