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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폐기국제운동의 노벨평화상에 떨떠름한 나라들

중앙일보 2017.10.08 18:18
노벨 평화상 수상을 자축하고 있는 베아트리스 핀 ICAN 사무총장(가운데). [AFP=연합뉴스]

노벨 평화상 수상을 자축하고 있는 베아트리스 핀 ICAN 사무총장(가운데). [AFP=연합뉴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지구상 모든 국가의 핵무기 전면 폐기를 주장하는 비정부기구(NGO) 연합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선정됐다. 출범한 지 10년밖에 안된 글로벌 반핵단체의 ‘깜짝 수상’엔 최근 고조돼 온 북핵 문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각국 반핵단체들이 환영 메시지를 쏟아낸 것과 달리 미국·러시아 등 주요 핵보유국 정부의 반응은 싸늘하다. ICAN의 활동이 이란·북한 등 신참 국가의 핵개발 금지뿐 아니라 기존 핵무기 보유국의 ‘기득권’ 폐기까지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차원 기존 보유국 핵폐기 추진한 반핵단체
핀 총장 수상소감서 "정당한 핵무기란 없다" 주장

"북한 위기서 핵 비확산 중요성 강조한 선정" 해석에도
미국 등 "조약만으론 어떤 안보도 제고 못해" 냉담

 
ICAN은 앞서 노벨평화상을 수상(1985년)한 바 있는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가 제안해 2007년 결성됐다. 현재 101개국 소속 468개 NGO가 속해 있으며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다. 지난 7월 기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대체해서 유엔에서 채택된 '유엔핵무기금지조약'이 ICAN의 주요 작품이다. 핵무기금지조약은 핵무기 개발·실험·생산·제조·비축·위협 등 모든 핵무기 관련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나아가 기존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 6일(현지시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ICAN을 평화상 수상자로 발표할 때도 "핵무기 사용이 인류에 초래할 파국적 결과들에 대한 관심을 모으고 조약에 근거한 핵무기 금지를 달성하기 위한 획기적인 노력을 기울인 공로"를 들었다. 
 
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기자회견 중인 베아트리스 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사무총장. [신화=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기자회견 중인 베아트리스 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사무총장. [신화=연합뉴스]

 
하지만 조약은 채택 당시부터 구속력 없는 종잇장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총회에서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3분의 1은 표결에 불참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공인' 핵보유국은 물론 비공인 핵보유국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북한은 협약채택을 위한 협상부터 보이콧했다. 미국의 핵 억지력에 기대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도 불참했다. 한국과 세계 유일 '피폭 국가' 일본도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이유로 표결에서 빠졌다. 당시 찬성한 122개국 가운데 실제 서명을 한 나라는 53개국이고 국내 비준까지 완료한 나라는 가이아나와 바티칸, 태국 등 3개국뿐이다.
 
기존 핵보유국의 ‘기득권’ 폐기에 대한 ICAN의 인식은 북핵 해결의 책임을 북미 양자 모두에 돌리는 수상 소감에서도 드러났다. 베아트리스 핀 ICAN 사무총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달라는 취재진의 요구에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불법이고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도 불법"이라며 "그들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뿐 아니라 트럼프의 군사적 위협 제스처에도 반대한다는 의미다. 핀 총장은 기자회견에선 "트럼프가 핵무기 사용을 단독으로 결정할 권한을 얻은 까닭에 많은 이들이 그의 대통령 당선에 불안해졌다"면서 "정당한 핵무기 보유란 없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미국은 ICAN 선정에 냉담한 반응의 성명을 냈다. 7일 AP통신이 전한 성명은 "그 조약은 세계를 더 평화롭게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단 하나의 핵무기도 없애는 결과를 낳지 않을 것이며 어느 나라의 안보도 제고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아가 핵무기금지조약이 세계적 핵 확산과 안보 위협을 해결하는 기존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러시아 역시 공식적으로는 "노벨위원회 결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고 했지만 이면에선 볼멘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 콘스탄틴 코사체프는 "ICAN은 '핵 제로, 완전한 핵무기 금지'라는 상당히 유토피아적 목표를 추구하는 낭만주의적 단체"라면서 "ICAN의 과제는 비현실적이며 이 조직은 너무 앞질러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와 유럽연합(EU) 등 최근 수상자들을 둘러싼 논란을 열거한 뒤 ICAN의 수상을 "갈수록 타당성을 의심받는 노벨평화상의 실태를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일본은 '일본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의 ICAN의 환영 분위기와 달리 정부 차원에선 공식 논평을 삼가고 있다. 북핵을 비판하면서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온 딜레마를 반영하듯 외무성 당국자는 교도통신에 "핵무기 폐기라는 목표는 우리도 공유하고 있지만, 어프로치(접근 방식)가 다르다"고 말했다. 중국 역시 신화통신을 통해 ICAN 수상 사실만 전했을 뿐 정부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 반면 러시아·미국에 이어 세계 제3위의 핵보유국인 프랑스는 “북한 위기 맥락에서 핵 비확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한편 일본 아사히신문은 ICAN 수상 기사에서 "북핵 위협에 직면하는 한국은 미국의 핵무기 힘으로 북한에 대항하는 걸 당연시하고 있어 핵금지를 향한 여론이 강하지 않다"고 7일 전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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