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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초파리 덕분…"인간과 유전자 60%일치"

중앙일보 2017.10.08 17:36
초파리

초파리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생체시계인 ‘서캐디언 리듬’(24시간 주기리듬)을 통제하는 분자 기구를 발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인간의 행동과 잠, 체온, 신진대사 등에 영향을 미치는 생체시계의 기능을 증명해 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과학자들을 포함해 역대 노벨 생리의학상중 최소 6개가 한 곤충을 이용한 연구 덕분에 수여됐다고 영국 가디언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간과 유전자의 60%가 일치하고 암, 자폐, 당뇨 등 많은 질병 연구에 핵심 역할을 해온 곤충은 바로,초파리다.
 지난 2일(현지시간) 발표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미국의 제프리 C 홀(72) 메인대 교수, 마이클 로스배시(73) 브랜다이스대 교수, 마이클 영(68) 록펠러대 교수다. 1984년 브랜다이스대에서 함께 일하던 홀과 로스배시 교수는 록펠러대의 영 교수와 함께 초파리를 이용해 24시간 단위의 생물학적 리듬을 조절하는 '주기 유전자(period gene)'를 분리해 냈다. 이어 홀과 로스배시는 유전자에 의해 주기적으로 암호화되는 'PER' 단백질이 밤 동안 세포에 축적됐다가 낮 동안 분해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의 연구로 밤에 숙면을 하기 위한 생활습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치매, 당뇨, 암 등 인간의 질병 75% 초파리서 관찰 가능"
2주만 사는 초파리, 이틀이면 번식해 실험 수단으로 애용
돌연변이 비율 높은데 염색체 구조 단순해 추적 용이
실험용 쥐 1년 걸리면 초파리면 3주면 연구 결과 확인

올해 수상자들 생체시계 발견에 초파리 활용하는 등
역대 노벨생리의학상 최소 6개에 초파리가 핵심 역할

왼쪽부터 제프리 C 홀,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 [EPA=연합뉴스]

왼쪽부터 제프리 C 홀,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 [EPA=연합뉴스]

 1933년 토머스 헌트 모건은 초파리를 이용해 유전 현상에서 염색체의 역할을 규명해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초파리 연구는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견을 줄줄이 이끌어냈다. 
 현대 과학자들은 인간의 질병 유전자의 75%가 초파리에서도 관찰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다운증후군, 알츠하이머, 자폐, 당뇨, 각종 암 등이다. 유전학자인 스티브 존스는 “초파리는 마치 과학자들을 위해 디자인된 존재 같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초파리는 ‘과일 파리'라고도 불리는데 여름철이면 사과나 배, 설탕 음료 등에 앉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건강에는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연구에는 최적이다.
 초파리는 생명 주기가 2주에 불과하다. 작은 튜브 안에 손쉽게 기를 수 있다. 영국 캠브리지대 초파리 담당 사이몬 콜리어는 “암수를 함께 넣어놓으면 이틀 뒤 새로운 연구용 초파리를 얻을 수 있다”며 “유전자 돌연변이를 연구하는 매우 강력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초파리는 다른 중요한 요소도 갖고 있다. 초파리의 게놈(유전체)은 네 쌍의 염색체만을 갖고 있는데 23쌍인 인간에 비해 현저히 적다. 이런 특징 때문에 유전자의 기능을 살펴보기 위한 실험이 용이하다. 존스는 “초파리 유전자는 매우 높은 돌연변이 비율을 보이는데, 초파리에서는 추적이 상대적으로 쉽다"며 “실험용 쥐나 인간처럼 복잡한 생명체에서는 이런 변이를 추적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험용 쥐에서 1년이 걸리는 연구라면 초파리를 이용하면 3주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초파리는 지난 세기 동안 생물학적 발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노벨 생리의학상도 초파리 연구에서 도움을 얻은 수상자들에게 돌아가곤 했다.
 1946년 허먼 조지프 멀러가 초파리에서 엑스레이가 돌연변이를 유발한다는 것을 발견한 공로로 이 상을 수상했다. 95년에는 에드워드 B 루이스 등 세명의 공동수상자가 초파리를 활용해 초기 배아 발생 과정에서의 유전자 조절에 관한 발견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4년 리차드 액설은 후각 기관의 구조를 조명해내 노벨 생리의학상을 탔는데 역시 초파리를 이용한 연구 결과였다.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마이클 로스배시. [Brandeis Univ 캡쳐]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마이클 로스배시. [Brandeis Univ 캡쳐]

 암연구기관이 세포 사멸을 막는 단백질이 암을 생기게 만든다는 것을 발견한 것도 초파리에 대한 연구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가디언은 소개했다. 이 단백질을 억제하면 세포 사멸을 가능하게 해 암 발생을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약품을 테스트하고 있는데, 인간의 해당 단백질은 초파리에서보다는 복잡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초파리가 없었다면 암에 대처하는 길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탄 로스배시 교수는 노벨위원회로부터 오전 5시에 수상 사실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보통 그 시간에 오는 전화는 누군가의 부고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상 통보임을 알고 초파리에게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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